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장덕선 (한국체육대학교 교수)
무더운 날씨 속에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한창 진행되었던 북경, 조금은 어렵게 들어온
선수촌인지라 한 명의 대표선수라도 더 만나보고 싶은 마음에 선수촌 앞마당을 서성거리고
있을 때 낮 익은 선수와 코치를 만났다. 한발의 미스로 2004년 아테네에서 진한 아쉬움을
주었던, 그리고 4년 후 2008년 보란 듯이 금메달(50m 권총)을 안겨준, 거기에 보너스로
은메달(10m 공기권총)까지 선물한 사격의 영웅 진종오 선수였다. 그 옆을 그림자처럼 지키는
지도자는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김선일 코치였다. 진종오는 경기 후 "본선 마지막에 실수를
한 것이 내게 좋은 기회를 준 것 같다"면서 "코치(김선일)님이 욕심 부리지 말고 편히 하라고
해서 나름대로 했는데 이렇게 금메달이 저에게 주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2008 베이징 뜨거운 키스
김선일 코치와 환호하는 진종오
올해 그는 한 단계 더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9 국제사격연맹(ISSF) 월드컵파이널대회
50m와 10m 권총에서 2관왕을 차지하며 명실상부한 ‘왕중왕’이 되었다. 그의 기량에 반한
미국사격연맹이 우수선수를 초청해 노하우를 전수받는다는 취지로 진선수를 초청해서
콜로라도에서 미 대표 팀과 합숙훈련을 하기도 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이 대회가 끝난 후
슬럼프에 빠지기도 하지만 진종오 처럼 한결같은 선수는 처음이라는 극찬에 그는 “빨리
잊었어요. 코치님이 ‘지금은 금메달을 땄다며 관심이 몰리겠지만 길어봐야 3개월이다. 빨리
털어 내는 게 본인에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죠.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목표는 무슨 무슨 대회
금메달보다 사격을 정말 잘한다고 인정받는 선수가 되는 것”이라며 “사격은 몸 관리에
신경 쓰면 10년을 더 할 수 있는 운동이니까 선수생활 동안 목표를 설정해 계속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의 만남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이후 거의 4년 만에 만난 반가운 얼굴이면서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이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훈련방식에는 특별한
무엇이 있는가? 그리고 선수와 지도자 사이는 어떠한가? 전자의 질문은 4년의 세월에
그 맘을 유지하여 메달을 딸 수 있었던 배경이 궁금했고, 후자의 질문은 북경 선수촌에서
경험한 국가대표 지도자와 선수간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선수와
지도자가 서로를 신뢰하고 선수의 리듬에 맞는 훈련방식을 선호하며, 특별한 기술훈련보다는
오랫동안 호흡을 함께 했기 때문에 서로를 존중해주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훈련을 해왔다고
했다. 엘리트 선수들을 인터뷰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남과 구별되는 특별한 것을 찾기
어렵다. 그가 좋아하는 것은 낚시다. 전지 훈련하는 곳이 어디건 낚시터를 찾는다. 아마도
자연과의 합일을 통해 마음을 순화시키는 방법을 아는 것 같다. 그리고 자신감과 자유권총
사격기술에 대한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지만 자신을 지키는 비밀병기 같은 것이어서 아직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스스로 하는 자율훈련 속에서 지도자와 선수의 불화는커녕
아우인양, 형님인양 사격도 낚시도 오랜 시간을 함께하는 이들에게 훈련과정에서 겪는 심각한
갈등은 없는 듯하다.
베이징 올림픽이 진행되는 동안 필자는 물리치료실에서 선수들의 동정을 살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말을 섞고 마음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지도자와 심각한 갈등을 겪는
선수들도 많이 보았다. 시합에 대한 계획과 준비보다 지도자에 대한 반감과 불평으로 가득한
선수에게 메달을 기대할 수는 없다. 혼신을 다해도 부족한 시간에 에너지를 분산시켜 낭비한다.
상담은 이러한 문제를 완화시켜주고 해결책을 찾게 해주고 궁극적으로 경기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상담은 일련의 과정이기 때문에 시합기간의 만남으로 그 성과를
보기는 어렵다.
진종오 선수와의 인터뷰 말미에 한 가지 부탁을 받았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체육과학연구원 소속이었던 필자는 사격대표팀 훈련이 있었던 임실의 사격장을 찾아가
심리교육을 실시한 적이 있다. 훈련 후 지방도로 옆 식당에서 저녁식사 전 시간이 주어졌다.
그러나 장소가 마땅찮아 식당 마당 한 켠의 간이의자에 모여 시끄러운 자동차 소음을 들으며
40여분 남짓 유인물을 보며 교육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 내용이 어떤 것인지 쉽게 감이
오지 않았다. 아마도 올림픽 대비 시합준비 전략에 관한 내용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때
나누어준 유인물을 4년 동안 봐 와서 종이가 너덜너덜 헤어져 보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 내용 중 다행히 어떤 부분으로 인해 도움을 주었을 것이라는 안도감이 아닌
진종오 선수의 태도이다. 필자는 팀 혹은 개별선수들을 대상으로 상담과 교육을 하면서
가능한 유인물을 준비해서 배포한다. 어떤 선수는 바로 그 자리에 유인물을 흘리고 가버리고,
가다가 버리고, 책상에 던져두고, 너무 잘 간직해서 어디에 둔지 모르고 지낼 것이다. 그럼에도
이 금메달리스트는 그 유인물을 간직해서 보고, 읽고, 자신에 맞게 응용한 것이다. 열린 마음으로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사격술에 적용해보는 그의 자세로 인해 한동안 가슴 먹먹한 뭉클한
감동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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