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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체육이야기/[ 국제체육 ]

정치 벼락맞는, 스포츠

                                                                                    글 / 김범식 (성균관대학교 스포츠과학부 교수)


빌 클린튼 미국 전 대통령이 지난 8월 4일 평양을 전격 방문하고
장기 억류중이던 미국여기자 둘을 구출하고 돌아갔다.
남한의 대한적십자사가 추석 이산가족상봉을 북한에 제의하였다.
이 두사건은 클린튼과 대한적십자사가 자유의지에 의해 행동한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모두다 당국간 막후 교섭의 결과이다.

스포츠에서도 마찬가지다.“스포츠는 정치와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현대 스포츠의 모든 현장에서 정부의 영향력을 피할 수 없다.

한국 스포츠도 남북간 축구교류를 하든 남북한 동시입장을 하든 정부가 개입한다.
국제스포츠메가이벤트는 정부의 사전 허락이 없으면 후보 등록도 할 수 없다.
유치를 해도 운영과 재정 지원을 위한 특별법으로 개입한다.
영암의 F1은 국회에서 특별법을 통과 시켜주지 않으니까 죽을 쓰고 있지 않는가?

한국스포츠의 정치화과정을 Eizen과 Sage(1978)의 설명을 근간으로 몇 가지 요약해 볼 수 있다.

(1) 한국 스포츠와 정치의 밀접한 관계는 조직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였다.

"현대 스포츠에서 정치적인 암시는 피할 길이 없으며
정치성이 배제된 스포츠 조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대한체육회와 대한올림픽위원회도 1940년대 신생광복국가의 위용을 내외에
과시하기 위한 노력으로 출발하였고, 국민의 여가 생활과 문화체육생활을 목표로 한
1980년대 새마을 체육운동, 사회체육진흥회와 1990년대 국민생활체육진흥회,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설립이 그러하다.
1986년의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을 효과적으로 치루기 위하여 체육부가 독립된
정부 부처로 창설되었다.


(2) 한국 정부의 스포츠에 대한 개입과 영향력은 스포츠와 정치의 결합을 불가피하게 하였다.


한국 정부는 선진 국가 건설, 일등국민 창조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스포츠를 이용하였다.
1982년 한국프로야구의 탄생은 제5공화국 전두환 정권의 정치적 무관심 유도정책의 일환으로
당시 사회 경제적으로 프로스포츠의 기초가 마련되지 못한 정국에서 청와대에 의해 추진되었다.

문민정부의 체육정책은 민간단체의 위상을 강화하고 제1차 국민체육진흥5개년 계획(1993-1997)의
수립을 통해 국민체육, 생활체육, 국가주도형 엘리
트 체육정책을 유지하였다.

참여정부는 스포츠를 통한 국제경쟁력 및 국가이미지 제고를 위하여 
2014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와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유치에 성공
하였으며,
2006년 스포츠어코드 총회와 ANOC 총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였다

(3) 한국 스포츠에 참여하고 있는 자는 전형적으로 특정 사회조직이나 한국을 대표한다.

오늘날 스포츠는 국가간의 의식적인 투쟁으로 교묘히 조작되어 국수주의적 충동을 일으키는
정치선전의 수단으로 끊임없이 이용되어 왔다.
스포츠의 승리야말로 위대한 국가건설과 민족의 명예를 드높이는 쾌거라고 선전한다.
선수들 또한 국가의 위신을 교묘히 형상화한 스포츠 군인으로 조작되는 것이다.

과거 해태 타이거즈는 호남의 한으로, 올림픽을 비롯한 세계선수권대회의 한국대표팀은
대한민국으로 상징화된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축구대회시  붉은악마는 12번째 태극전사로 동일화되어
실제 게임에 참가하는 것처럼 승리를 위해 거리로 몰려들었다.

(4) 스포츠 사건과 한국 정치적 상황은 상호작용한다.

한국의 1980년대는 이른 바‘스포츠 공화국’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이후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출범한 
전두환 정부는 국내통치와 정통성을 뒷받침하는 수단으로 국제스포츠메가이벤트를 이용하였다.
북방정책은 노태우 정부가 사회주의국가와의 외교 정상화와 남북한 통일의 실현을 목적으로 실시하였다.

이에 따라 한국정부는 북한과 쿠바를 제외한 사회주의 국가들을 서울올림픽에 참가시키는 성과를
올렸으며, 이러한 성과는 1989년 2월 헝가리와의 수교, 1990년 9월 소련과 수교,
1991년 9월 남북한 국제연합 동시가입, 1992년 8월 중국과의 수교가 이루어지는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

남북간 스포츠교류협력은 전체적인 남북관계의 진전과정과 밀접히 연관되어 행해진다.
2000년대 남북정상회담 이후 숨 가쁘게 진전된  남북관계는 스포츠교류에서도
통일 열기를 고조시키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산물이 되어 정치적 속성을 탈피하지 못하였다.
금강산 자동차질주대회(2000.7.3), 시드니올림픽공동입장(2000.9.15),
금강산국제모터사이클투어링(2001.8.15), 평양유경정주영체육관 (2003.10.6) 협력 등이 전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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