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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둥지 기자단

프로야구 모든 역사는 우리가 써내려 간다.

 

 

글 / 배정호 (스포츠둥지 기자)

 

 

 

 

조선 시대 왕 옆에는 항상 왕의 말을 빠짐없이 기록하는 사관이 존재했었다. 사관의 역할은 실로 중요했다. 사료는 후의 자손들에게 비춰지는 역사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야구 경기에서도 이렇게 선수들 뒤에서 소리 없이 경기기록을 하여 야구역사를 써 내려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KBO의 기록위원들이다. 6월 19일 NC와 LG의 마산경기 에서 만난, 역사를 써 내려가는 두 남자 -  김태선, 송권일 기록원 - 의 활동을 취재해 보았다.

 

경기전 책상위에 기록지와 컴퓨터 기록장치가 놓여있다.

 

 

기록위원 당신은 누구인가 ?!

 

김태선 송권일 기록위원들이 경기에 집중하며 기록을 하고 있다. (좌)

김태선 송권일 기록위원들이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우)

 

KBO 기록위원들은 윤병웅 기록위원장을 포함하여 총 15명의 위원들이 활동 하고 있다. 최소 2000경기를 넘는 기록위원들이 겨우 7명, 그리고 나머지 분들은 최소 300:1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능력자 중 능력자 들이다. 오늘 경기 기록위원을 맡은 분은 23년 차 김태선 위원과 10년 차 송권일 위원이다. 이처럼 기록위원들은 2명이 짝이 되어, 항상 같이 움직인다. 김태선 위원은 “2명씩 짝으로 다니다 보니, 서로 모르는 게 없다. 어떻게 보면 부부라 생각하면 된 다”라고 말한다.


 그럼 기록위원은 왜 두 명으로 이루어진 팀일까? 이전과 달리 인터넷이 활발해진 만큼 한 사람은 수작업, 한 사람은 컴퓨터로 경기기록을 진행하면서, 서로 비교를 하여 실수는 없었는지 그리고 오차를 최소하기 위해서 이다.


 윤병웅 기록위원장은 기록위원을 한마디로 표현해 달라는 질문에 거침없이 이렇게 말하였다. “기록위원은 조선시대에 왕 옆에서 모든 걸 적어 내었던 사관. 다시 말하여 KBO 야구계의 사관 이다” 라고 자신 있게 외쳤다. 그의 말에서 수십 년간의 연륜과 경험이 묻어 나오는 의미 있는 답변이었다. 그렇다. 기록위원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모든 걸 기록해 내어, 설령 경기를 보지 못하여 한 장의 종이를 보더라도, 경기의 방향과 흐름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경기 시작 전 - 언론과 팬들에게 알릴 수 있는 자료를 만들어라! 

 

김태선 송권일 기록위원들이 경기에 집중하며 기록을 하고 있다.

 

이들은 대략적으로, 경기 시작 약 한 시간 반전에 경기장에 도착하여 경기를 준비 한다. 대략적으로 평일 경기는 6시 반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저녁식사를 해결하고 오지만, 주말 경기는 경기가 끝난 후 해결한다고 한다. 도착하자마자, 자신들의 짐을 풀고, 경기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송권일 위원은 “업무의 시작은 언론과 중계진에게 보도 자료를 만드는 것으로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오늘 달성 가능한 기록이 있는지, 전날 경기기록은 어떻게 되었는지 등을 작성하여 배포 한다 ”라고 말한다.


 언론보도자료 배포 후 이들은KBO홈페이지와, 네이버 스포츠에 올리게 될 엔트리를 컴퓨터에 입력 한다. 입력한 자료는 ‘스포츠 투아이’라는 통계조사 업체 에서 이들의 자료를 받아 KBO와 네이버 스포츠에 올린다.


 경기시작 한 시간 전에, 기록위원들은 각 팀 매니저들에게 선수 라인업 명단을 받는데, 받은 명단이 KBO등록 엔트리 와 동일한지, 혹시나 1군에서 말소된 선수가 없는지, 반드시 확인한다. 김태선 위원은 “경기 시작 전 가장 중요하고 집중을 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조심스럽고 철저하게 검토를 한다” 라고 말한다. 잘못된 엔트리로 경기를 진행하게 된다면, 정말로 큰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모든 데이터의 입력과 자료 배포 후 잠시의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정확히 경기시작 10분전, 경기시작을 위해 닫혀있던 기록실의 창문이 열리게 되고 그물망 사이로 선수들의 파이팅 소리와, 팬들의 응원소리가 들린다. 경기는 시작되었다.

 

경기 시작 - 기억에 남는 선수와 경기 그리고 기록위원이 필요한 능력!

 

시구가 끝난 후 LG 1번 타자 오지환 선수가 타석에 들어오는 순간 그들의 눈과 팔은 정말로 쉴 틈이 없었다. 경기가 시작되니, 공수 교대 시간을 제외한 모든 순간은 인터뷰를 진행할 수 없었다.


