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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체육이야기/[ 전문체육 ]

몸만들기 열풍을 지켜보며.

 



                                                                                                    글/송형석 (계명대학교 교수)


어느 정도 지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요즘 스포츠에서 일고 있는 변화를 쉽게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
그 변화란 한 마디로 사람들이 스포츠로부터 기대하는 바가 크게 달라졌다는 점이다. 스포츠는
다양한 몸짓으로 이루어진 일련의 활동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단순한 몸짓의 활동으로 그치지 않고 몸짓을 통해 정신적인 그 무엇을 고양시키는 활동으로 이해되어 왔다. “스포츠맨십”, “페어플레이”, “협동심”, “인내심”, “극기의 정신등이 전통적으로 스포츠라는 일련이 몸짓을 통해 고양시키려고 했던 정신적인 그 무엇이었다. 그래서 적지 않은 교육학자들이 인간의 교육과 관련하여 스포츠의 가치를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스포츠로부터 기대하는 바가 정신적인 것에서 육체적인 것으로 뚜렷하게 바뀌고 있다. “날씬한 몸”, “근육질의 몸”, “에로틱한 몸이 스포츠참여의 궁극적인 목표가 된 것이다. 한 마디로 스포츠의 목적이 바람직한 몸 거동의 반복을 통해 인격적 성숙을 도모하는 마음 닦기에서 몸만을 갈고 다듬는 몸 닦기로 바뀐 것이다.


스포츠는
사회의 거울이라는 잘 알려진 명제는 이러한 경향이 몸에 집중하고 있는 현대 사회의 일반적인 경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시사해준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몸에 대한 관심은 해를 거듭할수록 높아지고 있다. 사회의 구성원 개개인은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몸을 보다 건강하고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점점 더 많은 노력과 시간, 돈을 쏟아 붓고 있으며, 이에 부응하여 몸 관련 산업은 끝을 모르고 성장하고 있다.

사람들이 몸에 관심을 갖고, 몸을 아름답게 가꾸며, 몸 건강에 신경 쓰는 것에 대해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런 노력이 즐거움을 주고 개성을 확장시켜주는 한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개성을 억압하고 제한하며 고통만을 가중시킨다면 분명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집착에 가까운 대중의 몸 닦기 열풍이 어떤 문제점을 지닐 수 있는지 몇 가지만 지적해보겠다.

첫째, 몸 가꾸기는 철저한 자아의 타자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남에게 보여주고, 평가받기 위해 자신의 몸을 끊임없이 갈고 다듬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몸 가꾸기 주체의 삶의 척도는 자신의 것이 아닌 타인의 것이 된다. 데이빗 리츠먼은 이에 대해 내부지향형 인간타자지향형 인간으로 대체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 마디로 몸 가꾸기를 통해 주체성이 상실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둘째, 몸에 대한 투자에는 한계가 있다. 몸은 나이를 먹고 쇠퇴하며 결국 죽을 운명이기 때문이다. 나이 사십이 넘어서면 누구나 주름살이 늘게 되고 윤기 나는 젊은 피부를 되찾을 수 없게 된다. 우리의 몸은 지체 없이 늙어가며 결국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은 몸에 중심을 둔 자아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

셋째, 몸은 언제나 우리가 의도한 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각종 대중매체를 통해 보고되고 있는 성형수술과 다이어트의 실패와 폐해에 대한 적지 않은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우리는 우리 몸에 아주 작은 변화만을 줄 수 있을 뿐이다. 키가 작은 사람은 여전히 작은 채로 남을 것이고, 키가 큰 사람은 여전히 클 것이며, 비만 체질을 타고난 사람은 날씬해지기가 무척 어려울 것이고, 날씬해지더라고 요요현상 같은 부작용으로 인해 날씬함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렵다.

넷째, 바람직한 몸에 대한 이미지가 기존의 사회적 불평등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이용될 수 있다. , 몸 가꾸기와 몸 변형에는 적지 않은 금전적, 시간적 투자가 요구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하고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운 시간이 충분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러한 추세에서 소외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사람들은 몸에 대해 기대를 품고 몸을 통해서 정체성을 확립하며 자신감을 얻으려고 하는데, 그 실제적인 결과는 오히려 자신의 정체성을 위협받고 자신감을 잃게 될 수도 있다.
외모를 가꾸는 것으로는 자의식이 강화되기는커녕 오히려 약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외모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이루려는 시도는 지속적 효과가 없다. 안정된 자아를 확립하는 데 있어서 몸은 적절치 않고 일시적인 방편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지적하였듯이 몸 닦기에 대한 집착은 여러 면에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중세 수도사의 고행에 버금가는 몸 닦기의 결과 아름다운 몸, 멋진 외모를 갖게 된다고 해도 약속된 모든 것이 성취되지는 않는다. “여성들의 착각은, 사랑 받으려면 아름다워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아름다우면 지금보다 더 멋진 사랑을 체험하게 되리라는 생각에 있다. 하지만 실상 아름다움은 사랑 자체가 아니라, 사랑할 기회를 조금 더 줄뿐이라는 발트라우트 포슈의 말처럼 이상적인 외모 자체가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을 이루게 해주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이제 몸과의 전쟁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 몸과 화해하고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가짐도 중요하다. 스포츠참여자 역시 같은 맥락에서 몸 만들기에만 열중하는 고통 받는 인간 homo patiens의 모습이 아니라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아픔, 고통의 인내 과정을 통해 마음을 단련하고 세계 및 타인과 대화하며, 궁극적으로 삶의 기쁨을 만끽하는 놀이하는 인간 homo ludens의 본래 모습을 되찾아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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