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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체육이야기/[ 국제체육 ]

억울한 심판의 오심과 국제스포츠중재 제도

                                                 글 / 연기영 (동국대 법대 교수/한국스포츠엔터테인먼트법학회 회장)



◯ 지나쳐버린 휴이시 주심의 오심논란

세계적인 은반의 여제로 확실히 자리매김 한 김연아의 열풍에서 스피드스케이팅 동갑내기 3총사
모태범, 이상화, 이승훈까지 우리 국민들을 즐겁게 해주었고 가장 뛰어난 성적을 올렸던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막을 내렸지만, 아직도 아쉬웠던 순간이 지워지지 않는다. 2월 25일 오전(한국시간)에
열렸던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결승 경기였다. 콜리시움에서 1위로 들어 온 한국대표팀이
실격 당한 뒤 허탈해 하고 있다. 뛰어난 실력으로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했지만, 실격으로
금메달을 중국 대표팀에게 넘겨준 우리나라 쇼트트랙 여자 선수들의 표정, 바로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남자 1500m 결승전에서 1등으로 들어온 한국의 김동성을 실격시켜 미국의 오노에게
금메달을 넘겨주었던 때와 똑 같았다. 한국, 미국, 유럽 등 모든 나라의 언론에서도 주심인 제임스
휴이시의 판정은 명백한 오심이라고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심지어 금메달을 어부지리로 딴
중국에서 조차 많은 네티즌들이 심판의 부당성을 지적하였다.

                                                                                               사진출처 : 충청일보

더욱이 오심의 중심에 서 있는 제임스 휴이시(James Hewish)는 우리나라 선수들에게 여러번
잘못된 판정을 내린 악연이 있다. 2002 제19회 솔트레이크시티 동계 올림픽, 2006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대회, 2006 제 20회 토리노 동계올림픽, 2007 이태리 밀라노 월드컵, 2008 세계쇼트트랙
선수권대회, 2010 제21회 밴쿠버 동계올림픽 등의 대회에서 신기하게도 그는 경기의 주심으로
실격판정을 내렸다. 특히,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때 발생한 '김동성-오노 사건'은
우리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다. 당시 주심을 맡았던 제임스 휴이시는 김동성이 투스텝(양발을
교차하지 않고 한쪽 발을 연달아 사용. 진행방향을 알 수 없게 해 위법)을 했다고 판정했다.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이 비난의 도마에 올랐다.

한국은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하는 등 모든 노력을 기울였지만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당시 CAS는 결정에서 "경기의 심판이 자의적이거나, 악의적인 의도를 가지거나 의무를
위반하여 불공정한 심판을 했음을 입증하는 직접적인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우리의 신청을
기각하였다. 그러나 휴이시에게는 심판의 2년 활동정지라는 징계가 내려졌고, 국제빙상연맹(ISU)
의 비디오판독 제도 등이 도입되었다.


◯ 심판의 오심은 스포츠중재재판소에서 뒤집을 수 있다.

2008년에 수정된 ISU의 스피드 스케이팅 및 쇼트트랙 스케이팅 특별규정 제292조 1. b항에 따르면
“추월은 항상 허용되지만, 추월당하는 선수가 부당한 행위를 하지 않는 한, 모든 방해 및 충돌의
책임은 추월을 시도하는 선수가 져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번 사건에서는 한국과 중국의 충돌 과정에서 누가 먼저 앞서 나갔느냐가 쟁점이 되는데 이은별과
터치한 김민정이 코너에서 쑨린린과 자리싸움을 할 때 인코스를 선점, 앞서 나간 쪽은 한국이
되고 추월을 시도하려는 쪽은 중국이 된다.

휴이시 주심의 이번 판정은 명백히 국제빙상경기연맹(ISU) 규정을 어겼다. 또한 이렇게 반복되는
편파적이고 애매한 심판의 판정은 올림픽헌장에 명시된 스포츠맨쉽과 올림픽 정신을 위반한
것이다. 따라서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당연히 제소해서 바로잡아야 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한국선수단이나 대한올림픽위원회(KOC)에서는 스포츠 중재
재판소(CAS)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억울하고 답답한 실격 판정이지만 국제빙상연맹
(ISU)이 항의나 제소를 할 수 있는 규정을 삭제해서 CAS에도 제소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처럼
보도되었다. 주로 심판 담합이나 뇌물사건 들을 다루는 국제스포츠 중재 재판소(CAS)에서는
판정 시비에 대해서는 안건 조차 받지 않다는 등의 잘못된 정보들이 언론에서 도배를 했다. 이는
한국스포츠계의 지도자들이나 임직원들이 스포츠중재제도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며,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의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올림픽헌장 제59조
(분쟁-중재)에는 “올림픽 경기에 임하여, 또는 이와 관련하여 발생하는 어떤 분쟁이라도 스포츠
관련 중재규칙에 따라 CAS에 대하여만 제출하는 것으로 한다”고 규정하여 이른바 CAS의 전속
관할권을 인정하였다.

