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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둥지 기자단

여름의 끝자락에 그녀들을 만나다

              

                                                                                          글 : 정샘(경희대학교 대학원 체육학과)


바다로 산으로 전국이 들썩거리는 바캉스의 계절 여름, 대한민국에 낭보가 날아들었다. 바로 U-20 여자월드컵대회에서 3위의 놀라운 성적을 거둔 여자 축구대표팀. 그 중 우리나라의 골문을 든든하게 지켜준 ‘얼짱’ 골키퍼 문소리 선수의 미니홈피 글이 세간을 뜨겁게 달구었다. ‘친구들이 핑크빛 하이힐을 신고 거리를 나설 때 나는 흙 묻은 축구화를 신고 운동을 나서야 했고, 친구들이 화장을 하고 얼굴을 꾸밀 때 나는 햇빛에 얼굴이 타가며 운동을 했으며, 친구들이 배낭을 메고 여행을 나설 때 나는 큰 가방을 메고 힘든 전지훈련을 나서야했다’고 적어 국민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 것. 지금까지 남자 선수를 비롯 선수들의 여자친구까지 본인들의 푸념 아닌 푸념을 다룬 글귀들은 여럿 있었지만 여자 운동선수로서의 고충, 힘듦과 고됨을 조곤조곤 풀어낸 것은 처음이었다. 대중들은 ‘하이힐 안 신고, 화장하지 않아도 빛이 난다’며 조금은 특별한 스무 살 여대생에게 무한 격려를 쏟아냈다.

이 땅에서 ‘운동하는 여자’는 ‘운동을 하지 않는 여자’와는 물론 ‘운동하는 남자’와도 조금 다른 대접을 받는다. 특히 일반 여성과는 보이지 않는 유리벽이 존재하는 것만 같다. 마치 아줌마와 여자의 구분처럼. 유난히도 무더웠던 2010년의 뜨거운 여름, 당당히 태양과 맞선 꽃보다 아름다운 선수들을 만나 그녀들의 여름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1. 푸른 잔디 위의 무지개를 만나다, 경희대학교 필드하키부

여름이 가려는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 오후, 경희대학교 필드하키장을 찾았다. 우산을 때리는 강한 빗소리를 뚫고 운동장을 돌며 몸을 푸는 선수들의 경쾌한 파이팅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래도 여린 여자 선수들인데 온몸이 젖어 감기는 걸리지 않을까 내심 걱정스러운 질문에 물을 뿌려 잔디를 적신 후 경기를 치르는 종목의 특성상 이 정도의 비는 아무렇지 않다는 선수의 대답이 되돌아 왔다. 미소 띈 얼굴로 뒤돌아 달려가는 선수의 모습 뒤로 마침 경기장 옆을 지나는 한 여학생이 혹여나 바짓자락이 빗물에 젖을까 조심조심 발걸음을 떼는 모습이 눈에 들어와 대조를 이뤘다.

28년의 역사를 가진 경희대학교 필드하키부는 매 대회 우수한 성적과 지속적인 대표선수 배출로 명실공히 한국여자하키의 대들보 역할을 담당해왔다. 실력만큼 인성이 멋지고, 개인보다 팀을 빛내는 17명의 필드하키 여제들은 짧은 여름 휴가를 마치고 다시 훈련 스케쥴에 복귀하여 9월의 마지막 대회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비록 기간은 몇 일 안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선수들은 자유롭게 가족과 친구도 만나고, 부족한 운동도 하고, 놀기도 하는 등 특별한 방학이고, 값진 휴가를 보냈노라고 말했다. 특히 필드하키부 선수들의 방학이 여느 대학생의 방학과는 정반대라고 말하는 박충서 감독은 올해 4월부터 7월까지 매달 한 대회씩을 치르고 난 후 지리산 계곡으로 선수들을 데려가 소중한 추억을 선물하기도 했다. 선수들은 이런 게 바로 단체종목의 매력이라고 꼽으며 형제보다 더 가깝고 친한 것이 팀 동료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선수들은 운동으로 인해 맘껏 하고 싶은 공부를 해보지 못하고, MT나 배낭여행처럼 자유로운 경험을 해보지 못한 점, 그리고 어릴 적부터 계속된 합숙생활로 인해 가족과의 시간을 충분하게 가지지 못한 것들을 매우 아쉬워하고 있었다. 4학년 배소현 선수는 도서관에서 밤샘공부를 해보는 게 대학생활의 꿈이었다고 말해 일반 학생들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겐 간절한 꿈이기도 함을 새삼 느끼게 했다.

또 여름을 보낸 선수들은 공통적으로 더위로 인한 체력 저하와 검게 탄 피부를 고민거리로 꼽았다. 특히 오주현 선수는 ‘선수이기 이전에 여자’라며 항상 검게 탄 팔, 다리를 볼 때의 속상함을 이야기하였으며, 이지애 선수는 초등학교 6학년 이후로 뽀얀 피부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골키퍼 이예솔 선수는 작은 체구에 5kg이 넘는 무겁고 두꺼운 보호 장비로 온 몸을 휘감고 찜통 더위를 버텨야 하는 고충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선수들은 팀 운동인 필드하키를 통해 배려와 인내심, 그리고 예절을 배울 수 있었으며, 집중력을 키울 수 있었고, 타인과 다른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박충서 감독 역시 선수들이 힘든 부분이 있겠지만 한 발짝만 물러나 둘러보면 감사할 일이 더 많을 것이고 그것이 바로 진정한 선수라 말해 듣는 이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필드하키 종목이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비인기 종목이고 보급 또한 많이 되지 않은 운동이지만 선수들은 하나같이 필드하키가 알면 알수록 매력있는 운동이며 보는 재미가 어느 종목보다 뛰어나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주 가끔이긴 하지만 TV에서 필드하키 중계를 한다며 단 몇 분만이라도 지나치지 말고 봐달라는 당부를 빼놓지 않았다.

