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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체육이야기/[ 전문체육 ]

징크스 버릴까요?


                                                                           글 / 윤영길(한국체육대학교 교수)



지도학생 중에 최 은경이라는 학생이 있다. 학생으로는 생소하지만 2002년, 2006년 동계올림픽금메달리스트인 선수로는 친숙하다. 연구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자기는 징크스가 없었다는 이야기에 관심이 갔다. “중학교 3학년 때 세계주니어대회 선발전이 있던 날이 생일이었어요. 시합 날은 미역국을 안 먹는다는 이야기 때문에 생일이지만 미역국을 먹을지 말지 무척 망설였어요. 망설이다 에라 모르겠다하고 미역국을 먹고 시합을 했는데 종합우승을 했어요. 그 뒤로 징크스 같은 것은 없고 무슨 일이든 제가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을 그 때부터 가지기 시작 했어요”


징크스의 기원

김 감독은 시합 날 면도를 하지 않고, 이 감독은 시합이 있으면 계란으로 만든 음식을 먹지 않으며, 박 감독은 시합 날 다른 사람과 악수를 하지 않는다. 또 최 선수는 시합 날 씻지 않고, 정선수는 대회기간 중에는 손톱을 깎지 않고, 오 선수는 시합 날 왼손으로만 문을 연다.

징크스(jinx)라는 용어는 고대 그리스에서 마술에 사용하던 새의 이름(jugx)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징크스는 마술과 같은 힘이 작용해서 사람의 힘이 전혀 미칠 수 없이 일어나는 불길한 일이나 운명적인 일을 의미한다. 이런 징크스는 우리의 일상 곳곳에 숨어 사고나 행동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징크스는 그렇게 되리라고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개인적인 차원의 금기이다.

징크스는 특정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그 사건이 발생한 원인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그 사건을 유발한 직접적인 원인으로 판단한 무엇인가에 대해 행동과 결과의 인과관계가 분명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이 사건의 결과와 특정행동을 연합시키는 일종의 미신적 행동이다.
유명한 심리학자인 Skinner가 비둘기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는데, 비둘기에게 특정한 조건 없이 먹이를 제공했을 때, 먹이를 제공한 순간 비둘기가 보였던 행동을 비둘기가 더 빈번하게 보였는데, 이는 징크스의 형성과정과 동일하다. 즉, 어떤 선수가 세탁하지 않은 유니폼을 입고 출전한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고 그 선수가 자신이 활약하는데 있어 세탁하지 않은 유니폼이 조금이라도 기여했다고 생각하면 그 선수는 지속적으로 세탁하지 않은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출전하게 된다.


징크스의 형성

악수를 하면 경기에서 패할까? 왼손으로 문을 열어야만 경기에서 승리하게 될까?
스포츠에서 과학적인 근거도 없는 징크스가 쉽게 받아들여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흥미로운 사실은
일반적으로 경기력이 좋은 선수나 승률이 높은 감독은 징크스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징크스가 경기력과 승률을 높이는데 별 기여를 하지 못한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포츠에서 징크스가 널리 퍼져 있는 이유는 스포츠에서는 승패를 단기간에 자주 경험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로 인해 징크스가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경기를 앞두었거나 경기에서 불안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징크스는 심리적 안정을 유지해주며,
어떤 행동을 미리 조심하게 하는 경고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부정적 정서와 결합하면 심리적 장애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더욱이 징크스에 지나치게 집착할 경우 징크스와 관련된 요인에 집착하게 되는 강박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왜 스포츠에서 징크스는 일상화되어 있을까? 스포츠의 속성 상 경기마다 승부가 결정되고, 승부를 결정해야 하는 경기 상황이 자주 연출된다. 경기에서 출전한 선수나 팀 관계자 스스로 경기의 결과는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경기에서 이기거나 졌을 때 승리와 패배의 원인을 찾다 승패와 전혀 관련이 없는 무엇에 승부를 연관시켜 앞으로의 일을 지레 짐작해서 결과를 추정하는 것이 징크스의 심리이다. 따라서 징크스란 객관적인 인과관계가 아니라 우연에 의한 결과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미신적 행동에 불과하다.


