본문 바로가기

해외통신원

‘테네시 슈바이처’ 김유근 박사, “나를 존경하지마라”



글/이철원(체육인재육성재단 테네시대학교 해외연수자)

이북 출신으로 6.25전쟁을 피해 남으로 피난왔던 어린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의 아버지는 평양의전(평양의학대학)을 졸업한 의사이자 독실한 기독교신자였다. 그의 아버지는 김일성으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한 뒤 결국 미국에 오게 되었다. 이후, 이 소년은 한국으로 역유학을 와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레지던트와 인턴을 마쳤고, 오랜 고민 끝에 하느님의 뜻에 따라 불우한 이웃을 위한 진료를 하기로 결심한다. '테네시의 영웅', '테네시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김유근 박사의 어린 시절 이야기이다.


체육인재육성재단 해외연수 프로그램의 마지막 주인 오늘(6), 김유근 박사의 점심식사 초대로 '테네시의 영웅'을 만날 기회가 주어졌다.

어떤 경유로 불우이웃을 위한 무료 진료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까?
미국에서 암 진단의를 하면서 늘 생각은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결심을 실천하기까지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리게 됐었습니다. 왜냐하면, 오전에 일어나서 일을 하면서는 늘 남을 돕는 의료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퇴근 후 집에서 휴식을 취하다 보면 내 몸이 편해져서 남을 돕는 것을 실천해야겠다는 의지가 약해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경제활동에 대한 부인의 걱정도 저에게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식당에서 김유근 박사의 무료 진료소 사무실로 자리를 이동한 뒤

그렇다면,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무료 진료 활동을 하시게 됐습니까?
1993년부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오후까지 병원 일을 하고 퇴근 시간 후에 두세 시간씩 무료 진료를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2005년부터 내 일을 접고 무료 진료소를 설립한 뒤 현재까지 그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무료 진료소를 운영하고 계십니까?
일단 내가 운영하는 무료 진료소는 미국 중앙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습니다. 내 사비를 털어 테네시 낙스빌(Knoxville)에 첫 진료소를 만들었고 현재 운영비의 20%는 테네시 주에서, 80%는 낙스빌 주민들의 기부로 운영이 되고 있습니다.

 암 전문의이신데 주로 어떤 환자들을 많이 진료하게 되십니까?
이곳에 오는 환자들의 80%는 고혈압, 당뇨 환자들입니다.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 쉽게 걸리고, 치료받기 힘든 질병이죠. 조금 전에도 당뇨에 걸렸는데 돈이 없어서 6개월 동안 인슐린 주사를 맞지 못했던 환자에게 처방전을 내줬습니다.

그런 환자들에게 약도 무료로 제공을 하시는지요?
아닙니다. 미국은 약을 월마트 같은 대형 마트에서 저렴하게 구입을 할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항생제 같은 경우 한 달치를 사도 몇 달러밖에 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약을 살 수 있는 의사의 처방전입니다. 이 처방전 한 장을 받으려면 진료비로 100달러에서 300달러에 이르는 돈을 내야합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자들이 처방전을 받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라는 겁니다. 저는 그들을 위해 피검사를 비롯한 여러 가지 진료를 한 뒤 합당한 처방전을 발급해줍니다.
지금도 몇 분 안 되는 사이에 8명의 환자를 받았습니다. 일반 병원에서 진료비를 낼 돈이 없어 병원을 찾지 못하는 환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무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미국 시민권이 있고 일을 하고 있지만 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소시민입니다. 미국은 보험료가 비싸기 때문에 대부분의 서민은 보험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고, 병에 걸리면 엄청난 의료비 부담 때문에 병원에 갈 수가 없습니다. 이런 이웃들에게 무료로 진료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질문하나 하겠습니다. 여기에 오는 환자들 중에서 히스패닉 환자의 비율이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불우한 환경에서 사는 이웃들이 주로 오니 아무래도 남부에서 올라온 히스패닉 불법체류자들이 많지 않겠습니까? 80% 정도?
제가 여태껏 받은 환자 중에서 히스패닉계는 10%도 안될 겁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는 불법체류자에게 진료 혜택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불법체류자는 무료 진료를 받을 수가 없습니까?
미국의 법이 참 아이러니합니다. 저희 무료 진료소는 미 중앙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기 때문에 불법체류자에게 무료 진료 혜택을 제공하지않습니다. 이곳에서 진료 접수를 하려면 미국 시민권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불법체류자들이 의료혜택을 못 받는 것은 아닙니다. 응급실에서는 불법체류자들에게 무료로 의료혜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민권이 있고 세금도 내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불우한 미국 시민들은 진료비를 낼 수 없어 응급실에도 갈 수가 없습니다. 국경에서는 불법체류자들의 입국을 막기 위해 애쓰고 있고, 한 편에서는 미국 시민이 아닌 불법체류자들에게 무료로 의료혜택을 제공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입니까.
김유근 박사는 밀린 진료 때문에 먼저 자리를 뜨면서 "나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 할 말이 정말 많은 사람이에요."라며 아쉬움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김유근 박사는 "한국으로 가기 전에 더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내가 내일은 탄광촌으로 무료 진료를 가야해서 시간이 안될 것 같네요."라며 작별인사를 전했다.



최근 몇 년 사이 미국은 폭발적으로 급증하는 불법체류자들 때문에 국민의 조세부담이 커지고 있다. 불법체류로 들어온 사람이 자식을 낳으면 그 자식은 미국 시민권을 갖게 되어 공교육이나 여러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김유근 박사의 설명처럼 불법체류자들은 응급실에서 진료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그 비용이 결국 미국 시민들의 세금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미국 시민으로써 일을 하고 세금을 내지만 제대로 된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시민들, 그리고 불법으로 거주하며 응급진료 혜택을 무료로 받을 수 있는 불법체류자들. 이런 복잡한 환경에서 무료 진료를 이어가고 있는 김유근 박사의 마지막 소망은 생각 외로 조촐했다. 낙스빌 인근 스모키 마운틴과 부산에 말기 암에 걸린 어려운 이웃들이 편안히 세상을 떠날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돌봐줄 수 있는 시설을 만드는 것이었다.
김유근 박사는 무료 진료소를 떠나려는 필자에게 웃으며 이런 말을 남겼다.

"나를 존경하지 마요. 그럼 (내가)힘들어."

[사진 = 김유근 박사 (c) 이철원, 카메라 = 김대원]


ⓒ 스포츠둥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