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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체육이야기/[ 전문체육 ]

김운용을 인터뷰하라! 스포츠 분야의 암묵지를 명시지로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글: 남상우(충남대학교 박사)
 

명시지와 암묵지

와이프가 잡채를 해준 적이 있다. 정말 맛이 없었다. 차마 대놓고 말은 못했지만. 하지만 이상하게 어머니가 해주시는 잡채는 단시간에 후딱 만들어내시는데도 불구하고 정말 맛이 좋다. 신기하다. 와이프는 장장 6시간의 대작업에도 불구하고 정말 “맛없는” 잡채를 내놓는 반면, 어머니는 주무시다 일어나셔서 대충 하셨는데도 맛이 정말 좋다. 일종의 ‘손맛’이다.

이러한 손맛은 글이나 말로 어떻게 표현하기가 어렵다. 이를 알려면 옆에서 만드는 법이나 간을 보는 법을 따라하고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한다. 이러한 지식을 일종의 ‘암묵지(暗黙知)’라 하는데, 이는 “말이나 글로 설명하기 어려운 지식”으로서 우리는 이와 같은 암묵지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 이 암묵지의 반대가 바로 명시지(明示知)다. 당연지사, 이는 말이나 글로 표현이 되는 지식을 말한다. 매뉴얼이 대표적이다.

세상만사가 비슷하듯 스포츠에서도 이러한 명시지와 암묵지가 공존한다. 노장 선수들이 게임을 풀어가는 방식이나, 노련한 감독이 선수들을 다루는 방식 등이 모두 암묵지에 속한다. 다른 이들은 모르는 자신만의 ‘노하우(know-how)’. 이게 바로 암묵지다. 이는 눈에 보이지 않기에 획득하기 어렵지만, 한 번 획득하고 나면 명시지보다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스포츠 분야에서 밝혀내야 할 암묵지

예전부터 나는 이러한 암묵지에 관심이 많았다. 논문을 처음 쓰려고 하는데, 도대체 아무리 매뉴얼(연구법 서적)을 보고 써도 지도교수가 쓴 것처럼 나오지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지도교수에게 가 “어떻게 쓰면 교수님처럼 써요?”라고 여쭙자 돌아오는 답이 걸작이었다. “자꾸 써봐.” 답이 없다는 것이다. 잘 쓰는 사람 옆에서 배워가며 자꾸 쓰다 보면 는다는 것이 답이었다.

논문 잘 쓰는 것도 일종의 노하우로서, 암묵지 영역에 속한다. 문제는 이러한 암묵지가 사적으로만 전수되고, 공유된다는 사실이다. 물론, 자신만의 노하우는 살아가는데 절실한 일종의 ‘필살기’이니만큼 공적으로 공유되기 어려운 측면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사회적 발전을 위해서 공유화의 노력이 절실하다. 시행착오를 줄이면서 사회적 낭비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고, 노하우가 명시화되면서 또 다른 노하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너지’ 효과 때문이다.




이 암묵지와 관련하여 스포츠 영역에서 조금 더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스포츠 외교 분야다. 우리에게 가장 취약한 분야가 바로 이 부분인데, 한 예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분야를 얘기해볼 수 있겠다. 물론 무분별한 국제스포츠 유치에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분야에 국내 스포츠인들이 많이 진출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굴뚝같다. 국가의 위상을 높이기 때문이라는 그런 이유가 아닌 선진 스포츠시스템과 그것이 어떻게 유지, 발전되는가를 “정치적”으로 체감하여 학습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런 분야로의 진출에 취약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가령 그 동안 정치경제 분야의 인물에 너무 의존하면서 자생력을 기르지 못한 이유도 있을것이고, 스포츠외교의 힘을 간과했던 과오의 이유도 있을 수 있다.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그 쪽 분야로의 진출이 필요함에 합의했다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지 않겠는가? 특히 우리가 그 동안 몰랐던 그 쪽 분야 사람들의 ‘노하우’를 말이다.


암묵지를 명시지로 바꾸는 인터뷰

암묵지로서의 노하우를 알아내는 방법으로 난 인터뷰를 추천한다. 인터뷰(inter-view)란 글자 그대로 ‘안을 본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이 겪어왔던 여러 경험을 직접 볼 수 있다는 말로 치환할 수 있기에 인터뷰는 암묵지에 접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특히 인터뷰를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은, 앞서 우리가 부족하다고 여겨왔던 스포츠 분야의 암묵지를 명시화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지금은 체육계에서 추방당한(?) 김운용 전 IOC위원을 만나 그의 생활 전체를 ‘인터-뷰’ 해보는 작업은 어떨까? “국가의 배신자” 따위에게 뭘 얻을 수 있겠냐고 핏대 세우실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아마 김운용만큼 IOC의 정치학을 경험한 이가 몇이나 있을까? 물론 정치학만을 담아 배우자는 말은 아니니 오해는 마시길. 분명 그만이 아는 국제스포츠외교의 ‘노하우’가 있을 것이고, 그것을 명시화하는 작업은 어려울 수 있을망정 무용하지는 않을 것이란 게 내 생각이다.

여기에 더 나아가 내 경우엔 스포츠사회학자들을 찾아 다니면서 “스포츠사회학자, 스포츠를 말하다”란 주제로 인터뷰 책을 내고 싶기도 하다. 그들이 스포츠를 생각하는 방식, 그것을 지식으로 구조화하는 방식,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방식 등이 궁금하고, 그들만의 노하우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일평생의 여러 목표 중 하나인데, 이 역시 ‘선생(先生)’들의 앞선 ‘노하우’를 명시화하는 작업의 일환이다.


스포츠 분야의 암묵지, 화려하진 않지만 필요한 지식

암묵지는 고상하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오히려 누추할 수 있고, ‘그게 뭐야?’라는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또한 암묵지를 글로 쓴다고 해서 뭐 나아질게 있냐는 반론도 가능하다. 물론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한계를 가진 암묵지이긴 하지만,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보다는 백번 낫다고 보는 게 내 입장이다. 혹시 아는가? 자꾸 연구하며 노력하다 보면 암묵지를 기록하는 더 좋은 방법이 나올지 말이다.

우리들의 공기업은 특히 전임자가 나가고 나면 후임자는 일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정력낭비’의 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이 모든 게 암묵지의 활용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이러한 암묵지를 밝혀내고 기록하며 체계화하는데 사회적 차원의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말로만 지식경제니 지식기반사회니 하지 말고, 당장 우리 주변에 있는 암묵지부터 명시지로 바꾸려 시도해보자. 주변에 정말 선수들을 잘 가르치는 코치나 감독을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리고 기록해보자. 삶이 바뀔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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