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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폴더/스포츠미디어

흑인 최초 한국대표 태극 마라토너 탄생할까.

 

 

글 / 이종세(스포츠동아 이사)

 

 

 

 

대한육상경기연맹, 케냐 윌슨 에루페 귀화 추진 움직임
빠르면 2014 인천아시아경기부터 참가 가능성

 

           까만 피부의 아프리카 선수가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이나 아시아 경기의 마라톤 레이스를 펼친다면….

우리나라에도 흑인 국가대표 마라토너가 탄생할 수 있을까. 침체에 침체를 거듭하고 있는 한국 마라톤이 케냐선수를 귀화시켜 국가대표로 기용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내 마라톤 활성화를 위한 고육지책의 일환이다. 이미 카타르 바레인 등에서는 귀화한 케냐나 모로코 선수들이 아시아경기대회 육상에서 금메달을 따내고 있고 다민족으로 구성된 미국은 물론 독일 일본의 경우도 많은 종목에서 귀화선수들이 국가대표로 활약하고 있다. 빠르면 2014년 인천아시아 경기대회, 늦어도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태극마크를 달고 레이스를 펼칠 마라토너. 그는 바로 올 서울국제마라톤과 경주국제마라톤에서 거푸 우승한 케냐의 윌슨 로야나에 에루페(24)다.

 

지난 10월21일 2012 경주국제마라톤에서 1위로 골인하는 윌슨 로야나에 에루페 ⓒ동아일보

 

 

올 서울 ․ 경주국제마라톤 우승한 24세의 신예…2시간05분37초 최고기록 보유 
에루페 그는 누구인가

 그는 1988년생으로 1m75에 61kg의 체격. 작년 봄 케냐 뭄바사 마라톤대회에 데뷔, 2시간12분47초의 기록으로 1위에 오른 이후 4번의 풀코스 대회를 잇달아 석권한 무쇠다리다. 작년 10월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타고 우리나라 경주국제마라톤에 나선 에루페는  난코스의 어려움에도 막판 스퍼트로 2시간09분23초를 기록, 첫 해외 원정을 우승으로 장식했다.


그로부터 5개월. 그는 올 3월18일 열린 서울국제마라톤에서 한국 마라톤 대회사상 가장 좋은 기록인 2시간05분37초의 대기록을 수립했다. 이 기록은 11월1일 현재 역대 세계51위(이봉주의 한국기록 2시간07분20초는 229위)이며 올해 세계 랭킹은 16위, 그리고 올 각종 국제마라톤대회 우승 기록으로는 7위다. 특히 가장 지칠 수밖에 없는 35~40km구간에서 14분11초, 마지막 2.195km에서도 6분12초의 놀라운 뒷심을 발휘했다.

 

 

 

<에루페 풀코스 마라톤 우승 기록>

대 회

기 록

비 고

  2011 뭄바사

2시간1247

풀 코스 첫 도전

2011 경 주

2시간0923

해외대회 첫 참가

2012 서 울

2시간0537

대회최고기록 수립

2012 경 주

2시간0646

경주대회 2연패

 

지난 3월18일 2012서울국제마라톤에서 우승테이프를 끊는 윌슨 로야나에 에루페

 

 

풀코스 4번 뛰어 모두 우승한 불패의 주인공…뛰어난 후반 스퍼트 주무기  
 에루페는 지난 10월21일 열린 2012 경주국제마라톤 역시 2시간06분46초(역대 세계 160위)로 이 대회를 2연패, 한 시즌 두 번  우승의 진기록을 세웠다. 올 경주마라톤에서도 30~35km구간은 14분33초, 35~40km구간은 14분20초, 마지막 2.195km는 6분19초에 주파, 막판에 강한 면모를 다시 한번 입증해 보였다. 


특히 올 시즌 봄과 가을 두 차례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 두 번 모두 2시간06분46초 이내의 기록을 작성한 마라토너는 전 세계에 에루페를 포함, 6명뿐이다.

 

 

카타르 바레인 등 ‘귀화 용병‘ 수두룩…미국 독일 일본에도 많아
외국의 ‘귀화 용병’ 사례

2006년 12월10일 도하 아시아경기대회 남자마라톤에서 2시간12분44초로 우승한 카타르의 무바라크 하산 샤미(카타르)는 케냐 출신의 ‘귀화 용병’. 그는 2007년 오사카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마라톤에서도 준우승했으며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에서는 한국의 지영준(금메달)과 경합을 벌이다 동메달을 땄다.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에서는 2005년 케냐에서 카타르로 귀화한 다함 나짐 바샤이르가 남자 1,500m에서 3분38초06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중동의 바레인 역시 모로코에서 귀화한 다레크 무바라크 살렘과 하산 마부브가 각각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 남자 3,000m장애물경기와 남자 10,000m에서 우승했다. 또 모로코 출신인 바레인의 라쉬드 람지는 2005년 헬싱키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800m와 1,500m에서 금메달을 땄으나 도하 아시아경기 1,500m에서는 카타르의 바샤이르에 뒤져 은메달에 그쳤다.


 여러 나라 민족으로 구성된 미국의 경우 어느나라 보다 귀화한 국가대표가 많다. 한때 세계마라톤 기록(2시간05분38초)을 보유했던 할리드 하누치는 모로코 출신이며, 2007년 오사카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마라톤에 미국대표로 뛰었던 음바락 후세인 등도 케냐 출신이다. 2008년과 2009년 런던마라톤 여자부를 연패한 독일의 이리나 미키텐코 역시 카자흐스탄 출신. 육상은 아니지만 일본의 경우 1994년 라모스, 1998년 로페즈, 2002년에는 산토스 등 브라질 출신 선수들을 귀화시켜 월드컵 축구대회 국가대표 선수로 기용했다.

