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지성 (한양대학교)
여러분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는 영화를 기억하고 있는가?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명승부를 연출하며 아쉽게 은메달을 획득한 여자핸드볼대표팀 선수들이 경기가 끝난 후 부둥켜안고 흐느끼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그 후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가 바로 ‘우생순’이라고 줄여 부르는 영화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세계정상의 실력을 갖췄음에도 비인기종목의 서러움과 부족한 인프라, 지원 때문에 ‘한데볼’이라고 불릴 정도로 척박했던 한국핸드볼의 현실을 알게 되었다. 이 같은 현실을 타개하고자 대한핸드볼협회와 핸드볼인들은 수많은 노력을 했고 그 노력의 결정판이 바로 ‘핸드볼전용경기장 건립’이었다. 모든 핸드볼인들의 숙원인 그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바로 진정한 생애 최고의 순간이 아니었을까? 개장기념으로 열리는 런던올림픽 지역예선 남자부 마지막 경기, 대한민국 대 일본의 결선 경기가 열리는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을 찾았다.
지난 10월 23일 준공된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은 올림픽공원 내에 위치한 펜싱경기장을 리모델링하여 건립되었다. 2010년 5월 착공 이후 1년 6개월만에 완성된 경기장의 공사비 430억 원은 전액 SK그룹에서 부담했다. 지하 1층, 지상 3층, 연면적 1만7337㎡(5244평) 규모로 5000여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경기장은 핸드볼 경기에 최적화된 규모와 형태로 조성되었고, 핸드볼 경기 이외에 펜싱, 배드민턴, 탁구경기 및 공연 등도 가능하도록 다목적으로 설계했다. 88 서울올림픽 이후 핸드볼 전용경기장의 필요성이 계속해서 제기되어왔으나 지지부진하던 차에 2008년 대한핸드볼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SK 최태원 회장의 남다른 핸드볼에 대한 애착과 강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공사가 착착 진행되어 완공하게 되었다.
23일 준공식에 이어 개장경기로 치러진 일본과의 런던올림픽 지역예선 첫 경기를 승리로 이끈 후 남자대표팀의 최석재 감독은 미디어와의 인터뷰를 통해 “서울올림픽 때 수원까지 경기를 하러 다녀야 했는데 서울의 중심에 이런 전용체육관이 들어섰다는 사실이 가슴을 벅차게 한다”며 “경기만 아니었으면 핸드볼인들과 함께 둘러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싶은 기분이다”고 말했다. ‘우생순’의 실제 주인공인 임오경 서울시청 감독도 “오늘 여기 오는데 가슴이 떨리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고 감격스러워했다. 핸드볼인이 아닌, 단순히 한국 스포츠를 응원하는 팬으로 경기장을 찾은 나도 뿌듯했는데 선수들과 관계자들의 벅찬 심정은 오죽할까 싶었다.
경기가 열리는 시간은 11월 2일 수요일 오후 6시. 런던올림픽 지역예선 마지막 경기인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가 열리는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을 찾았다. 오늘 일본과의 경기를 승리로 이끌면 이미 런던행을 확정지은 여자대표팀과 함께 4회 연속 남녀동반 올림픽 본선 진출이라는 대기록이 세워진다. 첫 경기에서 일본을 큰 점수차이로 이겼고 5전 전승을 달리고 있는 남자대표팀의 기세로 봤을 때 승리는 확실시되었지만 결과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다.
경기장은 지하철 5호선 올림픽공원역 3번 출구로 나와서 큰 길을 따라 왼쪽으로 테니스경기장을 끼고 직진하면 바로 보인다. 유선형의 타원형 모양으로 지어진 체육관은 새알같기도 하고 뽕뽕 뚫린 빗살무늬의 구멍을 보니 물고기의 아가미같기도 하다. 반짝이면서 수시로 색이 변하는 겉면의 LED조명은 화려함을 더했다. 운동경기를 하는 체육관이라기보다는 음악연주를 하는 시설로 느껴지는 수려한 설계에 감탄했다.
밖으로 새어나오는 응원구호 소리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경기장에 들어섰다.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한 실내조명에 선수들이 연습하고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두 개의 대형 전광판 중 하나에는 출전선수들의 명단과 번호가 표기되어 있었고 하나는 선수들과 관객석을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앉아서도 편하게 관람할 수 있게 설치된 투명강화유리와 선수들의 빗나간 공을 막아주는 그물이 최적의 관람환경을 제공했다.
중간통로에 설치된 장애인들과 노약자를 위한 관람석도 훌륭했다. 널찍하게 확보된 의자는 쉽게 접근할 수 있었고 경기를 보는 시야도 전혀 방해되지 않았다. 관람석의 하단과 상단에 모두 앉아보았는데 앞사람으로 인한 시야방해가 전혀 없었다. 경기장 설계에 관객들의 시야 확보가 확실하게 고려된 것이다.
가장 가까운 좌석에서는 불과 10m 앞에서 선수들의 움직임을 볼 수 있었다. 이게 바로 핸드볼전용경기장의 최대 장점인 것 같다.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와 함께 시작된 경기. 핸드볼의 규칙은 모두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눈앞에서 관전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선수들의 역동적인 몸놀림과 빠른 패스에 저절로 집중하게 되었다. TV를 통해 보는 속도감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빠르면 3~4초만에 상대 골문 앞까지 도달하는 속공과 연달아 터지는 골, 그리고 선수들의 팀 동료들과 관중석을 향한 화끈한 세레모니는 축구경기가 벌어지는 90분간 가장 재미있는 장면만 모아놓은 하이라이트 같았다. 한국과 일본 선수들은 만원 관중 앞에서 최선을 다한 수준높은 플레이를 선보였다.
경기장을 꽉 채운 한국 관객들의 일방적인 응원 속에서도 일본대표팀은 초반에 연속 중거리슛을 성공시키며 4골 차이로 앞서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침착하게 한 골씩 따라붙은 한국 선수들은 전반을 11-10, 한 골의 리드를 잡은 채로 마쳤다. 후반 들어 일본 선수들의 체력이 저하된 틈을 타 연속 속공을 성공시키면서 점수차이를 벌릴 때가 이날 경기의 하이라이트였다. 최종스코어는 26-21. 선수들은 경기장을 찾은 여자핸드볼 국가대표 선수들, 가족, 친지 그리고 시민들에게 인사를 하며 런던올림픽 본선 진출과 핸드볼전용경기장 건립의 의미를 스스로 빛냈다.
경기가 끝난 후 경기장 구석구석을 더 돌아보았다. 기자석과 TV중계를 위한 공간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고 화장실과 매점, 기념품매장 같은 편의시설도 찾기 쉽게 배치되어 있었다. 개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매점과 기념품매장에 비치되어있는 물건의 양과 질, 점원들의 준비가 충분하지 않은 건 옥의 티였다.
앞으로 개선될거라 기대한다.
이번 핸드볼전용경기장 건립은 국내 기업이 대규모 스포츠시설을 조성해 사회에 기부한 첫 번째 사례라고 한다. 이제 이 경기장은 경기장이 없어지지 않는 한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이라는 공식명칭으로 내외신에 보도되면서 기업에 눈에 보이지 않는 홍보효과를 지속적으로 가져다 줄 것이다. 이제 멀리 수원까지 갈 필요 없이 서울의 한가운데에서 핸드볼을 관람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으니 많은 대중들이 핸드볼경기장에 와서 역동적인 핸드볼의 매력을 체험하길 바란다. 선구적인 스포츠마케팅의 현장에서 런던올림픽 본선 진출을 직접 목격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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