비록 어두운 하늘에서는 하염없이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푸른 잔디 위 그녀들은 열일곱 빛깔의 아름다운 무지개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2. 물 위의 백조를 만나다, Y.C 싱크로나이즈드 클럽

매년 늦은 봄이 되면 대한민국은 유난히 다이어트 열풍에 휩싸이게 된다. 바로 수영복에 걸맞는 몸매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모 시리얼 브랜드에서는 여름을 맞아 자신있게 비키니를 입으려면 체중조절용 시리얼을 먹으라는 광고를 내보내기도 했다. 이처럼 여름이 되면 온 국민이 폭염에 지쳐 바다, 계곡, 수영장 등 물을 가장 먼저 찾게 된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연중 행사에 그치는 ‘물놀이’가 삶의 일부로 고정되어 있는 사람들도 있다. 5m 깊이의 퍼런 수영장에서 묵묵히 본인들의 자리를 지키는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이하 싱크로) 선수들. 그녀들을 만나러 발길을 옮겼다.

Y.C 싱크로 클럽은 1984년 설립되어 올해로 그 역사가 27년으로 국내 사설 수중발레 팀 중 가장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나라 싱크로와 그 역사의 시작을 함께한 팀이다. 수영의 네 종목 중 경영을 제외한 나머지 수구, 다이빙, 싱크로는 국내 보급률이 매우 낮은 편으로 선수층도 경영에 비할 바가 되지 못한다. 특히 싱크로는 아직 전용 풀조차 갖추고 있지 않아 다이빙 풀을 이용하여 연습을 하며 그나마도 확보가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더욱이 올해 5월부터는 ‘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을 치른 잠실 제1수영장이 안전사고를 우려로 폐쇄한 후 현재 영구 폐쇄까지 제기돼 그나마의 다이빙풀 하나마저 사라질 위기에 있다. 그럼에도 50명 남짓이었던 국내 싱크로 등록 선수는 2008년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에 있으며 현재 100여명의 선수들이 포스트 박태환, 김연아를 꿈꾸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그 중 30명 남짓의 선수들이 Y.C 싱크로 클럽 소속으로 대한민국 싱크로의 큰 산맥 임을 입증해주고 있다.

수중발레 꿈나무를 만나기 위해 서울체육고등학교 수영장을 찾은 날은 어린 선수들의 짧은 휴가 후 첫 훈련 날이었다. 며칠이나 떨어져 있었을까 속속 도착하는 선수들은 어여쁜 백조의 무리가 한 명씩 늘어날 때마다 반가워 손을 흔들고 뛰는 모습이었다. 어린 그녀들의 방학은 어땠을까? 고등학교 이상의 선수들은 대표팀 소집으로 자리를 비우고 대부분 중학교,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던 선수들의 방학은 역시 훈련을 주를 이루었다. 송하나(고3), 김지연(중1) 선수를 비롯해 대표팀 상비군 합숙 훈련에 다녀온 선수들도 있었고, 팀이 단체로 합숙을 하지 않는 종목의 특성상 대부분의 선수들은 운동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공부를 하였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어린 선수들은 운동을 하지 않는다면 다른 친구들처럼 학원도 다니고 예습도 철저히 하고 싶다고 말했다. 특히 연승민(중1) 선수는 방학을 이용해 공부를 집중적으로 하고 싶다고 말했으며, 고3 수험생인 송하나 선수는 수능공부에 전념하고 싶다고 해 운동과 공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아야 하는 힘듦을 가늠할 수 있었다.

물론 깊은 물 속에서 숨을 참아 호흡을 컨트롤하는 것이 바탕이 되는 종목이라는 점과 몸을 이용하여 아름다움을 표현해야 하기에 끊임없는 체중조절과 몸매관리를 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엄지완(중3) 선수의 말처럼 소수의 인원으로 하는 종목이라 의지할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점 등은 어린 선수들이 느끼기에 힘들기도 하지만 싱크로를 통해 체력이 향상되고, 아름다운 몸매로 자신감을 뽐낼 수 있으며 스스로 특별한 존재로 느껴지는 것과 같이 자긍심이 생긴 점은 싱크로를 통한 자랑거리라고 손을 치켜 올렸다.

오는 9월 13일 김천에서 열리는 회장배 겸 KBS배 전국수영대회 참가를 위해 다시 마음을 다잡고 힘차게 다이빙풀로 입수하는 어린 선수들의 모습을 보니 세상 어떤 것도 이보다 사랑스러운 한 무리 백조일 수 없으리란 생각이 머리 속에 가득했다.

싱크로 종목의 활성화를 기대하며 다음 올림픽에서의 메달 가능성을 점쳤던 김영채 단장 겸 대한수영연맹 부회장의 예견대로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피겨의 김연아, 리듬체조의 신수지를 잇는 싱크로의 여왕이 탄생하길 기대한다.




* 그녀들을 만나고 싶다면…
 - 경희대학교 필드하키부  http://sport.khu.ac.kr
 - Y.C 싱크로나이즈드 클럽  http://www.ycsynch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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