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한지연(경희대학교 언론광고PR/방송영상스피치)
어린 시절 뛰놀던 공터, 헤어진 여자친구와 걷던 길은 다른 공간보다 특별한 의미를 만들어낸다. 공간은 책이나 라디오, 인터넷이나 TV만큼 많은 의미 생성의 기능을 갖기 때문이다. 스포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스포츠 경기는 특정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경기가 이루어지는 공간의 의미가 더 중요하다. 경기장이라는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는 단순히 그 곳에서 경기가 열리는 것 이상의 역사, 상징, 분위기를 담고 있다. 대전 월드컵 경기장이 이탈리아와의 16강전 설기현의 동점골, 안정환의 골든 골과 선수들의 땀, 붉은 악마의 눈물과 함성 소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듯 경기장은 기억들을 되살릴 수 있는 좋은 매개체이기 때문에 많은 구단들은 경기장에 불이 꺼진 후에도 경기장 자체로 팬들을 맞이한다. 경기장 투어나 경기장 내에 위치한 역사 박물관 같은 것들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런 프로그램이 활성화 되어 있는 유럽 구단들의 경우, 투어나 박물관으로 금전적 이득을 얻을 뿐만 아니라 구단의 이미지를 상승시키고 팬들의 소속감까지 강화한다.
우리나라의 월드컵 경기장을 살펴보면 서울 월드컵 경기장을 비롯해 수원, 인천, 대전, 울산 월드컵 경기장이 월드컵 전시실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 제주 월드컵 경기장에서도 월드컵 전시실 마련을 위해 자료를 수집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기장이 비슷한 구성과 단순 전시 위주로 되어 있어 이목을 끄는 데 어려움이 있다. 우리나라 경기장들도 함성이 멈춘 경기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보아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2002 한일 월드컵을 기념하는 서울 월드컵 경기장의 2002 FIFA 월드컵 기념관을 찾아갔다.
서울 월드컵 경기장은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위치한 축구 전용 경기장이다. 65,000여 좌석을 보유하고 있으며 축구 경기와 각종 행사가 열린다. 특히 ‘6호선 월드컵 경기장 역’이 따로 있을 만큼 접근성이 좋아서 A매치 경기도 많이 열리는 편이다. 또한 서울 월드컵 경기장은 내부에 영화관, 마트, 쇼핑몰, 웨딩홀 등이 있는데 유동 인구가 많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가끔 축구를 보러 경기장에 찾은 관중들이 축구경기 대신 영화를 선택하는 점은 아쉽기도 하다.
2002 FIFA 월드컵 경기장은 월드컵 경기장 역에서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와서 1층 안쪽 길을 따라 W석이 있는 곳까지 오면 찾을 수 있다. 월드컵 경기장 안에 여러 시설들도 많고 경기장의 크기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굳이 찾아가려고 마음먹지 않으면 발견하기 쉽지 않다. 아무리 내용물이 좋아도 사람들이 알지 못하면 의미가 없듯이,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기념관을 알릴 수 있는 상징이 더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념관 입구의 모습이다. 기념관 안에 들어서면 바로 티켓을 끊고 입장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티켓 가격은 성인 1,000원 (12세 이하, 65세 이상, 장애인, 국가유공자, 다둥이카드소지자 본인포함(4인까지) : 500원, ※ 단체 10인 이상 30% 할인) 정도로 저렴한 가격에 구경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평일 오후여서 그런지 기념관은 한산했다.
위의 이미지는 서울 월드컵 경기장의 월드컵 기념관 티켓과 지난 겨울 방문했던 아스날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티켓이다. 물론 에미레이츠 구장을 방문했을 때는 비싼 가격의 구장 투어를 신청했기 때문에 좀 더 꼼꼼하고 디자인이 잘 된 티켓을 받을 수 있었지만, 한 장짜리 티켓이라도 기념할 수 있고 경기장이나 구단을 상징할 수 있도록 디자인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념관 내부의 구조는 크게 월드컵 기념물 전시와 참여형 전시실, 직접 경기장 안에 들어가 보는 것과 스토어로 구분해볼 수 있겠다.
1. 월드컵 기념물 전시
우선 기념관의 목적과 의미에 맞게 2002 한일 월드컵과 관련된 전시물들이 기념관의 주를 이루고 있었다. 한국 축구의 역사부터 당시 월드컵을 어떻게 개최하게 되었는지 까지 판넬에 자세한 설명이 들어 있었고, 한국 축구의 주요 사건들도 잘 정리되어 있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기념관을 좀 더 개발해서 코너 별로 한국 축구의 역사, 2002 월드컵의 역사, K리그의 역사, 홈구단인 FC서울의 역사, 서울 월드컵 경기장의 역사 까지 골고루 담고 있는 기념관이 되면 더욱 의미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FC서울과 같은 구단의 역사는 팬들에게도 뜻 깊고 진행중인 대상이라는 점에서 기념관이 단순히 역사 기념관이 아니라 앞으로 기억을 더 채워나갈 수 있는 살아있는 곳이라는 의미를 더해줄 수 있다.
