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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체육이야기/[ 전문체육 ]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체통을 위해서, 햄버거도 먹지 못한다?

                                                                               글 / 김대호 (안산도시공사 홍보과장)


박찬호가 LA다저스에서 선발투수로 막 자리를 잡아가던 1996년 아주 사소한 일로 토미 라소다
감독으로부터 따끔한 질책을 받은 적이 있다.
박찬호는 마이너시절 늘 그랬듯이 LA 시내의 한
가게에서 햄버거를 사들고 나왔다.
우연치 않게 이 얘기를 전해들은 라소다 감독은 박찬호를 불러
“메이저리그의 체통을 지켜야 한다”고 충고를 했다. 1994년 미국으로 건너가 2년 만에 메이저리그가
된 박찬호로선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라소다 감독의 어조는 단호했다. 메이저리그는 복장이나
품행 하나도 마이너리그 때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햄버거를 먹는 자체가 아니라 아무렇지도
않게 시내를 활보하고 다니는 행동은 메이저리그의 품격을 떨어뜨린다는 것이 라소다 감독의
지적이었다. 라소다 감독은 아울러 음식을 사먹을 때도 되도록이면 고급 레스토랑을 이용할 것을
박찬호에게 주문했다고 한다. 메이저리그는 팬들을 비롯한 일반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게 라소다 감독의 지론
이었다.





미국이나 일본의 전통 있는 구단은 저마다 엄격한 팀 내 규범이 있다. 자유분방한 미국 대부분의
구단과 달리 최고명문을 자부하는 뉴욕 양키스는 선수자체 규범이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일단
양키스 유니폼을 입으면 수염을 기를 수 없으며, 머리칼을 염색할 수 없다. 치렁치렁 머리카락을
늘어뜨릴 수도 없다. ‘동굴맨’으로 불릴 정도로 얼굴 전체를 수염으로 덮었던 자니 데이몬이나,
일본에서 우스꽝스런 머리모양으로 인기를 끌었던 이가와가 양키스로 옮긴 뒤 단정한 차림으로
변모한 것을 봤다. 이런 제약이 싫으면 양키스로 안가면 그만이다.



일본의 요미우리 자이언츠도 비슷하다. 니혼햄 시절 ‘염소수염’으로 유명했던 오가사와라가
요미우리 입단식에서 깔끔하게 면도하고 나타난 것처럼 양키스와 마찬가지로 외모에 제약을
가한다. 또한 이동할 땐 정장을 입도록 강요한다. 구단버스를 이용할 때도 앞자리 고참, 뒷자리
신참의 원칙이 철저히 지켜진다. 요미우리구단은 선수들에게 성적뿐 아니라 ‘교진(巨人)’ 소속의
자부심을 일깨워주는데 전력을 다한다. 일본에선 요미우리 출신의 야구선수라면 두말 없이
‘모범생’으로 인식하고 있다.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유난히 머리 모양에 엄격한데 몇 해 전엔
아지 기엔 감독이 팀 주포인 피어진스키에게 시즌 중 머리를 깎고 올 것을 명령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반면 뉴욕 메츠는 팀 분위기가 매우 자유스럽다. 이 때문에 잡음 또한 심심치 않게 터져
나온다. 지난 2004년엔 경기 중에 일부 선수들이 락커룸에서 포커게임을 하다 적발돼 큰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1962년 창단된 메츠는 지금까지 두차례(1969, 1986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지만 해마다 빼어난 멤버를 갖추고 있으면서 기대만큼의 성적을 올리지 못하는
것도 이런 팀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한국 프로야구도 출범한 지 28년이 됐다. 그러나 아직까지 특정 팀의 특정문화가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한국시리즈에서 9차례 우승한 해태가 그나마 다른 팀과 차별화되는 나름대로의
‘질서’를 갖고 있었을 뿐이었다.

요즘 사회적으로 ‘노블리스 오블리제’(높은 신분에 따르는 도덕적 의무감)가 제법 거론된다.
우리도 ‘저 팀 선수들은 누가 봐도 모든 면에서 다른 팀과 다르다’고 평가받을 수 있는 구단이
나타났으면 좋겠다.
실력도 그렇고, 인간 됨됨이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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