징크스의 역할


징크스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다.
일단 징크스에 걸리면 저항하기 쉽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징크스를 지키지 않을 경우 심리적 불안상태에 휩싸이게 되고, 웬만하면 징크스를 지키는 편을 선택하기 십상이다. 징크스는 불길하고 재수 없는 등의 부정적 의미와 으레 그렇게 되리라는 일반적인 믿음이다. 사실 징크스는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요인의 연합이기는 하지만 심리적 안정감을 유지시켜주는 동시에 실패와 실패에 따르는 자아상실감의 상실을 완화시켜주기도 한다. 

 
징크스는 시합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야기되는 불안에 대응하기 위한 한 심리적 방어 기제이다. 대회를 앞둔 긴장감, 경기장 라커룸에 들어섰을 때의 느낌, 심판이 장비 검사하는 순간, 킥오프 순간의 불안감이나 기대감을 우리는 경험했다. 생각은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행동은 경기력으로 나타난다.
즉 시합의 결과가 좋지 않을 것이라고 믿으면 긴장과 불안을 초래하고, 시합의 결과가 좋을 것이라고
믿으면 기대감 속에 더 열심히 경기를 하게 된다. 징크스를 강하게 믿으면 경기력을 발휘하는데 있어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점차 줄어들게 된다. 경기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징크스가 나타나서 경기를 잘했고, 경기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징크스가 나타나서 경기를 못했다고 생각한다면 선수 스스로 자신이 축구를 잘한다고 생각하는 유능 성을 갖기 어렵다.


어두운 밤길을 혼자 걷고 있을 때 멀리 불빛이 보일 때 안도하게 되는 것처럼 징크스 행위 자체가 선수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줄 수도 있기 때문에 경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만은 아니다. 징크스는 당일 경기에 일회적으로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장기간에 걸쳐 선수의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특히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징크스가 선수의 경기력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작용한다면 다행이지만, 경기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면 장기간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문제를 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징크스(Jinx)의 실체


징크스의 심리적 항상성을 유지하고 실패와 실패에 따르는 자아상실감 예방의 긍정적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 반면 징크스를 지키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의존성의 부작용도 있다. 스포츠에서 징크스는 부정적인 연합만으로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징크스를 행운과 연관시키면 징크스를 경기 전략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징크스는 실재한다고 보기 어려우면 심리적 허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선수나 지도자는 물론 스포츠계가 인식할 필요가 있다. 아래의 예처럼 징크스는 지각 오류에 불과하다.


 새 팀에 입단한 운동선수들이 첫 해에는 펄펄 날다가 그 다음해에는 부진한 경기력을 보여주는 2년차 징크스(Sophomore Jinx)가 있다. 정말 2년차 징크스가 존재하는 것일까? 메이저리그 신인상을 수상한 선수의 타율을 토대로 한 결과 2년차 징크스는 그림과 같이 대조효과에 의해 나타나는 편향(heuristics)이다. 2년차 징크스는 일부 선수에게서 나타나는 2년차의 상대적 부진을 모든 선수에게 일반화시킨 오류이다. 2년차 선수의 부진은 상대팀의 치밀한 분석, 1년차 때 잘한데 대한 자만심, 피로 누적 등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최 은경 선수와 징크스 이야기를 나누면서 “거침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최 은경선수가 징크스가 없었던 데는 자신의 경기력에 대한 믿음이 자리하고 있었다. 경기력이 탁월해 경기 결과의 불확실성이 감소할수록 징크스를 만들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다. Skinner의 비둘기 실험에서 비둘기가 먹이를 항상 먹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먹이가 나오는 순간의 동작을 유의하게 반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확실성, 자신의 경기력에 대한 확신이 강해지면 증가한 확실성만큼 징크스는 감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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