 

 

등록선수 모두 1백여 명 불과한 최악의 상황…기록도 남녀 모두 중하위권  
한국마라톤 현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손기정 우승, 남승룡 3위)과 1950년 보스턴 마라톤(함기용 우승, 송길윤 2위, 최윤칠 3위)에 이어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황영조 우승)과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이봉주 2위)에서 주목을 받았던 한국마라톤이 침체의 늪에 빠진 것은 1997년 이후. 지난 16년간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이렇다 할 기록은 물론 동메달 하나도 따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
특히 지난해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남자부는 정진혁이 2시간17분04초로 23위, 여자부는 김선경이 2시간37분05초로 28위에 그쳐 국민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다.


 한국마라톤은 올 들어서도 부진을 면치 못했다. 85명이 완주한 8월의 런던올림픽 남자부에서 이두행이 2시간17분19초로 32위, 장신권은 2시간28분20초로 73위, 정진혁은 2시간38분45초로 82위에 머물렀다. 107명의 선수가 완주한 여자부에서도 정윤희가 2시간31분58초로 41위, 임경희가 2시간39초03초로 76위, 김성은이 2시간46분38초로 96위를 마크했다. 남녀 대표 6명이 모두 완주한 것만도 다행이었다.


 올 국내에서 개최된 국제대회에서도 외국선수들은 세계적인 기록을 쏟아 냈으나 한국선수들은 기대이하였다. 서울국제마라톤(3월18일)에서는 정진혁이 2시간11분48초, 김성은이 2시간29분53초, 대구국제마라톤(4월8일)에서는 이두행이 2시간14분05초, 임경희가 2시간32분49초로 각각 남녀부 1위를 했다. 경주국제마라톤(10월21일)에서는 오서진이 2시간17분02초, 최보라가 2시간40분20초, 춘천국제마라톤(10월28일)에서는 박주영이 2시간19분49초, 박유진이 2시간42분55초로 국내 남녀부 1위를 각각 기록했다. 11월4일 열린 중앙마라톤에서도 김영진과 최경희가 2시간17분00초. 2시간39분19초로 각각 남녀부 우승을 차지했다.


한마디로 현재 한국마라톤은 최악의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 1백여 명 이상의 남녀 엘리트선수가 참가하던 국내대회에 남자 20~30명, 여자 6~8명이 참가할 만큼 선수난에 허덕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기록이나 아시아 기록은 물론 한국기록 경신도 까마득한 실정이다. 이봉주의 남자기록 2시간07분20초(역대 세계229위)는 12년 넘게 요지부동이며 권은주의 여자기록 2시간26분12초 역시 15년 동안 깨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마라톤은 “이제 더 이상 추락할 곳도 없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2012 국내개최 국제마라톤대회 한국 우승선수 기록>

날짜

대회

남 자 부

여 자 부

03/18

서울

정진혁(건 국 대) 2시간1148

김성은(삼성전자) 2시간2953

04/08

대구

이두행(고양시청) 2시간1405

임경희(SH 공사) 2시간3249

10/21

경주

오서진(체육공단) 2시간1702

최보라(경산시청) 2시간4020

10/28

춘천

박주영(한국전력) 2시간1949

박유진(삼성전자) 2시간4255

11/04

중앙

김영진(삼성전자) 2시간1700

최경희(경기도청) 2시간3919

 

 

 

본인의 의사 중요…한국실업팀 입단 후 대한체육회 심사 등 절차 거쳐야
귀화 가능성과 득실

 대한육상경기연맹은 작년부터 3번이나 우리나라 국제마라톤에 참가, 모두 우승한 에루페를 한국에 귀화시켜 마라톤 활성화의 기폭제로 삼으려는 움직임이다. 대한육상경기연맹의 고위관계자는 최근 “국내마라톤 활성화를 위해 에루페의 귀화를 조심스럽게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에루페를 귀화시켜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에 내보낼 경우 우승가능성이 매우 높고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도 메달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에루페가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서 우승할 경우 국내 마라톤 붐 조성에도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990년대 황영조 이봉주 김재룡 김완기 등이 기록경쟁을 벌이면서 올림픽과 아시아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냈고 한국 남녀기록도 잇달아 경신됐으며 마라톤 붐도 일어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시민마라톤인 마스터스마라톤이 처음 시작된 것은 1994년 황영조 등이 한창 활약했을 때였다. 현재 4~5백 만 명으로 추산되는 한국 달리기 동호인의 급속한 증가의 시발점이 바로 이 시기였다.

 

 

 

 

 


 그러나 에루페의 귀화가 쉽지만은  않다. 먼저 에루페 본인의 의사가 매우 중요하며 에루페가 귀화 의사를 밝히더라도 그를 받아 줄 국내 실업팀이 있어야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해당 실업팀과 에루페가 상당한 액수의 계약금에 합의해야하는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이어 대한체육회가 에루페 귀화에 따른 심의를 통과시켜야한다. 대한체육회는 지난여름 프로축구 전북의 에닝요 귀화요청을 부결시킨바 있다. 그러나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규정에는 에루페가 한국에 귀화, 2014년 인천아시아경기에 참가해도 문제가 없다. 종전에는 귀화한지  3년이 지나야 국가대표선수로 뛸 수 있었으나 전 소속국가에서 국가대표선수로 뛰지 않았을 경우는 귀화한 나라에서 바로 국가대표선수로 활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케냐 현지에서 에루페를 발굴, 조련해온 오창석 백석대 스포츠과학부 교수는 “아직 대한육상경기연맹으로부터 공식적인 제의를 받은 적이 없다. 제안이 오면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이다”고 말했다. 오교수는 “에루페가 귀화해 국내 선수들과 합동훈련할 경우 유 무형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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