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윤동일 (국방부)
나. 군사적 관점에서 본 스포츠(5-4)
스포츠의 전투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관점을 약간 조정할 필요가 있는데 이를 위해 전장에서 요구되는 전투 기술과 능력을 나름의 정의대로 아래와 같이 다섯 국면으로 구분했다. 먼저 개인과 집단에 필요한 전투기술로 구분하고, 일반적인 전투의 전개순서에 따라 다섯 국면별로 요구되는 전투기술을 설명하고자 한다.
<1>개인_개전∼접적전진(接敵前進) : 적과 접촉을 위해 적 방향으로 실시하는 전장이동기술
<2>개인_원거리·공성전투 : 가급적 편제무기에 의한 원거리 전투로 적의 기도를 와해시키고, 전투력을 감소시키되, 통상 방자의 성을 포함한 각종 장애물을 두고 벌이는 공방의 전투기술
※적과 접촉한 후, 직접적인 교전 이전 단계에 벌어지는 전투로 편의상 둘을 하나로 통합했음.
<3>개인_근접전투 : 원거리·공성전투에서 살아남은 양방이 최후의 승리를 위해 무기를 들고 또는 무기 없이 하는 백병전을 포함한 직접적인 교전기술
<4>개인_종합전투 : 개별적으로 연마한 각 전투기술(∼)을 종합적으로 구사하는 능력과 기술로 통상 전사나 전령의 자격조건을 구비했는지 여부를 평가하는데 활용된다.
<5>집단_조직전투 : 전투조직을 구성했을 때 분담된 역할에 충실하고, 팀웍으로 조직화된 기술
<표> 전투의 진행국면별 요구되는 전투기술
구분 |
개인 |
조직 | ||||
전투국면 |
개전∼접적전진 |
초기전투 |
최종전투 |
전 단계 |
전 단계 | |
전투기술 |
<1>전장이동기술 |
<2>원거리·공성전투기술 |
<3>근접전투기술 |
<4>개인종합기술 |
<5>조직전투기술 | |
비고 |
달리기또는교통 수단(배,말,스키)에 탑승이동 |
직사/곡사회기에 의한사거리전투 (활,창,포등) |
자연/인공장애물 극복(凹凸또는 해자,성벽등) |
맨손의격술이나 봉·검등을활용 하는무술 |
전사/전령자격 평가,특정 상황 대처(<1>+<3>) |
조직의전투수행 능력과 기술 |
<4> 개인_종합전투 기술
네 번째 유형은 말 그대로, 여러 개별 종목들을 특별한 목적에 따라 혼합 편성한 종목으로 대표적인 것은 고대 5종경기와 근대 5종경기가 있다. 두 종목 모두 다섯 종목을 혼합 편성한 경기였기 때문에 혼란을 피하기 위해 ‘고대’ - ‘근대’라는 용어를 붙였지만 종목의 성격은 알고 보면 완전히 다르다. 전자는 고대 전사들에게 필요한 일반적인 전투기술을 반영했지만 후자는 근대의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전령에게 필요한 전투기술을 편성함으로써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고대의 경기는 달리기(단거리)-멀리뛰기-원반/창던지기-레슬링으로 구성된 반면 근대 경기는 승마(장애물경기)-펜싱-권총사격-수영-달리기(중거리) 종목으로 편성되어 있다. 1
고대 전사는 기본적으로 적 보다 빨라야 하고,(달리기 ; 스타디온) 이동 간 봉착하게 되는 자연 또는 인공의 장애물을 뛰어 넘어야 하며(멀리뛰기) 강을 만나면 가장 크고 무거워 유영을 방해하는 방패를 반대편에 힘껏 던진 후(원반던지기) 신속히 극복해야만 했다. 또한 적을 만나면 적보다 먼 거리에서 창을 던져(창던지기) 적의 희생을 최대한 강요(원거리전투는 아군의 희생을 줄이고, 이후 근접전투에서 유리한 여건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전승<戰勝>의 선결요건이 된다.)해야 하며, 적과 조우해서는 백병전 상황에서 최후의 수단을 동원해 상대를 제압(레슬링)할 수 있어야 했다. 근대의 전령은 무엇보다도 발이 빨라야 했는데 그들이 달리는 길은 평지보다는 요철(凹凸)이 심한 야지가 되었기 때문에 이를 횡단하는 능력(3km 크로스컨트리)이 우수해야만 했다. 그리고 전령의 임무수행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말을 지급했기 때문에 말을 조련해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어야 했는데 이를 위해 야지에서의 승마기술(마장마술, 장애물경기)이 요구되었다.
또한 특별한 전장 상황을 가정했는데 이동 중에 물을 만나면 지체 없이 수영으로 건널 수 있어야 하고(수영 자유형 200m), 이동 중에 적을 만나면 상황에 따라 권총(10m 공기권총)으로 적을 사살하거나 칼(펜싱 에뻬)로 적을 무찔러야만 했다. 필자가 앞서 설명한 전투수행 국면별로 필요한 전투기술을 적용해 구분해 보면 고대 경기는 하나의 전장이동기술(달리기)과 세 종목의 원거리·공성전투기술(멀리뛰기, 원반던지기, 창던지기) 그리고 하나의 근접전투기술(레슬링)이 요구되었으나 전령은 수행하는 임무와 역할에 맞지 않는 원거리·공성전투기술은 불필요했고, 오히려 다양한 전장이동기술(승마, 수영, 달리기)과 적과 조우시 생존성을 보장할 수 있는 근접전투기술(펜싱, 권총사격)에 역점을 두었다고 말할 수 있다.