 1회 박용택 선수의 중견수 플라이 아웃으로 공수가 교대된 순간 김태선 위원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를 물어보았다. 김태선 위원은 한화 이글스 팀의 2군 코치인 한화 정민철 코치가 97년 OB베어스 와의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경기라고 말하였다. 김태선 위원은 “그때 당시, 정민철 선수가 퍼펙트게임이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라 너무나 긴장을 하면서, 경기를 기록하고 있었다. 내가 작성하는 기록으로 인하여 모든 것이 뒤바뀔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라고 설명했다.


 짧은 답변 후 다시, 경기는 시작되었고 5회까지 두 위원은 쉴 틈 없이 경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6회 말 NC이호준 선수의 땅볼 아웃으로 공수는 교대 되었고 김태선 위원은 “최근 경기에서 에피소드는, 전준우 선수의 홈런 세레 머니 경기인데 기록하는 저 자신도 보고 듣는 순간 넘어가는 줄 알았는데 결국 잡히고 말았다” 라며 웃었다. 그 날 만큼은 사직 야구장에 강한 맞바람이 불어서 결국 잡혀 미안하게도 기록지에는 홈런이 아닌 플라이 아웃이라고 적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간혹 기록위원들에게 항의를 하러 오는 선수들도 있다고 한다. 선수 자신은 분명히 안타를 쳤다고 생각이 되는데, 기록위원은 야수선택으로 기록하기 때문이다. 특히 FA를 앞두고 있는 선수들에게 3할의 타율수치는 매우 중요한 객관적인 지표이다. 곧 이들의 연봉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록위원들은 각 개개인의 선수들의 편의를 봐줄 수 없다고 한다. 김태선 위원은 “ 자신들도 엄연히, 수십 년을 넘게 야구기록을 담당해왔고, 자신들만의 기준이 있고 룰이 있기 때문에 항의를 하더라도 번복은 되지 않는다” 라고 말한다.


 8회가 끝나갈 무렵, 송권일 위원에게 특이한 점을 발견해 물었다. 자신만의 전용 펜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A4용지에 기록을 하던 송권일 위원은 “기록위원 개개인 마다 자신의 손에 맞는 펜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펜으로 무조건 경기기록을 한다” 라고 설명했다. 타자에게 맞는 배트가 있듯이, 기록위원들에게도 자신들에게 적합한 펜이 있는 것이다.


 또한 모든 기록은 한글이 아닌 한문으로 작성되고 있었다. 바로 동명이인의 선수가 있을 수 있고 한문으로 쓰게 되다 보면 한국 선수가 일본으로 진출 할 때,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이 바로 공유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사소한 부분까지, 기록을 할 때 고려하기 때문에 신입 기록위원들에게 한문 능력은 필수라고 한다.

 

경기가 끝난 후 - 신속한 보고 및 한국 프로야구 기록에 대한 자부심!

 

기록위원장실에서 윤병웅 기록위원장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9회 말 봉중근 선수의 세이브로 경기는 끝났고 바로 이들은 옆에 있던 팩스기로 오늘의 경기 자료를 취합하여 KBO로 전송을 한다. 팩스로 전송한다고 해서 이들의 일과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숙소 혹은 집으로 돌아가 경기를 다시 모니터링 하면서, 자신들이 기록 한 것이 과연 실수는 없었는지 항상 피드백을 한다. 다시 말해 야구에 대한 무한 애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행동이다.


 최근 LG 권용관 선수의 홈스틸의 행동을 기록위원에서 홈스틸로 판단하지 않아, 논란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김태선 위원은 “일본과 미국 기준에선 홈스틸이 맞을 수도 있지만, KBO기준에서는 홈스틸이 아니다. 한국의 공식 가이드에서 정해진 룰을 가지고 판단하여 기록하였기 때문 이다” 라고 주장하였다.


 그가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메이저리그는 공식 기록원이 있지 않고 경기장 내의 기자들이 경기 기록을 한다. 그리고 일본 같은 경우에도 어떻게 보면 한국야구와 비교하면 애매한 부분이 적어서, 기록위원들의 일이 수월하다. 이와 달리 가장 복잡하고 전문화 되어있고 체계화 된 기록 가이드라인은 바로 한국야구라고 말한다. 미국과 일본야구 관계자들이 한국 위원들에게 규칙에 대한 조언을 구했으면 구했지, 절대로 먼저 한국이 미국과 일본에게 규칙을 물어보는 일은 없다고 한다.

 

경기후 책상위에 기록지와 컴퓨터가 놓여있다.

 

마지막으로 윤병웅 기록위원장, 김태선, 송권일 위원은 이 말을 꼭 하고 싶다고 하며, 마산야구장을 빠져 나갔다. “단지 야구에 미쳐서, 야구가 좋아서 시작한 일입니다. 항상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앞으로도 더욱더 야구에 미쳐서, 초심을 잃지 않고 KBO의 모든 역사를 기록 하겠습니다. ”

 

KBO 기록위원이 없다면, 이승엽 선수의 352호 홈런은 아무도 모른 채 소리 없이 끝나 버리지 않았을까 ? KBO의 모든 역사는 15명의 기록위원이 써 내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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