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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체육이야기/[ 전문체육 ]

"대한민국 올해의 체육인 상" 제정은 어떨까요?

 



                                                                                           글/홍은아 (러프버러대학교 Ph.D)



영국에서
6년 넘게 생활하면서 여러 스포츠를 경험하고 관전하며 TV를 통해 간접적으로 접했습니다.
축구, 크리켓, 럭비, F 1,  락크로스, 넷볼, 농구, 스쿼시, 하키, 승마, 골프, 테니스, 육상, 사이클, 조정, 잔디 볼링, 컬링, 펜싱, 스누커심지어 다트까지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다트를 스포츠에 포함시키는 데 찬성하지 않지만 가끔씩 언론 스포츠 섹션에 당당하게 등장합니다.)  골프와 컬링은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되었고 축구를 비롯해 테니스
, 럭비, 크리켓, 하키, 탁구, 다트, 스누커, 배드민턴 등은 잉글랜드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매 년 12월이면 영국인들이 스포츠를 얼마나 사랑하고 또 스포츠인 (이 글에서는 스포츠인과 체육인을 혼용하겠습니다) 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올해도 참 기대가 많이 됩니다. 그 프로그램은 바로BBC Sport Personality of the Year 우리 말로 하면 ‘BBC올해의 체육인 상정도 되겠지요. 1954년 폴 폭스(Paul Fox)가 시작한 시상식이 매해 규모가 커지며 그 명성은 같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수상자 명단을 보면 참 화려합니다. 바비 무어(축구, 1966 수상 연도), 헨리 쿠퍼 (복싱, 1967 & 1970), 세바스챤 코우 (육상, 1500미터, 1979), 닉 팔도 (골프, 1989), 폴 게스코인 (축구, 1990), 그렉 루제스키 (테니스, 1997), 마이클 오웬 (축구, 1998), 데이비드 베컴 (축구, 2001), 폴라 라디클리프 (마라톤, 2002), 조니 윌킨슨 (럭비, 2003), 켈리 홈스 (육상, 800미터/1500미터, 2004 ), 안드류 필린토프 (2005, 크리켓), 자라 필립스 (승마, 2006), 크리스 호이 (2008, 사이클), 라이언 긱스 (2009, 축구)에 이어 작년 수상한  토니 맥코이 (경마, 2010) 까지.. 축구 선수가 제일 많기는 하지만 다양한 종목의 선수들이 영국의 스포츠 역사에 흔적을 남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작년에는 1위에 경마 선수, 2위에 다트 선수, 3위에 7종 경기 선수 (제시카 에니스, 올 해 열린 대구 세계 육상 선수권에도 출전했었지요.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이 기대되는 선수입니다) 가 올랐는데요.
한국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비인기 종목들이 금은동을 싹쓸이 한 것이 되겠습니다.

            (2009년 축구선수 라이언 긱스(36)가 BBC 가 선정하는 2009년 스포츠 부문 개인상을 수상)

심사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주요 스포츠 신문, 잡지 에디터들이 회의를 해 한 해 동안 각 종목에서 맹활약했다고 생각하는 10명의 이름을 BBC에 제출하게 되고 (개인이 제출하는 것이 아니고 가디언지에서 10명 추천, 텔레그라프지에서 10명 추천 등등) BBC에서 이를 취합해  최종10명으로 후보를 압축합니다. 시상식을 2주 정도 앞두고 대국민 전화, 문자 투표가 시작되며 최종 수상자 1-3위는 시상식이 진행되는 말미에 결정이 되고 생방송으로 발표가 됩니다.
 
