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이승건 (서울대학교 강사)
현대철학자들 중에는 현대화의 과정을 이성을 통한 합리화의 과정이라고 보곤 한다. 특히 이러한 합리화의 가장 빛나는 실현은 과학․공업․기술의 발전을 통한 자연의 정복을 꼽기도 한다. 그러나 현대화의 합리성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을 자멸의 수렁으로 몰고 갔다는 패러독스 또한 지적되고 있다.
즉 지금까지 과학적 학문과 기계적 발명의 발전을 인간 상태를 구제해 주는 가장 확실한 수단으로 찬양해 온 모더니스트들이 관점에 대해 반-모더니스트들은 기계의 인간화가 인간성의 기계화라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고 있다는 우려의 진단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기계화에 대한 해독제로서의 예술에 대해 그 현대적 기능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기술(技術)과 예술(藝術)은 서로 대척점에 서 있는 불구대천의 원수관계처럼 보인다. 아니, 기계화의 과학시대에 대해 예술의 감성(pathos)이 온전치 못한 사회 상태를 치유하고 있는 듯한 형국이다. 언제부터 이러한 관점이 나타난 것일까?
우리 전통문화에서 기술(공예)를 상징하는 치우천황
원래 예술이라는 용어는 그리스어 ‘테크네(technē)’를 번역한 라틴어 ‘아르스(ars)’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테크네와 아르스가 오늘날 ‘아트’와 동일한 의미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리스 시대의 테크네 ― 로마와 중세, 심지어는 근대 초기인 르네상스 때까지도 쓰였던 아르스 ― 는 솜씨, 즉 물품, 가옥, 동상, 배, 침대, 단지, 옷 등을 만드는 데 필요한 솜씨뿐만 아니라 군대를 통솔하고 토지를 측량하며 청중을 사로잡는데 필요한 솜씨까지를 뜻했다. 이 모든 솜씨들이 ‘테크네’라 지칭되어 건축가, 조각가, 도공, 양복장이, 전략가, 기하학자, 변론가 등의 ‘테크네’라 불렸던 것이다.
이와 같은 예술의 용어에 관한 현대 이전의 개념 속에는 예술과 기술의 구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이때의 솜씨는 규칙에 대한 지식에서 발휘되는 것이어서 규칙과 법칙 없이는 테크네도 존재할 수 없었던 터라, 예술 또한 지식의 결과로서 즉 이성(logos)의 산물로서 과학기술과 구별될 수 없었다. 결국, 현대화의 합리성으로서 기술에 대한 경계는 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나타난 현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기술을 상징하는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
그렇다면 스포츠에 있어서 기(技)와 예(藝)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스포츠가 기술의 결과인지 예술의 결과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스포츠 경기를 관람할 때 열광하며 박수를 보내기도 하고 아쉬워하며 야유를 보내기도 한다. 스포츠의 어떤 면이 우리를 이와 같은 상태로 이끌고 있는 것일까? 바로 스포츠맨의 경기를 이끌어가는 플레이와 플레이로서 진행되는 경기 그 자체가 우리를 열광케 하는 것이다. 즉 어떤 때는 스포츠맨의 멋진 플레이에 매혹당해 그에게 그리고 경기 자체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며, 또 어떤 때는 어처구니없는 그의 플레이에 실망하여 그 경기에 대해서도 비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때의 스포츠맨의 플레이는 기술로 읽어야 하는가? 아니면 예술로 읽어야 하는가? 모든 스포츠맨은 자신의 분야에서 경기력 향상을 위해 경기기술을 갈고 닦을 것이다. 또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여 연마하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할 것이다. 스포츠맨은 스포츠 경기와 관련된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을 담금질하여 관중 앞에서 경기를 치른다고 말할 수 있다. 이 경우 스포츠는 스포츠맨에 의한 경기기술의 완벽한 소화라는 명제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스포츠는 예술적인 측면에서 이해되기도 한다. 본디 예술은 창작자와 감상자 그리고 그 창작의 결과로서 작품이라는 기본 구조 속에서 성립된다. 스포츠 또한 경기수행자로서 스포츠맨과 관중 그리고 관람꺼리로서 경기 자체라는 구조를 갖고 있다. 따라서 스포츠맨은 마치 예술분야에서의 창작자가 그러하듯이 숙련된 기술과 결합된 결과로서 경기 그 자체를 만들어 낸다. 여기에 관중들은 스포츠맨들에 의해 제공되는 관람꺼리로서 경기를 관전하며 즐거워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는 감정의 체험을 겪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포도의 표현으로 감성(예술)을
상징하는 디오니소스
따라서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스포츠에 있어서 기(技)와 예(藝)는 현대철학자들의 주장처럼 서로 어울릴 수 없는 두 성질로서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는 이심동체(異心同體)인 것이다. 마치 이것은 그리스 신화 속에서의 기술을 상징하는 헤파이스토스처럼, 그의 기술력이 만든 올림포스의 신전과 공예품들이 더 없이 아름다웠다고 하는 찬사 속에서 확인되는 사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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