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스포츠둥지 기자단

“당신은 학생입니까, 운동선수입니까?” : 주말리그제를 통해 본 학생운동선수의 정체성

                                                                                          글 /정샘(경희대학교 대학원 체육학과)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소위 엘리트 스포츠가 가지는 의미는 실로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손기정 선수를 비롯하여 80년대 프로 스포츠 시대의 시작과 88 서울 올림픽, 그리고 2002 월드컵까지 국민을 울고 웃게 했던 굵직굵직한 역사가 바로 엘리트 스포츠의 손끝과 발끝에서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각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 스포츠 선수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은 ‘대한민국 엘리트 스포츠 이대로는 안된다, 선수의 학업과 미래를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합숙과 훈련에 매진하는 국내 스포츠계의 현실을 볼 때, 이들 어린 선수들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인가를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

학생운동선수가 운동 뿐 아니라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고 과제와 공부를 열심히 하면 흔히들 ‘열의가 있다’라는 표현을 쓴다. 얼마 전, 여론을 뜨겁게 달군 김연아 선수의 ‘F학점’을 기억하는가? 일부에선 개인적인 사생활 침해라는 의견이 분분했지만 결국 초첨은 학생운동선수에게 맞춰졌다. 고려대학교 이기수 총장은 강의 중 이 일과 관련하여 운동선수와 학교 홍보와의 관계를 언급하며 미국은 프로선수가 되면 학교를 쉬거나 그만둔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 재학 중인 미셸위 선수는 휴학생의 신분으로 LPGA에서 뛰다 지난 9월 학업을 위해 잠시 투어를 접고 학교에 복학한 상태다. 그렇다면 두 선수 모두 대학생의 신분에서 미셸위 선수는 공부에 열의가 있는 것이고 김연아 선수는 공부에 열의가 없다라는 표현이 과연 맞는 것인가?




축구협회는 이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학원 축구계에 ‘주말리그제’를 도입하였다. 올해로 2년째에 접어든 주말리그제, 그리고 운동하는 학생, 공부하는 운동선수의 정체성을 묻기 위해 현장의 선수들을 만나보았다.

서울 A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축구부 학생으로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운동을 시작해 특기자전형으로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다. 

역시 서울 A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며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축구부 활동을 하다 지금은 특기자 전형이 아닌 일반 전형으로 대학에 가기 위해 운동과 수능 준비를 병행하고 있다.

두 학생 모두 중학교 때는 6교시까지 수업을 모두 들었으나 졸업을 위해 최저 수업일수를 채우기 위함에 불과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4교시까지 수업을 들었고, 주말리그제가 시작된 2학년 때부터는 6교시까지 수업을 듣고 있었다.


서울 B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농구부 학생으로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운동을 시작하였다. 보통 초등학교 3-4학년 때부터 운동부에 들어가는 우리나라의 관행에 비추어 볼 때 꽤 늦은 편이나 신체 조건이 좋고, 운동신경이 뛰어나 빠르게 팀 내 주전 자리를 꿰찼으며 현재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다. 주말리그제가 도입되지 않은 종목인지라 수업은 4교시까지만 듣고 있으며 평균 열흘 정도의 전국대회를 해마다 4, 5개 정도 치루고 있었다.

주말리그제가 도입된 이후 가장 크게 변한 것은 역시 수업시간이었다. 주말리그 이전에는 아예 수업에 들어가지 않다가 4교시까지 듣는 학교도 생겼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들 학생운동선수들에게 성적은 어떤 의미일까? 역시 시험은 무조건 들어가야 하나 성적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같은 반에 있는 축구부끼리 꼴찌 자리를 두고 라이벌 경쟁을 벌이고 아주 가끔가다 일반 학생들이 꼴찌 자리를 차지한다고. 혹시 학원 같은 것은 다니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학원은커녕 숙제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 되돌아 왔다. 문득 그런 모습을 지적하는 선생님들은 없는지 궁금해졌다.
 

수능을 준비하는 이 학생의 경우 선생님들의 지적이 있지만 대개는 자도, 딴 짓을 해도 거의 터치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 학생선수들 스스로는 공부랑 운동 중 어떤게 우선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당연히 운동이다. 운동을 하고 있는데 공부는 잘해서 뭐하나.

나도 공부는 필요 없는 것 같다. 공부 할 때는 나름 열심히 했었고 성적도 괜찮았는데 운동을 시작하니 자연스레 공부는 생각을 안하게 된다.

난 지금은 공부다. 하지만 운동을 할 때는 공부가 아예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운동선수란 것이 아무래도 신체를 사용하는 특성상 불의의 사고로 운동을 그만둬야 하는 경우가 안 생기리란 보장이 없다. 그럴 경우엔 어쩔 수 없이 일반 학생과 같은 위치로 돌아와야 하는데 그런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최소한의 공부, 기본지식은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지 물어보았다.

물론 기본은 해야 하는게 맞다. 하지만 지금의 시스템 상에서는 선수들이 공부 자체가 힘들어서 못할 것 같다.

학생선수들은 아예 시작도 하기 전부터 못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게 아닌데, 그냥 하면 되는데 자기는 못한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한다. 나도 공부만 하던 다른 친구들에 비해선 많이 늦은 상태에서 아주 기본부터 무작정 외워가며 시작했고, 하니까 되더라.

