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비공개 폴더/스포츠미디어

‘A Step Back(한발 물러섬)’, 김득구의 이야기를 담은 미국판 새책

      

 

 

글/김학수(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 연구소장)

 

 

      ‘비운의 복서’ 김득구의 이야기가 미국에서 책으로 출간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스포츠 칼럼니스트 마크 크리에겔이 김득구와 레이 맨시니의 죽음의 경기와 그 이후를 다룬 ‘착한 아들’이라는 제목으로 18일 출간한 책의 주요내용을 소개하는 특집기사를 인터넷판에 보도했다. 특집기사 제목은 ‘ A Step Back(한발 물러섬) ’. ‘Families Continue to Heal 30 Years After Title Fight Between Ray Mancini and Duk-koo Kim(가족들이 김득구와 레이 맨시니의 경기이후 30년동안 상처 치료를 계속하고 있다’는 부제를 붙인 이 특집기사는 인터넷 웹 페이지 8장에 이를 정도로 장문으로 구성돼 있다.

 

 

 


1982년 11월13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시저스 팰리스 특설링에서 벌어진 김득구와 레이 맨시니의 WBA 라이트급 챔피언 타이틀전은 14라운드까지 이뤄진 치열한 승부 끝에 김득구의 죽음이란 비극적 결말로 끝났다. 이 경기를 본 필자를 비롯한 모든 한국인들의 기억속에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비운의 라운드로 자리잡았다. 김득구는 맨시니에게 턱을 강타당한 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5일간의 뇌사상태 끝에 생을 마감했다. 김득구는 사후 가족들의 동의를 얻어 장기를 기증, 잔잔한 감동을 주기도 했다. 김득구의 비극은 그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김득구의 어머니는 그후 3개월 뒤 자살했고, 경기 심판이었던 리처드 그린도 7개월뒤 자살했다.


김득구 스토리는 지난 2002년 곽경택 영화감독에 의해 배우 유오성을 주연으로 한 ‘챔피언’이라는 타이틀로 영화화됐었다. MBC에서 지난 해 창사 50주년 특집 다규멘터리 ‘14라운드’라는 제목으로 한국서 책으로 출간된 적이 없었던 만큼 미국에서 책이 나온다는 것은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다. 칼럼니스트 마크 크리에겔은 백인복서로는 드물게 큰 성공을 거둔 맨시니와 김득구의 죽음의 대결에 초점을 맞춰 책을 구성했다.


이 기사는 맨시니의 최근 생활, 김득구의 삶과 사랑, 복서생활, 죽음의 라운드 이야기, 김득구 가족과 맨시니의 만남 등을 책의 내용에서 발췌해 상세하게 보도했다. 전형적인 ‘헝글리 복서’인 김득구의 불우한 가족사와 힘겨운 성장과정, 가슴아픈 사랑이야기 등이 눈길을 끌었다. 2살 때 아버지를 잃은 김득구는 재가한 어머니와 함께 5살도 채 되지 않아 두부행상을 했던 양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등짐을 메고 무작정 가출, 휴전선에서 18km 정도 떨어진 동해안 최전방마을인 가난한 어촌 반암에 새 둥지를 틀었다. 어머니가 새 양아버지를 만나 ‘김’씨 성을 갖게 된 김득구는 14살에 반암을 떠나 서울로 상경한 뒤 다리 밑에서 생활하며 밤장수, 볼펜 장수 등으로 어렵게 생활했다. 김득구는 밑바닥 생활속에서 복싱을 통해 가난에 대한 분노를 삭이고 성공을 해야한다며 야망을 키워나갔다. 김득구는  동아 체육관에서 김현치 관장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갖고 3년 간 아마추어 활동을 하다 1978년 4라운드 판정승으로 프로 권투계에 데뷔했다. 밤낮 없는 연습과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을 통해 한국 라이트급 챔피언, 동양 라이트급 챔피언이 되며 승승장구를 했다. 그러던 중 체육관 옆 사무실을 다니던 운명의 여인 이영미씨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비밀 약혼식을 올린 김득구는 그로부터 1년 후, 유복자를 두고 맨시니와의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위해 미국으로 날아갔다.


이 기사는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맨시니와 김득구의 유복자 아들 김지환과 그의 부인 이영미씨와의 극적인 만남을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의 만남은 2011년 6월 23일 미국에서 이루어졌다. 영화제작자로 활동중인 맨시니가 초청을 해 가능했던 것이었다. 맨시니는 자신의 자서전을 위해 김득구 유가족이 인터뷰를 응해준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미국 방문을 주선했다. 극적인 만남은 맨시니의 집에서 행해졌다. 맨시니와 그의 가족들은 김득구의 링사고 당시 7개월 유복자였던 김지환씨와 그의 어머니를 만났다는 것에 크게 감격스런 표정이었다.


맨시니는 김득구의 아들이 29살로 어엿한 청년으로 잘 자라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했다. 맨시니는 “당신들을 직접 만나니 행복하다. 치과의사과정을 밟고 있을 정도로 훌륭하게 자란 아들이 자랑스럽다. 김득구는 내 가슴속에 항상 남아있고, 그동안 많은 악몽도 꿨다. 이제는 어느 정도 그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고 김득구의 유가족들에게 말했다. 


김지환씨는 “맨시니가 아직도 예전의 경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며 편안한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들었다. 이제는 맨시니도 가정을 갖고 아들과 딸 자녀들을 두며 단란한 가정을 이끌어 가고 있는만큼 부담감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특히 맨시니 자녀들에게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며 과거의 상처로 고통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맨시니 가족을 위로했다. 맨시니는 큰 딸 니나는 전문대학교에 다니는 학생으로 레스토랑 관리업무를 배우고 있으며 아들 레이 레이는 고등학교에서 농구선수로 활동중이라고 소개했다.

30년이 지난 충격적인 김득구의 링 사망 사건을 소재로 살아있는 그의 유가족까지 찾아서 인터뷰를 하며 고통과 상처의 치유과정을 소개한 미국 스포츠 칼럼니스트의 치열한 정신을 높이 평가할만했다.

 

 

 

ⓒ 스포츠둥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