이 외에도 올해의 코치상,
공로상 (작년에는 데이비드 베컴이 월드컵 유치전에서 활약한 공로로 30대에 공로상을 받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올해의 팀 상, 올해의 청소년 (Young) 체육인 상, 해외 체육인 상 등 여러 분야가 있습니다. 또한 이 프로그램에서 공영 방송 BBC의 힘, 저력이 두드러져 보입니다.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를 적절히 조화시키고 스포츠와 연관되는 감동적인 소재를 끊임없이 끌어내며 작품으로 만들어 시청자에게 전달하기에 남녀노소 누구나 이 시상식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지요. 2010년 시상식에 무려 천 이백만명을 TV 앞으로 끌어 올 수 있었던 것은 다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시상식을 보면서 필자가 감동한 이유는 전 스포츠 종목을 아울러 수많은 운동 선수(현역, 은퇴한 선수), 지도자, 스포츠 방송 관계자 등이 한 공간에 모였다는 사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수상 여부에 관계 없이 참석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영광이 되는 시상식이 존재한다는 것, 동료 스포츠인의 활약에 축하를 아끼지 않는 모습 정말 아름다운 장관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스포츠 관련 여러 시상식을 직접 가보기도 했고 언론을 통해 접하기도 했지만 전 종목을 아우르는 화합과 축제의 체육인을 위한 대규모의 시상식, 공중파에 노출이 되며 전 국민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시상식은 아직 없다는 아쉬움이 뇌리 속에 강하게 남았습니다. 


이렇게 스포츠라는 큰 틀 안에서 상대를 존경하고 내 종목이 아닌 다른 종목에 관심을 가지며 교류를 하고 그 시간을 순수하게 즐기는 모습을 시청자들이 볼 수 있기에 영국에서 체육인들이 더욱 대접을 받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 종목의 선수를 보고 스토리를 접하며 시청자들은 평소 관심이 없었던 종목에 대해 하나라도 더 찾아보게 될 것이구요. 이러한 장을 제공해주는 것이 정부, 스포츠 기관, 방송사들의 역할일 것이고 축제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발전시키냐는 것은 체육인들의 의지, 노력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한국에서 현재 열리는 주요 스포츠 단체, 각 언론사별 프로종목 시상식 등을 세어보면 제법 많을 것입니다. 이제는 무분별하게 수를 늘리는 것을 지양하고 진정 역사와 권위를 자랑할 수 있고 체육인의 대축제가 될 수 있는 축제를 겸한 시상식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박지성, 김연아, 박태환, 장미란, 박찬호 선수 등 현역 선수는 물론 차범근, 김응용, 김성근, 허재, 이충희, 신진식, 방수현, 현정화, 유남규, 전병관, 유명우, 이형택, 홍수환, 선동렬 감독 등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고, 유명을 달리한 고 김화집 옹, 최동원, 장효조, 김기수, 김현준 선수 등 우리의 가슴 속에 추억과 감동을 준 그들의 흔적을 같이 새겨보는 장면, 수 십 년 동안 마이크를 잡고 스포츠 현장을 안방에 중계한 서기원 캐스터, 송재익, 임주완, 유수호 아나운서, 우리 곁을 떠난 송인득, 이명용 아나운서 등의 방송을 되돌아보는 장면, 1년에 한 번 같은 장소에 모인 체육인들이 다른 종목 선수들과 교류하고 서로의 활약을 축하해 주는 모습을 보는 것 상상만 해도 흐뭇하지 않습니까?

여기에 보이지 않은 곳에서 묵묵히 유망주들을 키우고 있는 지도자들을 찾아 공로를 인정하고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이 스포츠를 접할 수 있는 방법을 알리는 등 수많은 아이디어를 놓고 고민한다면 정말 의미 있고 후대에 물려줄 수 있는 명품 프로그램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프로그램은 매 년 12월 공중파 (한국 현실상 3사가 돌아가면서 하는 것이 한 방법일 것 같습니다) 에서 황금 시간대에 방영되어야 하겠지요. 2010년 수상자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라이언 긱스가 어렸을 때 부터BBC Sport Personality of the Year프로그램을 보면서 자라왔는데 자신이 이 상을 받게 되어 믿기 힘들다고 연신 강조하더군요. 2020년 즈음에는 대한민국 올해의 체육인 상수상자가 비슷한 소감을 밝히는 것을 상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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