※ 고대 5종경기와 근대 5종경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지난 2012.12.24일자 연재 내용을 참조하기 바람.
동계 스포츠에도 전장이동기술과 근접전투기술을 혼합한 종목이 있는데 육상의 크로스컨트리에 해당하는 노르딕스키와 사격을 혼합한 바이애슬런(Biathlon)이 그것이다. 거리에 따라 모두 10개 종목이 있는데 가장 먼 남자 20km 경기는 노르딕스키 구간의 매 4km 지점마다 사격을 함께 병행하는 경기다. 라이플 소총으로 50미터 거리에서 입사(立射<서서쏴>, standing)와 복사(伏射<엎드려쏴>, prone)로 20발을 사격하되 실패할 경우(점수제가 아니라 합격 또는 불합격으로 판정한다.) 모든 거리를 완주할 때의 개인 기록에서 1분을 가산하게 된다. 경기를 처음 본다면 다소 산만하게 느낄 수도 있겠으나 정해진 거리를 달리면서 표적을 맞추면 좋고, 그렇지 못하면 그만큼 기록상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비교적 단순한 경기다. 숨이 멎을 것 같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표적을 명중시키기 위해 고도의 집중력과 대담성을 요구하는 종목으로 달리기와 검투를 혼합했던 고대의 무장달리기의 경기방식과 매유 유사하다. 이 두 종목은 목표를 향해 전장을 이동하고, 적을 향해 돌진하며 칼과 총으로 교전하는 전투행위에 가장 유사한 종목이라 볼 수 있다. 이미 고대에 북유럽의 사냥꾼들이 스키를 타고 사냥했던 것에서 유래했지만 이를 스포츠에 도입한 것은 스키부대를 창설하고 스키공장을 만들어 부대에 보급했던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국경수비대 사이에 벌어진 친선경기가 시초이며 이것이 북유럽 전체에 확산되었다.
전쟁의 역사에는 이 바이애슬런 종목의 기술을 활용해 독특한 전법(戰法)을 고안하여 침략군을 무찔렀던 유명한 사례가 있다. 세계에서 국가 경쟁력이 가장 높게 평가되는 나라는 주로 북구에 있는 나라들인데 그 중 한 나라인 핀란드는 국가 경쟁력 말고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꼽힌다. 이 나라는 과거 스웨덴의 일부였고, 러시아의 장기 지배를 받다가 우여곡절 끝에 1917년에 독립했다. 2차 세계대전에 임박해 1939년 소련과 국경 지역에서 촉발된 무력충돌로 전쟁에 돌입했는데 당시 약체인 핀란드군(33만명, 전차 30대, 항공기 110대)은 절대적으로 우세했던 소련의 붉은 군대(46만명, 전차 3,200대, 항공기 3,800대)를 맞이해 이듬해 3월까지 버텨냈다. 1940년 3월 6일 휴전협정을 통해 핀란드는 많은 양보를 해야 했지만 4개월 동안 영하 40도나 되는 혹한의 설원에서 핀란드군이 고안한 독특한 전법 때문에 소련군은 12.7만명의 사상자를 감수해야만 했다.(당시 핀란드군의 사상자는 2.7만명으로 집계되었다.) 조국을 침공한 소련군을 상대로 약체 핀란드군이 구사했던 전술은 민간에서 땔감으로 쓰기 위해 1미터 길이로 토막 낸 화목(火木)을 의미하는 ‘모티(Motti) 전술’이었다. 종전 후 대통령으로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가 된 만네르하임 사령관이 지휘하는 핀란드군은 우거진 산림지역을 이용해 탱크를 앞세운 소련군의 주력을 분리시키고, 분리된 부대를 신속하게 치고 빠지는 히트앤드런식 게릴라 전법을 구사했다. 이 때 눈부신 활약을 했던 주역이 아래 사진에 등장하는 스키를 신은 핀란드군이었다.
바이애슬론의 노르딕스키와 사격(엎드려쏴/서서쏴) 장면. 소총 3자세 사격종목이나 군에서 사격훈련 중 무릎쏴(膝射, kneeling)는 바이에슬런에 적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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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핀란드의 전통 사냥꾼들. 그들에게 스키는 조상 대대로 전해진 교통수단으로 설상(雪上) 사냥에 유용했다.
2. 1939년 소련의 침공에 대항하는 핀란드군(스키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과 설상 매복 중인 장면)은 독자적인 전술(모티)로 결국 소련의 침공을 물리쳤다.
3. 소련 침공을 물리친 것을 기념하는 우표에는 파괴된 소련 전차 뒤로 스키를 타고 전장을 빠르게 이동하는 핀란드군의 이미지가 인상적이다.
ⓒ 스포츠둥지
- 전령(傳令) : 부대 간 명령을 전달하거나 중요한 메시지를 전파하는 직책. 무전기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주 통신수단으로 가장 널리 활용되어 군대마다 선발에 상당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는데 전령은 현대까지도 전장 의사소통을 위한 보조적 또는 예비적 수단으로 여전히 유용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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