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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체육이야기/[ 전문체육 ]

올림픽은 진정 세계평화에 이바지하고 있는가?

                                                                            글/ 박보현(한국체육대학교 박사 후 과정)



4년마다 열리는 세계인의 축제 올림픽. 그러나 그 주인공은 아무나 될 수 없는 것이 또한
올림픽이다. 세계 최고가 되고자 올림픽에 참가한 수많은 선수들 중에는 환희보다 좌절을
맛본 선수가 더 많을 것이다. 그리고 올림픽 개최의 국민이 되는 기회 또한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올림픽은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나, 이를 지켜보는 각 국가의 시민 모두에게
최고의 로망이 아닌가 싶다.

올림픽이 이처럼 전 세계인들의 끊임없는 주목을 받는 이유에는 4년에 한번 열리기
때문에 갖는 희소성과 올림픽이 내건 대외적 명분
, 즉 ‘세계평화’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가
비정치적 영역인 스포츠를 통해 실천가능하리라는 기대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1925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제정된 올림픽 헌장에 따르면 올림픽은 ‘인류의 평화와
화합의 대제전’으로 국제적인 존경과 친선을 증진하고 나아가서 보다 나은 평화로운 세계
건설에 이바지하는데 그 목적이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며 오늘날까지 그 위상을 굳건히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세계평화가 오랫동안 유지된 경우는 흔치 않다. 그렇다면
1896년 쿠베르탱 남작에 의해 부활된 올림픽은 세계평화에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이바지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진정 올림픽이 세계평화에 기여는 하고 있는 걸까?





올림픽의 아픈 기억

세계평화에 이바지 한다는 올림픽은 그 이상과 달리 그 역사는 애석하게도 갈등과 대립의
길을 걸어왔다. 1896년 그리스는 제1회 아테네올림픽을 지중해와 에게해(Aegean Sea)에서
터키의 침략정책을 저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으며, 터키는 그리스와의 이러한 적대적
관계를 이유로 제1회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다. 1912년 대회는 1차 세계대전 발발로 대회 자체가
열리지 못했고, 1920년 전쟁 이후 개최된 앤트워프대회는 독일, 오스트리아, 터키가 1세계대전의
주범이라는 이유로 대회 참가가 거부당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은 히틀러가 독일 정치체제와
제도의 효율성을 선전하기 위한 정치의 장으로 활용함으로서 올림픽을 정치적으로 예속시킨
대표적 예로 유명하다.

올림픽 역사에 있어서 가장 끔찍했던 기억으로는 1972년 뮌헨올림픽을 들 수 있다. 전 세계가
TV를 통해 생중계로 지켜보는 가운데 팔레스타인 무장 조직 ‘검은 9월단’은 올림픽선수촌에
난입해 이스라엘 선수 9명을 납치 살해하는 비극을 저질렀다. 이 사건은 2005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뮌헨대회 이후 올림픽은 연속적으로 보이콧대회로 전락하고 말았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는 인종분리정책(apartheid)을 시행해온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스포츠관계를
유지해오던 뉴질랜드의 정책에 항의해 대다수의 아프리카 국가들을 포함한 32개국이 대회
참가를 보이콧 했다. 그 와중에 캐나다 정부는 중국과의 외교적 관계를 고려해 대만의 올림픽
참가를 거부하는 사태까지 발생하였다. 1980년 모스크바대회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해 우리나라를 포함한 미국 중심의 서방국가들이 대회를 보이콧하였으며, 반대로 소련은
1984년 LA올림픽을 보이콧하면서 1976년 대회 이후 3회 연속 보이콧대회의 역사를 이어갔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과거 정치적 이유로 연속된 올림픽보이콧의 종지부를 찍고 동서국가가
모두 한자리에 모인 세계화합의 장이 되었지만, 정작 우리나라는 북한과의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인해 분단국가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북한이 불참하는 ‘마지막 냉전 올림픽’을 치러야만 했다.
최근 막을 내린 2008년 베이징올림픽 또한 중국의 티베트에 대한 인권탄압정책에 반발한 일부
국가들의 보이콧운동과 성화 봉송 방해로 인해 국제적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세계평화를 향한 올림픽의 한계: 국가대항전

그렇다면 왜 올림픽은 세계평화가 아닌 갈등과 더 친숙하게 지내왔을까?
그 원인은 올림픽이 국가대항전 경기로 치러진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스포츠는 경쟁을
통해 반드시 1등, 2등, 3등식으로 순위를 가리게 되어있다. 여기서 1등의 의미는 2등과 불과
0.001초차라 할지라도 하늘과 땅 차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1등한 선수는 열광하지만, 2등한
선수는 아쉬움이 짙게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순위 경쟁의 대상이 선수 개인이 아닌 국가라고 한다면 이야기는 좀 달라진다.
개인 선수간의 경쟁에 있어서는 비록 과도한 경쟁으로 인해 선수 간에 앙금은 남을지언정
그 파장은 미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가 간 경쟁의 뒤끝은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1969년 발생한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의 축구전쟁이다. 1970년 멕시코월드컵
예선을 둘러싸고 두 나라는 5일간 진짜 전쟁을 벌였다.

스포츠 경기에 있어서 국가대항전은 아무런 이해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자국민들을 국가라는
이름 아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발적으로 하나가 되게 만든다. 그리고 아무리 내가 싫어하는
라이벌 팀의 선수라 할지라도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는 순간 그 선수는 우리 팀 선수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리고 그 선수의 승리는 곧 국가의 승리이자 나의 승리가 되지만, 반대로
개인의 패배는 곧 국가의 패배가 되는 것이다.

세계평화란 국가 간의 갈등·분쟁·전쟁이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세계평화를 위해 세계
젊은이들이 모여 자신의 기량을 뽐내고, 이를 서로 격려해주고 칭찬해 줌으로서 인류화합에
이바지 하고자 하는 올림픽. 그러나 정작 올림픽은 그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를 중심으로
단위국가끼리 경쟁 통해 그 순위를 정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올림픽에 참가한 세계 각국
선수들에게는 다른 나라 선수가 잘하는 것에 관심을 기우릴 여유가 없다. 이는 국가 또한
마찬가지다. 지난 베이징올림픽 폐막 직후 벌어진 미국과 중국의 종합 1위 논란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미국(금 36 은 38 동 36)은 비록 금메달 수에서는 중국에 뒤졌지만 전체 메달
수가 110개로 중국(금 51 은 21 동 28) 보다 10개가 더 많다며 자신들이 진정한 1위라고 우겨대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일부 스포츠사회학자들은 올림픽에서 국기 게양, 국가 연주, 그리고 국가
단위의 메달집게를 금지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이를 통해 과도한 국가 간의 경쟁을 막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올림픽이 다가오거나 끝나고 나면 늘 하는 일이 있다. 어떻게 하면 라이벌 국가들보다
더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을까? 그리고 왜 이러한 성적이 나왔을까? 이러한 상황에서 올림픽을
통한 세계평화, 그게 가능한 것일까? 그리고 경쟁을 부추기면서 서로 사이좋게 지내길 바라는 것,
그 자체가 난센스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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