 
왜 우리나라 스포츠계는 스포츠중재제도나 스포츠법에 대하여 무관심한가? 심지어 대한체육회는
2009년 집행부가 바뀌고 대한올림픽위원회(KOC)와 통합되면서 올림픽위원들의 지적에 따라 평창
올림픽 유치를 위해 2006년도에 설립했던 <한국스포츠중재위원회>를 설립근거를 아예 없애버렸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스포츠중재기구가 대부분의 스포츠선진국에서는
설립되어 많은 역할을 하고 올림픽, 월드컵 등 국제경기를 유치하는데 필수적인 제도 인식되어
있다. 단순히 경영논리로 접근하여 꼭 필요한 제도를 없애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일이다.

이러한 스포츠중재기구가 활동하여 스포츠조정이나 중재에 대한 경험을 축적하고 그 역할의
중요성을 스포츠계에서 인식하도록 교육과 홍보 등이 이루어져야 하며, 전문가를 양성하여
국제대회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수시로 개정되는 경기규칙이나 국제스포츠기구의
규정, 중재규정 등을 연구하고 선수와 지도자들이 숙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번 사건과 같이
너무 부당하고 상습적인 고의적 오심에 대하여는 당연히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에 제소하여
올림픽정신을 잃은 휴이시 심판과 같은 심판들을 퇴출시켜야 마땅했었다.


◯ 심판의 오심을 바로잡은 사례 
 
지금까지 심판의 오심을 뒤집은 사건은 꽤 있다. 실제로 한국 스포츠계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핸드볼 아시아 예선에서 중동 심판들의 석연치 않은 판정에 대해 국제핸드볼협회에 제소해
재경기를 이끌어낸 경험이 있다. 또한,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페어경기에서도 CAS에
제소해 캐나다와 러시아가 금메달을 공동으로 수상하기도 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싱크로
나이즈드 수영에서 심판의 오심으로 탈락한 캐나다 선수가 1년 뒤 금메달을 받은 게 대표적이다.
당시 실비에 프레쉐트는 심판이 점수를 잘못 채점하는 탓에 미국의 크리스텐 밥 스프래그에게
금메달을 내줬다. 명백한 실수에도 불구하고 심판진은 판정번복은 없다고 못을 박았지만 1년 뒤
국제수영연맹은 프레쉐트에게도 금메달을 추가로 수여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는 남자 배영 200m에서 심판진이 가장 먼저 결승점에 도착한 애런 페이솔
(미국)이 반환점을 도는 과정에서 턴 동작의 규정을 어겼다며 실격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미국의
거센 항의에 부딪친 국제수영연맹은 30분 만에 판정을 번복했고 은메달에 그친 오스트리아 선수는
"미국의 정치적 힘이 작용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아테네의 승마에서는 판정이 두 차례나 바뀐 사례도 있었다. 종합마술 단체전에서 독일이 1위를
하자 프랑스 미국 영국 등이 독일선수가 출발선을 넘었다고 항의했고 스포츠중재재판소의 결정으로
독일의 우승이 취소됐다. 하지만 다시 독일이 불같이 항의하자 심판진은 원래 판정으로 되돌아갔다.

 
이번 쇼트트랙 사건은 CAS의 규정상 아쉽지만 일단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의 규정에 따라 더 이상
제소할 수는 없다. 올림픽경기 중에 일어난 경기와 관련된 사건은 원칙적으로 사건발생 후 즉시
올림픽경기 기간 중에 설치되는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의 <특별중재부>에 서면으로 신청하여
24시간이내에 판정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올림픽이 끝난 지금은 <일반중재부>에서 다루는
사건만 신청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심판의 오심이 고의적인 심판 담합이나 뇌물사건 등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명백한 직접증거가 있는 경우에만 신청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양태영선수가 심각한 심판의 오심으로 억울하게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
당시 양태영은 예상을 깨고 1위를 달리며 세계 체조사를 다시 쓰는 쾌거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체조심판진은 평행봉 스타트 점수가 10점이 아닌 9.9점으로 매기는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로 인해 안마에서 엉덩방아를 찧기까지 했던 폴 햄(미국)이 역대 가장 근소한 차이로 금메달을
가져갔고 양태영은 동메달로 밀렸다. 0.1점은 우승자를 바꾸기에 충분한 차이였다. 국제체조연맹이
잘못을 인정하고 자크 로게 IOC 위원장도 양태영을 "진정한 금메달리스트"라고 치켜세웠지만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선수단(대한체육회)은 즉시 올림픽경기 중 현장에서 서면으로
국제체조연맹에 이의를 제기하지도 않고,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 <특별중재부>에 제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림픽이 다 끝난 다음에 여론에 밀려 <일반중재부>에 제소하여 기각당한 것이다.

우리나라 스포츠계의 선진화·세계화는 아직도 너무나 갈 길이 멀다. 밴쿠버올림픽이 열리고 있던
지난 2월16일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다. 국제빙상 규정집(정관 및 일반규정) 번역본이 제대로 없어
대원외고 피겨연구회 동아리 여학생 4명이 자비를 들여 번역하고 발간까지 하여 번역본 50부를 출간
했으며, 번역 원고를 대한빙상경기연맹에 전달했다는 어이없는 뉴스를 들었다. 김연아 선수가
세계적인 피겨여왕에 등극하고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거머쥐는 '동계스포츠
강국'으로 불리는 한국이지만, 사실 그동안 국제빙상연맹의 한국어 규정집조차 없었다. 

ⓒ 스포츠둥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