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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체육이야기/[ 장애인체육 ]

수화도 가능한 심판이 있었더라면

 

 

글 / 오화석(서울대학교 법과대학원)

 

 

           제가 속한 컬링동호회에는 남자팀 3개조, 여자팀 3개조가 가을, 겨울시즌에 일주일에 한번정도 모여 태릉 빙상장에서 연습하고 경기도 가집니다. 컬링은 4명이 한팀으로 경기를 하며, ‘핍스’라고 하여 선수운영상 교체등을 감안해 5번째 선수도 엔트리에 포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톤을 던지는 라인을 잡고, 총체적인 공격 전략을 짜며, 매 엔드(End) 마다 마지막 슛을 쏘는 선수를 스킵이라고 하는데, 저희 동호회 팀중에는 특이한 조가 있습니다. 스킵을 제외하고는 모두 청각장애를 가진 젊은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그들이 제1회 서울특별시장배 컬링대회에 출전하여 엘리트팀인 서울체고와 자웅을 겨룬다기에 지원차 태릉국제스케이트장을 찾았습니다. 이 경기에 뒤이어 있었던, 역시 또다른 의미를 전해준 여고부 결승전을 소개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컬링경기의 승패는 양팀이 총 8개의 스톤을 던진후 동심원 정중앙에서 가장 가까운 장소에 스톤을 놓는 것으로 결정됩니다. 스톤을 던진 후에 같은 팀의 선수가 스위핑(Sweeping)을 하는 것은 거친 빙판면을 고르게 하여 스톤이 진행하는 거리를 더 길게 하기 위한 목적이 있습니다. 스킵은 같은 팀 선수가 투구한 스톤의 속도를 보면서 목표지점에 정확히 도달하기 위해 약속된 신호를 고함치며 스위핑이 필요할 때 명령을 내립니다. 저희 동호회의 청각장애인 팀은 이런 소리를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손짓으로 스위핑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면 스톤이 진행하는 방향을 따라가던 같은 팀 선수가 스킵을 보고 있다가 바로 스위핑을 하면서 모든 팀원이 혼연일체가 되어 목표지점에 스톤을 놓게 되는 것이죠.

 

저희 동호회 청각장애인팀은 서울체고팀을 맞아 최선을 다했고, 모두가 하나되어 1시간 30여분에 걸친 6엔드 경기동안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같은 시트(Sheet, 동심원이 그려진 컬링경기장을 의미합니다.)에서 연이어 여고부 결승이 있었습니다. 서울 창동고등학교와 서울 삼성학교팀간의 경기였습니다. 서울 삼성학교 팀은 스킵을 포함한 모든 팀원이 청각장애를 지니고 있습니다. 첫 엔드를 0:0 팽팽하게 마친 이들은 2엔드에서 창동고등학교가 2점을 선제득점하여 앞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3엔드에서 삼성학교 스킵의 활약으로 1점을 획득하여 추격의 발판을 마련하였습니다. 삼성학교 팀도 서서히 몸이 풀렸는지 샷의 정확도가 높아지고 있었습니다. 승부의 분수령이 되었던 4엔드에서 창동고등학교의 실수가 있었습니다. 동료가 투구한 스톤을 따라가며 스위핑하던 팀동료가 그 스톤을 건드려 스톤 진행방향이 달라졌고, 그로인해 동심원 정중앙에 가장 가까이 위치해 있던 삼성학교의 노란색 스톤을 동심원 밖으로 쳐내었기 때문입니다. (컬링 용어상, 자신의 스톤으로 상대팀의 스톤을 타격하여 동심원 밖으로 밀어내는 것을 ‘테이크아웃’, take-out 이라고 합니다.)

심판장이 시트에 내려와 컬링규칙에 따라 밖으로 나간 스톤을 원래 자리로 복귀시켰고, 이 때 스톤이 원래위치에 놓였는지를 두 팀이 모두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스톤이 놓여진 자리에 대해서 삼성학교의 스킵이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만, 말로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심판이 매 투구마다 자석 말판으로 스톤의 위치를 철판에 표시해 놓고 있기 때문에 심판은 이 말판에 따라 스톤의 위치를 조정해 주었고, 이 때가 되어서야 스킵은 안도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이 경기가 앞선 경기와 다른 점은, 앞 경기에서도 두 번에 걸쳐 스킵이 심판에게 스톤과 동심원 중앙과의 거리 측정 요청이 있었습니다만, 이 때 스킵은 비 청각장애인이었기 때문에 심판과 의사소통의 문제가 전혀 없었습니다. 스킵은 자기 팀원과 수화로 대화할 수 있어서 경기운영에 대해 요구사항을 정확히 심판에게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렇지만 이번 여고부 경기는 전원이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어, 혹 비청각장애인들과의 경기에서 심판에게 요청사항이나 요구사항이 있을 때, 심판이 수화를 알아 듣지 못해 애초부터 그러한 요청조차 포기해버리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동갑내기 친구들과의 한판승부에서, 정정당당하게 겨룬 삼성학교팀은 4, 5, 6엔드 연거푸 실점하여 창동고등학교 팀이 우승하였지만, 저는 삼성학교팀을 향해 더 크게 박수를 쳤습니다. 두 경기모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팀이 되어 팀워크를 다지기도 하고, 비장애인은 청각과 시각 모두 활용하여 의사소통을 주고 받으면서 경기를 할 때, 오로지 시각만으로 신호를 주고 받아야 하는 모습도 있었습니다. 어찌되었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하나되는 아름다운 장면임에는 틀림없었습니다. 똑같은 조건으로 경쟁하였기에 장애인팀의 도전에 더더욱 놀랍기 그지 없습니다. 경기장을 나서면서 이제는 저와 같은 비장애인이 장애인들이 내민 손에 맞잡아야 할 시점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다음 경기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들간의 경기에 수화도 가능한 심판을 기대하는 것은 제 지나친 욕심뿐일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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