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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체육이야기/[ 전문체육 ]

돌을 던지며 싸우는 놀이, 석전(石戰)

                                                                                               글 / 조준호 (인천대학교 강사)


수십 년 전 대동강 변에서 석전(石戰)을 실제 행하던 노인들은 젊은 시절 석전을 하다가
머리에 돌을 맞아 상처가 나는 것을 무슨 훈장처럼 자랑스럽게 여겼다.
또한 자기 아들이 싸움에 패하여 집으로 도망하여 오면 어머니는
대문을 열어주지 않고 꾸짖어 되돌아가게 하여 끝까지 싸우게 하였다.

위의 내용은 마치 서양 고대사인 스파르타 인들의 전투무용담을 듣는 듯하다.
하지만 위의 내용은 우리 선조들의 삶을 기록한 심우성의『우리나라의 민속놀이』
석전(石戰)편의 일부분이다.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인 우리나라에 다소 어울리지 않는 과격한 놀이가 있었다.
불과 1970년대까지도 시골에서는 이 놀이를 해왔으며 우리선조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 놀이를 희(喜)했다. 오랜 역사성을 갖는 이 놀이는 우리민족이 때론 국토를 지키기 위해,
때론 신체단련을 위해, 때론 풍년을 위해 해왔다. 그것이 바로 석전(石戰)이다.

1. 석전(石戰)이 무엇인가?
석전은 단어 그대로를 살펴보면 ‘돌싸움’을 말한다. 석전은 ‘석전희(石戰戱)’,
‘돌팔매놀이’라는 명칭으로도 불렸으며 개천이나 넓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혹은 강을 사이에 두고 주민들끼리 서로 편을 갈라 돌을 던지며 싸우는 놀이였다.
석전은 生과 死의 혼전을 이룰 정도로 매우 격렬한 신체활동이 중심을 이루었으며
우리민족의 오랜 무예풍습과도 같은 매우 과격하고 호전적인 놀이였다.
우리의 삶속에 녹아 쉼 쉬던 놀이, 우리민족의 전통 스포츠라고 할 수 있는 그 놀이가
바로 석전(石戰)인 것이다.


2. 우리민족은 석전(石戰)을 어떤 방식으로 했는가?

석전은 최초 서로 편을 나누고 돌팔매를 시작한다.
돌팔매를 하다가 서로 상대방에 대한 분노가 가득해질 때 본격적인 석전놀이가 시작된다.
돌을 던지는 것 뿐 만 아니라 육모방망이를 든 대장들 사이에 백병전도 실시하며 굉장한 분노와
원시적이긴 하나 조직적 전략도 숨어있다. 이러한 석전이 대규모로 진행되거나 공식적 성격을 띨 경우
놀이의 방식에는 우선 각 편을 방패군과 돌팔매 군으로 나누어 경기하는 방식 하나와
청기와 백기 팀으로 나누어 깃발을 뺏는 방식 등도 있었다.
즉 석전은 스포츠적 요소를 많이 내포하고 있던 우리민족의 놀이였다. 


3. 돌(石)은 어떻게 던졌는가?

돌을 직접 잡고 던지기도 했으며 보다 파괴력을 높이기 위해 도구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 도구는 닥나무의 질긴 섬유질로 만든 노끈이었으며 대략 60∼80cm정도로 늘어뜨리고
빙빙 돌려서 던지는 것이었다. 즉 돌을 던질 때는 노끈의 한끝을 손목에 매거나 손바닥에 쥐고
나머지 한끝은 집게손가락에 걸어 빙빙 돌리다가 집게손가락을 놓으면 돌이 날아가는 원리였다.
이때 돌을 올리는 곳은 반드시 가죽으로 만들어야 오래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돌을 던지는데 사용하는 노끈의 이름을 정약용은 ‘물풀매’라고 했으며
북한서적에서는 ‘망패’, ‘왕패’라는 이름 등도 등장하였다.


4. 과격한 석전을 도대체 왜 했는가?
우리민족에게 석전은 나라를 지키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각 시대마다 돌을 전문적으로 잘 던지는 석전부대도 있었다.
신라의 ‘석투당(石投幢)’, 고려의 석투반(石投班) 등이 있다. 또한 고려 때 만들어진 척석군(擲石軍)은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이들 석전부대는 국토를 수호하였다. 또한 석전은 고대에는 정월,
고려시대는 단오, 조선시대는 정월과 단오시기의 지역특성에 맞게 실시되었으며
석전에서 승리한 편은 지역에 풍년이 든다고 생각하였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인 시대에
석전을 승리하여 풍년이 된다는 것은 당시 최고의 동기유발 요인이었다.
즉 석전은 크게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작게는 지역의 풍년과 희(喜)를 위해 석전을 한 것이다. 


5. 석전이 새롭게 변화된 형태가 혹시 없었는가?

북한에서 석전의 변화된 형태인 ‘석전무(石戰舞)’라는 무용이 있다.
석전무는 황해도와 평안도 지방에서 즐겼다는 무용으로서 그 내용은
안용철의 《조선민속사전》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石戰舞는 서도지방의 민속무용이다. 평안도 지방에 널리 퍼졌던 춤으로 돌팔매 싸움하는
내용이다. 石戰舞는 일종의 집단적인 경기놀이인 석전에서 남녀가 한데 어울려 바가지
장단에 맞추어 추는 춤이다.
이 춤의 특징적 춤동작은 남성들이 집단적으로 돌띠를 휘둘러 돌을 던지는 동작을 하고
여성들은 손목을 굽히며 어깨를 가볍게 움직이는 동작 등이다. 매우 박력 있고 씩씩하며
흥겨운 춤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석전무’는 과거 서양 고대사에 등장하는 스파르타의 군사무용인 피릭(Pyrrhic)과도 매우 유사하다. 또한 석사놀이라는 것도 있었다. 이는 남해안 해안마을에서 추석에 통나무 원목을 세우고 돌을 던져
기둥을 맞추는 민속놀이로 지금도 경상남도 남해에서는 이 놀이가 전승되고 있다.

아직도 우리민족은 냇물이나 강가를 지날 때면 반드시 돌을 물에 띄워 멋지게 돌팔매를 최소 한두 번,
세 번은 해본 후 강을 건너는 유희(遊戱)민족이다. 어느 민족이나 누구나 돌팔매놀이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민족은 돌팔매를 조직화하였고 이를 놀이로, 무용으로, 전투로까지 승화시킨
역동적인 스포츠 민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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