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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체육이야기/[ 전문체육 ]

야구가 올림픽에서 퇴출된 역사적 이유



 

글/하남길(경상대학교 사범대학 교수)
 

 

야구는 미국의 국민적 게임이지만 한국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가 되었다. 그러나 2008년 베이징대회를 끝으로 야구는 올림픽에서 퇴출되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이 눈앞으로 다가오는 지금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우리로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다면 야구가 올림픽에서 퇴출된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한 이유는 야구를 하는 나라가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깊은 이유가 있다. 그것은 조상이 같은 두 종류의 스포츠가 문화적 충돌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은 각종 놀이를 조직화하여 근대적인 스포츠로 바꾸어 놓았고, 그러한 스포츠는 전 세계로 수출되었다. 북미도 예외가 아니었다. 영국의 경마, 골프, 테니스, 크리켓 등이 북미 상류층의 주된 레저 문화로 전파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영국적 전통을 깨고 새로운 버전의 스포츠 문화를 창달했다. 농구와 배구를 창안했으며, 럭비와 하키는 북미식 버전의 미식축구와 아이스하키로, 크리켓의 조상인 라운더스(rounders)는 야구로 태어났다. 이러한 문화 재생산 과정에서 영국의 럭비나 크리켓은 미식축구와 야구의 발달로 인해 미국 땅에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가 야구도, 크리켓도 올림픽에서 퇴출되는 역사로 이어지게 되었다.

 영국에는 15세기부터 다양한 형태의 볼 게임이 존재했다. 테니스, 셔틀콕, 하키, 볼링 등과 유사한 놀이 문화가 존재했고, 스툴볼(stool-ball), 라운더스(rounders)의 조상으로 크리켓 경기가 일반화되자 점차 자취를 감추었다. 1760년대 햄프셔 햄블던(Hambldon)에는 크리켓 클럽이 생겨났다. 크리켓은 피치로 불리는 운동장에 두 개의 삼주문이 스툴볼의 표적 판 역할을 했다. 오늘날 배트맨으로 불리는 타자는 피치(pitch)의 한 쪽 끝에 서서 삼주문을 방어하는 반면, 보울러로 불리는 투수는 맞은편에서 공을 던져 타자 뒤에 있는 삼주문을 무너뜨림으로서 타자를 아웃시키는 경기였다. 1787년 런던 로즈구장(Lord's ground)에 MCC(Marylebone Cricket Club)가 창립된 이래 크리켓은 가장 역사가 깊은 근대 스포츠로 등장했고, 영연방권에서 '스포츠의 여왕(queen of sport)'으로 불리게 되었다. 크리켓이 북미에 전해진 것은 18세기였다. 1751년에 아메리카 식민지 대표 11명과 런던 대표 11명이 경기를 했고, 식민지 팀이 이겼다. 그것이 아메리카 스포츠 역사 최초의 국제 시합이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야구 문화가 성장하면서 미국 땅의 크리켓 문화는 점차 시들기 시작했다. 크리켓이 야구에 밀려버린 것이다.

 라운더스의 조상이 스툴볼이었다면 크리켓과 라운더스는 형제인 셈이고, 야구의 기원이 라운더스에 있다면 크리켓과 야구는 혈통이 같은 셈이다. 라운더스는 미국 뉴잉글랜드로 전해진 이후 두 종류의 게임으로 변천되다가 근대 야구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크리켓과 유사한 버전의 야구가 발달되면서 미국 땅에서는 완전히 소멸되었다.

 크리켓도 한 때 올림픽 종목이었고, 야구도 올림픽 종목이었으나 두 종목이 모두 퇴출되었다. 영국 식민지였거나 영연방 권에서는 지금도 야구는 하지 않거나 인기가 없는 스포츠이고 크리켓에는 구름관중이 몰린다. 반면 미국의 문화 식민지 권에서는 크리켓은 잘 모르고 야구에 흥분한다. 두 종목 모두 세계화되지 못하는 이유는 야구가 크리켓의 확산을 방해하고, 크리켓은 야구의 확산을 방해하는 동질적 스포츠의 문화적 충돌 현상 때문이다. 두 스포츠가 축구처럼 세계적인 스포츠가 되지 못하고 올림픽에서 퇴출된 것은 역사적 숙명이다.(hng5713@gnu.ac.kr)

 

* 참고 문헌
하남길, 체육사 신론 (진주: 경상대학교출판부, 2010), p. 170.
David G. McComb, Sports in World History (New York & London : Routledge , 2004), p. 37.
Charles Blancke, "Cricket in America," Harper's Weekly, XXXV(September 26, 1891), p. 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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