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남상우 (충남대학교 박사)
“신문이나 잡지 등에서 능동적이고 활동적인 남자선수의 이미지는 넘쳐나지만, 여자선수의
경우에는 그들의 운동능력보다는 여성스러움과 성적(性的)인 특성으로 대표되는 상징물과
함께 나타난다.” 하그리브즈(Hargreaves, J.)라는 학자가 주장한 말이다.
뭐, 학자들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다양한 미디어에서 선수들이 성별에 따라 ‘다르게’
묘사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그러한 ‘다름’을 인식은 하더라도, 그것을 정확하게 지적하여
“이게 이거야”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말이다.
박지성과 김연아의 인기요인은 다르다!
학생들에게 질문을 해봤다. “김연아가 왜 인기가 있을까?” 여러 대답이 돌아왔다. 그 중 가장 많은
답은 “예쁘잖아요”였다. 그래서 다시 물어봤다. “그럼, 박지성은 왜 인기가 있을까?” 어이없다는 듯
답을 한다. “그거야, 축구 잘 하잖아요.”라고. 전부는 아닐망정, 미디어가 젠더를, 더 정확하게는
남자와 여자선수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조형하는 방식을 잘 보여주는 답이 아닐까 한다.
즉, 여자선수는 ‘외모’를, 남자선수는 ‘실력’을 강조하는 방식이 미디어가 운동선수의 젠더를
조형하는 첫 번째 방식인 것이다. ‘얼짱’이나, ‘미녀선수’담론 등, 선수들의 외모를 강조하는 방식은
남자선수보다 여자선수에게 보다 많이 적용되는 기사작성, 혹은 해설방식 중 하나다. “저 선수,
참 예쁘죠....”라든가, “얼짱 신혜인, 얼굴만 보이고 들어갔다”라는 신문의 헤드라인이 대표적이다.
이에 반해 남자선수는 실력이 강조된다. 대표적인 것이 연봉이다. 혹시, 여자선수 연봉을
대서특필하는 걸 본 적이 있는지? 미디어 관련 연구로 많은 사례를 검색하고 찾아봤지만, 그런
사례는 거의 없었다. 아마도 남자가 여자를 볼 때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외모’인 반면,
여자는 남자의 ‘실력’이나 ‘능력’을 고려한다는 사회 일반의 논리를 미디어가 스포츠 분야에서도
잘 버무려 재현하는 것이 아니겠냐는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남자는 남자답게, 그렇다면, 여자는?
미디어에서 남자선수들은 대부분이 “역동적이고, 힘이 넘치며, 마치 기계의 그 무엇처럼 파워가
있는 듯”(Machines, Missiles and Men)이 묘사되지만(Trujillo, 1995 참조), 여자선수는 조금 다르다.
단순 무식하게 일관된 하나의 방식으로 보도되는 남자에 비해, 여자선수는 미디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보도되는 경향을 보인다. 그 동안, 이와 관련하여 개인적으로 연구해보고, 공부해본 결과,
크게 봐서 다섯 가지 정도가 존재하는 듯하다.
그 중 첫 번째가 미모를 강조하는 방식이다. 이건 위에서 대충 설명했으니 넘어가자.
두 번째가 바로 ‘이성애적 존재감을 강조하라’는 것이다. 가령, “누구누구의 애인”이거나 “누구누구의
아내” 혹은 우리나라 특유의 용어인 “아줌마”담론이 적극적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이러한 보도방식이
추구하는 목적은 명료하다. 여성은 “남성의 귀속물”이자 스포츠에 얹혀서 껴서 활동하는 존재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세 번째 방식은 바로 ‘운동수행 그 이외의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선수 이외의
그 무엇을 강조하는 방식인데, 대표적으로 ‘전직 펜트하우스 모델’이나 ‘플레이보이 표지모델’ 등,
별 희한한 것들을 잡아내 그 선수의 운동수행이 지니는 명암을 가려버린다.
그리하여 독자는 그 선수에 대해 기억하는 것이, “얘 모델 했었던 애” 정도가 된다. 이걸 전문용어로
“한계화 기법(Marginalization)”이라고 한다. 이는, 선수로서 클 수 있는 여지는 운동수행 그
자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막아버림으로써 선수의 성장가능성에 한계선을 그어 버리는 것, 정도로
설명될 수 있겠다.
네 번째 방식은 여성다운 ‘연약함’을 강조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에 따르면, 우는 모습,
고통스러워하는 모습, 연약한 모습, 쉽게 흥분하는 모습 등이 유달리 강조된다. 해설자들도
여자선수와 남자선수에 대해 해설할 때 이런 것을 많이 구분한다. “아, 약한 감정을 보이면 안되요,
강해져야죠!”라던가, “여기에서 여자처럼 주저앉으면 안 되죠, 일어나야 합니다.” 등의 해설이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마지막 방식은 여자선수의 사진을 눈요기용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일명 ‘언저리 사진’으로서의
여자선수사진 쯤으로 볼 수 있겠다. 왜, 그런 거 본 적 없는가? 헤드라인은 남자경기에 대한 것인데,
대문짝만한 사진은 리듬체조 선수나 피겨스케이팅 선수 사진으로 도배되는 경우. 상식적으로
헤드라인과 사진은 연계성을 가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이처럼 여자선수의 사진은 ‘보고 즐겨라’
정도의 목적으로 게재되는 경우. 이런 사례가 빈번한데, 이를 나는 ‘언저리 사진’으로 파악한다.
무엇보다도 미디어의 젠더 구성전략을 이해해야
이렇게 말하고 나면, 항상 나오는 질문이 있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고?” 뭔가를 요구하는 이런
종류의 질문에 가끔 가슴이 저며 오기도 하지만, 뭘 하자는 건 아니고, 그냥 이런 게 있다는 정도만
알고 신문이나 스포츠 경기를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걸 말하고 싶은 것이다.
분명한 것은 미디어가 사회 내 견고하게 구축된 ‘남성중심의 구조’를 더욱 구조화한다는 사실이고,
이러한 작업은 미디어의 다양한 젠더조형 전략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문제는, 그 전략이 상당히
성차별적이고, 폭력적이라는데 있다. 그래서 이를 비판하고, 바꿔야 한다. 하지만 바꾸기 전에 우리가
먼저 할 일은, 그 전략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알면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관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렇게 보자면, “미디어는 젠더를 구성하고, 그렇게 구성된 젠더는 우리가 스포츠에 개입하는
구조를 구조화한다”고 볼 수 있다. 그 구조를 바꾸기 위해선 미디어가 젠더를 구성하는 방식을 알고,
이를 비판하고,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Trujillo, N.(1995). Machines, missiles, and men: Images of the male body on ABC’s Monday Night Football. Sociology of Sport Journal, 12, 403-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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