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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체육이야기/[ 전문체육 ]

추신수가 메이저리그 투수?

                                                                      글/ 김경원 (서원대학교 레저운동관리학과 교수)


추신수, 김태균, 이대호, 정근우, 야구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친숙한 이름들이다.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나 올림픽 등 굵직한 대회에서 훌륭한 플레이를 보여주었던 선수들로서,
2000년 캐나다에서 열린 18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했던 팀의 주축 멤버들이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지금 강타자로 맹활약하는 추신수와 이대호가 당시 투수였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투수에서 타자로의 변신을 성공적으로 한 선수들이다. 국민 타자 이승엽이나
일본인 메이저리거 이치로도 이에 해당한다.

여기에서 ‘엉뚱한’ 공상을 해보자. 성공적으로 변신을 한 선수들이 원래의 포지션을 계속 고수했다면
과연 지금과 같은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 지를 추신수의 경우에서 살펴보자.

추신수는 2000년 세계대회에서 MVP와 최우수투수상을 거머쥐면서 메이저리그의 스카우터들의
눈에 띄어 그 해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을 맺는다. 부산고 시절까지 10년간 투수 훈련을 받았으며
150km의 구속을 가졌던 특급좌완 추신수는 미국으로 건너간 후에야 비로소 자신이 투수가 아닌
타자로 스카우트되었음을 알았다. 이후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마이너리그에서 3회에 걸친
올스타 선발과 메이저리그 5년 통산 평균 타율 2할9푼6리의 훌륭한 성적을 거두었다. 2009년에는
20-20클럽에 가입하는 대기록을 달성하면서 야구에서 희귀종(?)인 호타준족의 선수로서
자리매김 했다.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감탄할 만한 사실이 있다. 세계대회에서 최우수투수상을
받고 빠른 공을 가진 좌완의 추신수에게서 투수가 아닌 타자로서의 재질을 발견한 메이저리그
스카우터의 야구 안목이다.

추신수가 타자가 아닌 투수를 계속 했다면 과연 메이저리그에서 오늘날과 같은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하는 흥미로운 공상에 다가가 보자. 우선 좋은 투수가 되기 위한 몇 가지 조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보자.

첫째, 힘 있는 타자들이 즐비한 메이저 리그에서 투수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150km대의
빠른 공이 요구된다. 이러한 능력은 후천적인 연습보다는 타고난 측면이 많다. 추신수의
경험담을 살펴보자. 추신수는 당시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코치로 있던 이만수에게 우연히
마운드에 올라 던진 공이 151km까지 나와 투수 코치가 투수로 전향할 것을 권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왼손 투수의 150km는 오른손 투수의 같은 구속에 비해 플러스 알파의 효과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추신수는 첫 번째 조건을 충족했다고 여겨진다.

둘째, 투수는 다양한 구질을 가지고 있어야 빠른 공의 위력을 배가시킬 수 있다. 대부분의
메이저리거들은 150km대의 빠른 공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공의 완급을 조절하여
이러한 선수들의 타격 리듬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빠른 공 외에도 자신 있게 던질 수 있는 다른
구질의 공을 두 가지 정도 더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능력은 후천적인 연습의 결과이다.
어린 나이에 미국에 건너가 4년간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면서 혹독한 자기관리를 했던 추신수의
경력을 돌아볼 때, 피나는 연습을 통해 구질의 다양성이라는 능력도 충분히 갖추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셋째, 투수는 자신이 원하는 코스로 던질 수 있는 제구력을 필요로 한다. 아무리 빠른 공과 다양한
구질을 가졌어도 제구력이 떨어지면 투구 수가 늘고 피로가 누적되어 훌륭한 선발투수의 기준인
퀄리파이 피칭을 할 수 없다. 제구력은 대체로 후천적 연습의 결과이기 때문에 연습벌레인
추신수가 충분히 습득할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넷째, 이러한 기술적인 능력 외에 투수는 자신의 실수를 ‘빨리 잊는’ 심리적 능력을 필요로 한다.
야구중계 시 “홈런 맞은 것 빨리 잊고 다음 타자에 정신을 집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구력이 흔들려 게임을 망치게 됩니다”라는 코멘트를 자주 듣는다. 즉, 투수는 자신의 실투를
빨리 잊고 집중력을 유지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투수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또 다른 심리적 능력이 자신감, 즉 ‘배짱’이다. 이는
위에서 말한 ‘빨리 잊는’ 능력과 관련성이 매우 높다. 타자의 몸에 공을 바짝 붙이고 풀카운트에서
스트라이크 코스로 가다 낮게 떨어지는 변화구로 상대 타자를 유인하는 공을 던질 수 있는 과감성,
그리고 지난 이닝에서 홈런을 맞은 타자에게 ‘다시 한 번’ 처 보라는 식으로 과감하게 공을
던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투수가 타자에게 ‘기싸움’에 눌리면 결코 좋은 투구를 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추신수의 경험담을 들어보자.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아버지의 혹독한
교육 방식 덕분에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비오는 날 공동묘지를 달리며 담력을
키웠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경험은 투수가 갖추어야 할 심리적 능력인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배짱’을 몸에 배게 한 계기로 작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추신수의 공식홈페이지를 보면, 자신의 성격을 꼼꼼하고 승부욕이 강한 것으로 규정하면서
“이기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지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다” 라는 것을 좌우명으로
하고 있다. 이 좌우명이 ‘지는 것이 죽기보다 싫다’는 일견 섬뜩한(?) 의미로 해석되면서,
기술적인 능력들과 더불어 운동선수로서 이 정도 승부욕과 배짱을 가졌다면 투수로서도
충분히 성공했을 것이라는 판단이 단지 공상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찬호, 좌신수’의
막강 원투 펀치를 가진 우리 대표 팀을 상상만 해도 참으로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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