여러 전시물들 중에서 선수들이 직접 경기에서 신었던 운동화나 싸인이 담긴 유니폼 등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전시품목들이었는데, 당시의 상황이나 선수들의 스토리들을 함께 담으면 그 가치가 더 깊어질 것 같다. 서울 월드컵 경기장 월드컵 기념관에는 특별히 관람객들의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공간은 없었는데, 이런 기념물들 옆에 포스트 잇 등으로 관람객들과 당시의 기억을 나누는 방법도 좋을 것이다.
2. 경기장 내부 관람
처음에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 위치한 전시시설을 찾을 때 가장 궁금했던 점이 경기장 내부를 얼마나 오픈 하고 있는 가였다. 이미 해외의 많은 구단들은 선수 대기실, VIP석, 프레스 석 뿐 아니라 경기장의 곳곳을 둘러보고 직접 느낄 수 있는 구장 투어를 진행 중이다. 이것은 경기장과, 선수들과, 구단과 더 가까이 호흡할 수 있는 방법이며, 단순한 행동으로 이 공간과 나 사이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서울 월드컵 경기장은 경기 외의 시간에 월드컵 기념관을 통해 경기장 내부를 일부 오픈하고 있었다.
이 곳은 기념관과 바로 연결되어 있는 경기장 통로로 입장하면 일반 관중석과 프레스 석이 나온다. 방문했을 때는 K리그 정규리그 경기가 모두 마무리 된 시점이어서 푸른 잔디는 볼 수 없었지만, 아무도 없는 경기장에서도 사람들의 함성과 열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런 게 경기장이 갖고 있는 힘이 아닐까.
일반 관중석 외에 볼 수 있는 곳은 프레스 석이 전부였다. 서울 월드컵 경기장의 자랑인 스카이 라운지 관람석이나 선수 대기실 등을 볼 수 없는 것이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입장료를 조금 인상하더라도 경기장의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 있는 구장 투어 프로그램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 아스날 에미레이츠 구장을 찾았을 때, 레전드 투어라는 이름으로 아스날의 전설적인 선수 찰리 조지가 직접 구장 가이드로 나와서 구장 곳곳을 설명해주는 투어를 경험했었다. 가격은 조금 비쌌지만 선수가 직접 들려주는 과거의 기억들은 그 어떤 것보다도 감명 깊게 와 닿았다.
3. 체험형 전시실
다음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은 보기만 하는 관람이 아니라 직접 체험하는 관람이다. 요즘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도 단순히 대상을 눈으로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오감을 전부 사용하여 효과를 높이는 체험형 전시물들을 많이 만들어 놓고 있다. 서울 월드컵 경기장 월드컵 기념관에서도 이런 체험형 전시를 몇 가지 만나볼 수 있었다.
이런 전시물은 공을 돌리면 축구 용어의 정의가 나오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다른 기념 박물관에서 선수들 기록 맞추기, 명장면을 누르면 재현되는 동영상 플레이어, 선수들 이름을 누르면 전화기에서 목소리가 나오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응용되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눈으로만 구경하는 관람객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소소한 체험형 전시가 지루함을 덜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 밖에도 실제 게임을 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축구 놀이, 한 명은 골키퍼가 되고 한 명은 키커가 되어 승부차기를 하는 게임과 온라인 피파 게임기, 선수들 베스트11에 자기 사진 넣기 등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런 노력들도 지루함을 덜어주고 오감을 자극해서 전시 공간을 더 활용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인 것 같다.
4. 스토어
서울 월드컵 경기장 월드컵 기념관에 있는 스토어의 경우에는 사실 2002년도 기념품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어 볼거리가 부족한 편이다. 2002년 월드컵 상품의 경우에는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뿐더러 이미 2002년의 이미지는 각종 매체를 통해 너무 많이 소비되었기 때문에 흥미도 떨어진다. 홈구단FC서울에서는 경기 때마다 따로 스토어를 개방하는데, FC서울과 병행하거나 새로운 상품을 개발할 아이디어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울 월드컵 경기장 안에 위치한 월드컵 기념관은 의미있는 소장품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기념관 안의 스토리가 부족하고 이미 2002년의 이미지가 많이 소비되었기 때문에 어려움이 따른다. 기념관에 관람객이 한 명도 없는 것은 솔직히 충격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2002년 월드컵의 기억이나 당시의 기념물들을 소장하고 있는 공간은 꼭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이런 소중한 자료들을 좀 더 잘 조직하고 스토리를 불어넣어 계속 살아 움직이는 기념관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불 꺼진 경기장에도 사람들을 불러모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소중한 기억들을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 애써야 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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