또 아예 하려고 하지도 않고, 왜 해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는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앞서 밝혔듯이 똑같은 길을 걸었던 선수들의 대부분이 운동을 하느라 공부를 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고 후배들을 위해,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 정부와 협회, 학교에 각성을 요구했다. 하지만 실제로 운동을 하고 있는 이들 선수들은 과거 선수들의 학창시절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듯 보였다.
외국의 경우 일정 커트라인 이상의 성적을 취득하지 못할 경우 대회 출전이 불가능하게끔 제도를 마련해 놓고 있으며, 가까운 일본의 경우만 하더라도 흥미를 바탕으로 한 클럽식의 운영일 뿐 우리나라처럼 ‘준 프로선수 육성’ 식의 제도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서 이들 학생 선수들에게 외국처럼 운동을 취미로 하는 시스템으로 변화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난 운동을 잘하면 운동, 공부를 잘하면 공부가 맞다고 생각한다. 요즘 대학들도 그런 방향으로 인재들을 뽑는 추세 아닌가. 재능 있는 것 하나만 확실하게 잘하면 되지, 솔직히 ‘만약에’와 ‘불의의 사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난 아니다. 내 자식이 공부 안하고 운동만 한다고 하면 안시키고 싶다. 공부랑 운동 모두 다 중요하다.

아예 운동만 할거라면 프로팀 산하 유스팀으로 가고 나머지 선수들은 학생의 신분으로 공부랑 같이 운동을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학원 축구 전체가 그렇게 따라줘야 가능한 것이지 각 학교에 자율적으로 맡겨서 그냥 한, 두 학교 시행하는 것 가지고는 불가능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행된 것이 주말리그제이고, 올바른 학생운동선수의 모형을 정립하기 위한 움직임 역시 주말리그제를 통한 ‘공부하는 운동선수’이다. 겉으로 보기에 가장 크게 바뀐 수업시간 확대 외에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바는 어떠한지 물었다.

단순히 수업시간이 늘어간 것 외에 수업에 들어갈 수 있으니까 공부를 하고 싶은 선수들은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하지만 수업을 다 듣고 예전과 똑같이 운동을 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많이 피곤하고, 주말엔 시합을 해야 하니 일주일 중 제대로 쉴 시간이 없다는 점은 좋지 않다.

예전보다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어야 하니 다리가 많이 붓는다. 심지어 축구화가 안 들어간 적도 있다.

만약 농구도 주말리그제가 도입된다면 진짜 스트레스 받을 것 같다. 주말만 바라보고 열심히 참고 운동하는데 주말에 쉬지 못한다면 끔찍하다.

주말리그제는 각자 입장에 따라 생각하는 게 틀리다. 나는 지금 공부를 해야하는 입장이니 조금 피곤하고 힘들어도 지금의 방식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만약 나도 공부 할 필요없이 운동만 했다면 다시 휴식이 보장되는 전국대회로 바뀌었으면 하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주말리그제 형식이 확대되어야 하며, 앞으로는 공부와 운동을 병행해서 하는 것이 분명 맞다고 생각한다.


하긴, 솔직히 운동하는 선수들 너무 무식한 게 사실이다. ABC도 모르고 자기 유니폼에 있는 영어도 모르는 선수도 있다. 초등학교부터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하는 문제인 것 같다.

맞다. 나누기처럼 초등학교 수준의 지식도 없는 선수들도 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선수들 스스로가 ‘나는 못한다’는 생각을 갖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운동선수들의 학습권 보장은 누가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선수들이 그런 생각을 갖지 않게 축구부반을 만들어서 수준에 맞추어 가르쳐주면 어떨까 싶다.

우리 학교는 농구부와 펜싱부를 합쳐서 운동부반을 운영하고 있다. 비록 4교시이긴 하지만 수준에 맞추어 성적이 아니라 기본 학습 위주로 가르쳐주니 절대 자거나 딴 짓하지 않고 수업에 임하게 된다. 비록 몸은 조금 피곤하긴 하지만 많이 도움이 된다.

주말리그제의 장단점을 나누던 이야기는 자연스레 학생운동선수의 학습권으로 초점이 맞춰졌다. 농구 선수는 지금 코치들도 공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수업에 들어가서 어떤 책이라도 읽으라고 말하지만 경기의 승패 앞에서는 감독, 학교, 학부모의 압력이 있다 보니 결국 공부보다 운동을 더 강요하는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했다. 학생선수들의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이들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 새삼 느껴졌다. 비록 당장의 학생선수들에게는 수혜가 되지 않을지라도 공부의 중요성을 알고 학생운동선수의 정체성을 머리와 마음에 담고 있어야 이들이 지도자가 되었을 때 당장의 이익보다 선수의 미래를 생각하는 곧은 지도를 할 수 있을 것이며, 비로소 올바른 학생운동선수의 모형이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만난 꿈 가득한 어린 선수들이 단순히 부와 명예를 쫓는 선수가 아니라 진심으로 우리나라 스포츠의 미래를 생각하고 기꺼이 도울 수 있는 보석 같은 선수가 되길 진심으로 바래본다.

ⓒ 스포츠둥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