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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체육이야기/[ 전문체육 ]

야구하는 여자, 안향미

                                                                                       글 / 최영금 (한국체육대학교 박사과정)


스포츠에는 과연 여성종목과 남성종목이 있을까? 성별 차에 따른 스포츠 법규가 없다면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스포츠에서 여성에게 어울리는 스포츠와 남성에게 적합한 스포츠를 나누는 것일까? 여성학, 사회학자들은 선사시대 이후로 형성된 남성중심으로 짜여진 세계관(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불합리한)을 남녀모두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남성이 중심으로 차지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조차 금기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의 고정관념은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드디외가 말한 ‘공론의 모순(paradoxe de la doxa)’에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  



                                                                              사진출처: 조이뉴스21


여성 야구선수 안향미를 아시나요?
 

테니스부에서 활동하던 초등학교 여학생이 있었다. 그 여학생은 야구부에서 운동을 하던 동생을 기다리면서 혼자 야구를 지켜보곤 했는데 어느 날 테니스부가 없어지면서 아버지의 권유로 야구를 시작하게 된다. 이때부터 평범한 여자아이와는 다른 방향을 가게 되면서 매번 야구하는 여자아이를 받아 줄 학교를 찾아 돌아다니는 고난의 길을 걷게 된다. 향미의 아버지는 진학할 학교를 찾아, 학교 야구부 감독을 만나러, 교육청 관계자를 만나러 동분서주하고 결국 남녀공학이면서 야구부가 있는 덕수정보산업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여성 야구선수 최초로 공식대회 출전

1999년 4월 30일. 제33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4강전. 대한민국 역사상 공식 경기에 여성이 선발투수로 나서는 놀라운 사건이 벌어진다. 1905년 야구 도입이후, 거의 100년만에 마운드에서 선 여성선수는 타자를 데드볼로 출루시키는 것으로 아쉬운 데뷔전을 갖는다. 이 경기로 인해 언론의 주목과 세간의 이목을 끌어 ‘야구하는 여성’을 알리기는 했지만, 대학진학과 프로팀 입단의 진로문제로 어려움을 겪는다.  


우리나라에서 정말 여자는 야구를 할 수 없었을까?

엄밀하게 따지자면 대한민국 최초의 여자야구선수는 안향미가 아니다. <한국 야구사>에 따르면 최초의 여자 야구경기는 1925년 경남 진주에서 열린 마산 의신여학교와 진주 시원여학교의 경기이다. 같은 해 11월 동아일보가 주선한 미국여자야구단의 경기, 1949년 최초 여자 소프트볼팀이 기록이 남아있으나 활성화되지는 못했다. 현대로 들어오면서 여자야구는 안향미가 최초라고 기억될 만큼 진귀한 일이 된 것이다.

여성 야구선수는 언론에 단골로 등장하면서 야구협회 규정에 ‘남자가 아닌 자는 선수가 될 수 없다’라고 명시되었다고 하나, KBO 야구규정에는 여자가 야구를 할 수 없다는 내용은 없다. 단 KBO총재 권한에 따른 ‘부적격자’에 대한 규정이 있으나 안향미가 여기에 해당되어 선수등록이 거부되지 않았으며 대학 이하 유소년 야구에는 혼성팀을 인정하는 규정도 있었다. KBO 야구 원로는 만약 여성이 많았다면 여성차별적인 규정도 만들어질 수 있었을 것이라 말한다. 역으로 규정이 없다는 것이 이미 차별이지만 아무도 그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여성 야구단의 창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안향미는 다시 진로에 대한 벽에 부딪친다. 대학은 여자를 위한 탈의실, 샤워실의 시설이 없어 합숙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입단 테스트도 조차 거부하였다. 유일하게 프로야구단 한화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고 또 선수가 아닌 프런트 일을 제의하지만 엘리트 야구선수로 남고 싶었던 그녀는 다른 방향을 모색한다. 그러나 미국여자야구선수단의 입단 제의도 무산되고 2002년 일본여자야구협회 소속인 세미프로 여자야구팀 드림윙스에서 투수와 3루수로 활동하다 2년 후 한국에 돌아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서 회원을 모집한다. 세 번째 연 정모에서 단 3명이 모여 여자야구를 의논하고 팀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여성 야구팀은 시작으로 2008년 1월 한국여자야구연맹이 현판식을 마치고 2010년 현재 전국 총 22개팀이 연맹에 가입하여 선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해 선발된 대표팀 선수는 초창기 자비로 운동했던 때와 달리 선수활동과 관계된 비용을 지원받고 있다.


여성 스포츠의 무거운 걸음마, 그러나 세상에 던지는 물음표 하나
 

현실의 모순을 발견하고 물음표를 던지며 더 나은 삶을 희구할 때 인간 역사의 수레바퀴는 굴러간다. 비록 그 시작은 미약하고 무거운 걸음일지라도 역사는 앞으로 전진해 나갈 것이다. 더 이상 스포츠에서 여성과 남성의 구분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인간이라면 누구나 스포츠를 즐기고 누릴 수 있는 날이, 여자가 야구를 하는 것이 더 이상 신기한 일이 아니라 그냥 일상이 되기를 희망한다.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곡동 한국야구위원회 선수명부에는 흰색 야구 선수복을 입은 안향미라는 여성선수의 사진이 보관되어 있다. 빛바랜 선수명부가 더 낡아지기 전에 여성 야구인들의 얼굴이 더 채워지기를 소망해본다.

                                             <덕수정보산업고등학교 야구특기생으로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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