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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둥지 기자단

불안을 피하지 않는 사람들

불안을 피하지 않는 사람들

 

글 / 김예은(고려대학교 국제스포츠학부)

 

(출처: http://www.cctiones.kr)

 

  2016 리우 올림픽 남자 에페 결승전에서 박상영 선수는 '할 수 있다' 열풍을 일으켰다. 박 선수는 당시 13대 9로 상대에게 점수를 내주고 있는 상황에서 스스로에게 '할 수 있다'라는 말을 되뇌었다. 이는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는 긍정적인 결과를 보여주었다. 스포츠 세계는 늘 찰나의 순간을 다루고 있다.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은 찰나의 순간에서 최고의 경기력을 발휘해야하기 때문에 매 경기가 개개인에게는 하나의 스트레스 상황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스트레스(Stress)란 말은 '팽팽히 조인다'라는 뜻의 Stringer라는 라틴어에서 기원되었다. 한스 셀리에(Hans Selye)에 따르면 스트레스란 정신적, 육체적 균형과 안정을 깨뜨리는 자극이 있을 때, 이에 대해서 원래 있던 안정 상태를 유지하고자 변화에 저항하는 반응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다시 말해, 스트레스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도 한다. 이는 스포츠에서는 한시도 같은 상황이 나올 수 없기 때문에 경기가 끝날 때까지 예측이 불투명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선수들에게는 매 경기에서 자신의 불안, 긴장감 등을 얼마나 잘 조절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출처: https://rachelbritton.com/are-you-living-in-your-performance-zone/)

  

  여키스-도슨 법칙(Yerkes-Doson Law)에 따르면 각성 상태와 과제 수행 능력 사이에는 역 U자의 형태의 관계가 성립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각성 상태란, 깊은 잠에서부터 격렬한 흥분상태에 이르기까지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심리적, 생리적인 활성을 말한다. 예컨대 각성 상태가 낮을 때 즉, 지루하거나 아무런 긴장감이 들지 않을 때 어느 특정 정도의 각성 상태까지는 과제 수행 능력이 증가한다. 반면 각성 상태가 높을 때 즉, 극도의 불안이나 긴장감이 들 때 과제 수행 능력은 감소한다. 그런데 이러한 각성 상태는 개개인마다 그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에게는 불안한 상황이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느낄 수 있다.

 

  정청희 등에 따르면 각성 수준이 낮으면 주의영역이 넓기 때문에 주변의 불필요한 정보까지 받아들일 수 있다. 반대로 각성수준이 너무 높으면 주의영역이 좁아지고 이는 운동 수행 시 필요한 정보 중 일부를 누락시킬 수 있다. 결론적으로 각성수준이 너무 낮거나 너무 높은 것은 오히려 운동 수행에 방해를 끼칠 수 있다. 따라서 운동 수행 시, 중간 수준의 적절한 각성수준을 유지하여 최고의 운동수행을 발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예를 들어, 역도와 같은 종목에서는 순간적인 힘을 발휘해야 하기 때문에 각성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아야 도움이 된다. 이에 반해서 골프와 같은 종목에서는 순간적인 힘을 발휘하기 보다는 주위 상황을 판단하여 코스 매니지먼트를 하여야 되기 때문에 각성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아야 도움이 된다.

 

  각성상태가 계속해서 증가하면 불안이라는 불쾌한 정서반응이 나타난다. 불안에는 초조하거나 실패할 것 같은 느낌인 인지불안과 손발에 땀이 나거나 근육이 경직되는 것 등의 신체적 징후인 신체불안이 있다. 이러한 인지불안과 신체불안은 서로 관련성이 있다. 예를 들어 선수들이 경기 중 결정적인 순간 잘 해야 된다는 생각에 너무 사로잡혀 있다면 이것은 불안을 야기할 것이고 곧이어 호흡이 불규칙해지고 근육이 긴장하게 되어 결과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선수들은 이러한 신체적 불안이나 운동수행을 방해하는 신체적 증상을 줄이기 위해 자신에게 적합한 신체이완방법을 지니고 있다.

 

  신체이완방법에는 심상, 자화, 호흡 등이 있다. 심상은 의식적으로 긴장을 푸는 이미지를 머릿속으로 그리는 것이다. 이미지트레이닝이라고도 불리는 심상은 이러한 이미지를 머릿속으로 그리는 것만으로 신체적 이완을 할 수 있게 한다. 예를 들어, 서울대학교 스포츠심리연구센터 연구원에서는 국가대표 양궁선수들에게 지난 올림픽 준비를 위해 가상체험 동영상을 제작하였다. 대략 7분 정도의 분량인 동영상은 경기장으로 이동하면서 선수들이 타고 가는 버스 내부, 가는 길, 경기장 도착 후 연습실, 경기장으로 걸어 나가는 장면이 이어진다. 가장 긴장이 되는 마지막 순간에는 "여유 있게 하자"라는 말이 흘러나오고, 경기장을 가득 채운 관중들의 환호와 박수 소리가 이어지고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한 채 활을 과녁에 자신 있고 정확하게 쏘는 장면이 이어진다.

 

  자화는 선수가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는 말로 신체이완을 쉽고 빠르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예를 들어, 2016 리우 올림픽 남자 에페 결승전 때 박상영 선수는 스스로에게 혼잣말로 "할 수 있다"를 외쳤고, 이와 마찬가지로 사격 진종오 선수는 경기 도중 "9점 쏴도 괜찮아. 잘하고 있어"라는 혼잣말을 한다.

 

  이외에도 호흡을 통한 신체이완방법에는 투수가 9회 말 2아웃 상황에서 공을 던지기 전, 골프 선수가 메이저 대회 연장전에서 티샷을 하기 전, 페널티킥을 앞둔 축구 선수가 볼을 차기 전 평소와는 다르게 좀 더 깊은 호흡을 하는 장면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렇듯 스포츠 선수들은 스포츠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불안과 긴장을 무조건 피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인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의 적절한 수준의 불안과 긴장을 찾고 상황에 맞게 잘 조절하여 최고의 경기력을 위해 현명하게 활용할 뿐이다. 선수들이 자신의 각성상태를 적절하게 조절하여 최고의 경기력을 발휘하듯이 우리 또한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적정수준의 각성상태에 대해 잘 생각해본다면 이를 삶에 적용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