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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체육이야기/[ 생활체육 ]

사람들은 왜 공을 그토록 좋아할까?

                                                                   글 / 이병진 (국민생활체육회 정보미디어부장)



어린 시절 시골마을에도 축구는 단연 최고의 스포츠였다. 그러나 시골 꼬마들에겐 공이
그리 흔하지 않았다. 바람 빠진 공이지만 갖고 놀 수만 있다면 어떤 형태로라도 갖고 놀았다.
학교 운동장, 신작로, 심지어는 뒷산 할아버지 무덤 옆에서도 공차기를 했다. 축구공에 무슨
귀신이 들어 앉아 있었길래 그토록 지독하게 꼬맹이들 바짓가랑이를 붙들었을까





공 하나에 목숨을 건 듯이 뛰는 선수들

여가문화시대에 걸맞게 이제 스포츠는 일상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김연아 선수가
피겨스케이팅 타는 것을 보고는, 둘째 딸아이가 푹 빠져버렸다. 피겨스케이팅 구입해서
가방에 넣고 매일같이 롯데월드 아이스링크에 간다.“선수가 되려고 타니?”라고 물으면,
“아니, 그냥 타는 거야”라고 말한다. 말 그대로 그냥 타는 것이다. 멋지게 타는 모습이 좋단다.
스포츠는 분명 마력이 있는 게 분명하다.

우리 국민들은 어떤 스포츠를 좋아할까. 턱을 괴고 생각해보면, 축구, 야구, 농구, 배구, 골프,
테니스 등 여러 종목이 떠오른다. 재미있는 것은 대부분 경기가 공을 갖고 한다는 점이다.
군대시절 그렇게 푹 빠졌던 족구라는 놈도 공으로 하는 것이고, 당구니 탁구니 볼링이라는
 것들이 한결 같은 공이다. “헐, 배드민턴은 예외네”

가장 대표적이고 대중적인 종목이 축구와 야구다. 도대체 공이란 놈은 무엇이 길래 사람들을
그토록 미치게 만들까. 이긴 팀 선수들은 얼싸안고 그라운드를 뛰어 다니고, 진 팀 선수들은
눈물을 흘린다. 흥분해서 팬들끼리 싸우고, 열 받아 술 마시게 하고, 심지어는 심장발작을
일으키게 하는 그 놈의 정체는 무엇일까?

공 하나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아무튼 집요하게 달려드는 것을
볼 수 있다. 생활체육 현장에서도 공만 보면 미친 듯이 날뛰는 동호인들을 본다. 그토록
맹목적으로 서로 공을 빼앗으려고 집착하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이 저토록 단순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공은 평화의 도구? 인간 본성의 카타르시스?

분명 공이란 게 그냥 놀이기구가 아닌 듯하다. 선수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과거 수 십 년
전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듯이 제한된 장소에 공 하나만 던져놓으면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놀라울 정도로 쉽게 단순해진다. 공에는 무언가가 숨어 있음에 분명하다.

혹자는 너무 철학적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우선 스포츠는 전쟁의 대용물이라는 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인류는 전쟁을 대신해서 스포츠를 만들어 냈다. 공은 상대를 해치지 않는다.
공이 없었다면 인류는 더 많은 전쟁을 치러야 했을 것이고 더 숱한 사람들이 죽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공은 폭력을 중재하는 평화의 도구라고 할 수 있다.

공이 지니는 두 번째 의미는, 인간 본성의 카타르시스다. 스포츠는 간혹 정치 이상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스포츠 경기가 국가 경제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스포츠스타는
종교와 국적, 인종을 초월하여 만인의 우상이 되기도 한다. 관중이나 팬들은 자국 팀이나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승리할 때는 함께 기쁨을 얻지만, 패배했을 때에는 한없는 절망감에
빠지기도 한다. 즉, 스포츠는 대리만족인 것이다.

또 하나 공은 우주를 뜻한다. 우주가 구(球)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것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신념 중의 하나다. 지구 역시 둥글고 모든 별들도 둥근 형태를 띠고 있다. 그것은 완전성을
뜻하며 또한 영원을 의미하기도 한다. 형태는 단순하지만 거기엔 인류의 보편적인 외경의
마음이 담겨 있다.

그러므로 공을 차거나 서로 빼앗는 행위는 가장 본능적이면서도 동시에 무한한 변주가
가능한 일종의 오케스트라 연주와도 같다. 우리가 사용하는 놀이에 그토록 열광하는 이유도
그 무한한 변주성 때문이다.


밖에 나와 함께 공놀이 할까요?

‘공과 함께 하는 스포츠에 이처럼 심오한 뜻이 있을까?’ 라고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좋다.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은 ‘공이 지닌 뜻’이 아니라 ‘공 자체’다. 큰 공이면 어떻고 작은 공이면
어떠하랴. 새 공이면 어떠하고 헌 공이면 또 어떠하랴. 비싸거나 싸거나 공은 매한가지. 많은
사람이 어울려도 좋고, 둘이서 공놀이를 해도 좋다.

공이 있어 행복하고, 공이 있어 건강할 수 있다면 세상 천지를 공으로 장식해도 좋을 터.
공 때문에 공부 좀 소홀히 한다고 나무랄 이유도 없다. 수학공식 몇 개 더 외운다고 인생이
장밋빛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운동 열심히 하면 뇌의 전두엽이 발달하여 더
똑똑해진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또한 공이 아니면 어떠하랴! 달리기도 좋고 줄넘기, 등산도 좋다. 가장 편안한 때에 가장
즐거운 마음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을 하면 그것이 곧 피안의 세상이 아니던가?

남들이 즐기는 스포츠를 그저 구경만 하고 있다면 그것은 반쪽 즐거움에 불과하다. 온전한
즐거움은 자신이 주인공이 되고 자신이 운동을 지배하는 사람에게 주어진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 춥다고 집안에 박혀있지 말고 밖에 나와 공놀이 하면서 둥글둥글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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