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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인재육성사업 알림

한국축구, 2010에서 2014까지

    

                                                                        글: 윤영길 (한국체육대학교 사회체육학부 교수)


대한민국 축구의 마지막 퍼즐 감독 허정무의 비상

유럽 메이저 무대에서 뛰고 월드컵 출전 경험을 쌓은 대한민국 선수, 월드컵을 거치면서 지방 곳곳에 만들어진 축구장, 그리고 축구와 관련된 제도 등 다양한 축구 인프라를 갖춰 왔다. 하지만 여전히 한 가지 세계 수준을 도전해보지 못한 영역, 월드컵 경험이 있는 지도자가 있기는 하지만 월드컵에서 승리 경험이 있는 국내 지도자는 없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허정무 감독의 1승과 16강을 간절히 바래왔다. 다행히 감독 허정무가 1승과 16강을 동시에 달성했다. 대한민국 축구의 건강한 생태계 구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축구 전체가 도약하기 위해서는 선수의 경기력이 확보되어야 하고 선수의 경기력 확보를 위해서는 선수를 지도하는 지도자의 수준이 달라져야 한다. 선수의 수준이 지도자의 수준을 넘어서기란 쉽지 않다. 설령 지도자의 수준을 넘어서는 선수가 나와도 지도자가 그 선수를 바로 보지 못하면 지도자를 넘어서는 부분은 용납할 수 없는 이단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지도자를 도약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다행히 감독 허정무의 성공은 대한민국 축구 지도자로 하여금 우리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간접 경험을 제공했고 감독 허정무가 제공한 간접 경험은 장기적으로 대한민국 축구 지도자 전체를 도약시킬 계기로 작동할 것이다.

 지단이 물러난 프랑스와 박지성이 물러날 대한민국

유럽예선을 억지로 통과하고 본선 1라운드에서 처참한 결과로 물러난 프랑스를 본다. 2006년 월드컵까지 전성을 구가하던 프랑스 축구가 단시간에 이렇게 무너질 수 있음을 확인했다. 지단, 프랑스 축구에서 지단의 그늘은 너무도 컸다. 90분 동안 경기장에서 팀 전체의 속도를 조절하고 리베리나 앙리에게 적절한 타이밍에 창의적인 방법으로 기회를 만들어주고, 때로는 자신이 직접 공격을 해결하던 그 지단이 사라진 팀은 팀 분위기조차 엉망이었다. 지난 10년 동안 프랑스는 지단의 팀이었던 것이다. 물론 축구가 어느 한 선수가 팀의 경기력 전체를 결정하는 종목은 아니지만 그래도 프랑스에서 지단의 영향력은 특별했다.

박지성의 대한민국이 겹쳐졌다. 이청용이, 박주영이 그렇게 공격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 지는데는 바로 뒤에서 공간을 만들어주고 기회를 만들어주는 박지성의 역할이 크다. 사실 축구경기에서 팀에 탁월한 선수 하나 둘이 있으면 공격 과정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해 팀 전체가 안정적인 경기운영을 하게 된다. 2010월드컵은 박지성이 선수로 최고의 가량을 발휘할 수 있는 월드컵이었다. 그래서 2010년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지만 2014년까지 박지성을 고집하다 이청용을, 기성용을, 이승렬을 잃어 버려 결과적으로 2010 프랑스 같은 팀이 될지도 모른다. 2014월드컵은 이미 대한민국 대표팀에 약해지거나 사라진 박지성을 젊은 선수들이 어떻게 보완하게 하느냐의 과제를 부여했다. 
  

해가지면 아침이 오고


안정환, 이운재, 김남일, 이동국,..... 축구팬을 설레게 하는 이름이었다. 이제 더 이상 그 이름은 운동장에서 사람들을 설레게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김남일과 이동국의 짧은 등장으로 이전 세대들은 축구팬에게 작별을 고했다. 아마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축구의 과거를 추억할 때 가끔씩 등장하게 될 것이다. 스포츠는 뒷모습이 특별히 초라한 분야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선수는 어린 누군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자리를 내주곤 한다. 시간의 흐름에서 자유로운 선수는 없다.
 
이제 그 자리를 이청용이, 기성용이, 정성룡이 대신할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선배에게는 잔인한 일이지만 선배의 자리를 어떤 후배인가가 치고 올라오고, 그렇게 선배의 자리를 치고 올라왔던 후배들은 또 언젠가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주게 될 것이다. 그 것이 스포츠의 속성이다. 언제나 영원히 최고의 자리에 머무를 수는 없다. 다만 최고의 자리에서 대한민국 축구의 도약을 이끌었던 이들을 기억해주어야 한다. 이청용은 박지성을 보고 자랐고 박지성은 안정환을 보고 자랐다. 후배에게 자리를 내주는 선배들은 그렇게 다음 세대의 양분이 되어 왔다.

현재를 기준으로 과거를 판단하거나 미래를 예단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월드컵에서 뛰지 못한 노장 선수들이 있어 대한민국 축구가 성장했고, 한 경기도 들어가지 못한 어린 선수가 있어 대한민국 축구가 성장할 것이다. 대한민국 축구에 있어 모두 소중한 존재들이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본다


축구를 이야기 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이 1986년 월드컵부터 2010월드컵까지 7회 연속 월드컵에 출전하고 있다고 자랑스러워한다. 7회 연속 월드컵 진출이 자랑이 될수록 개인적으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커진다. FIFA, JFA 등에서는 매 월드컵 마다 기술보고서나 월드컵 백서 등을 발간해 월드컵의 총체적인 기록을 남기고 있다. 하지만 KFA에서는 월드컵 이후 월드컵 기록을 공식적으로 남기지 않아 축구계의 자산이 될 소중한 경험 자원을 방치해왔다. 대회 기록은 월드컵뿐만 아니라 올림픽에서도 올림픽 준비와 출전 등의 기록을 보고서로 남기는 NOC는 경험을 통해 배우고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사실 2010월드컵을 통해 공인구의 변화가 초래하는 엄청난 결과를 확인했다. 어쩌면 독일이 선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자블라니 적응 정도에 있는지도 모른다. 공인구를 개발하면서 독일 선수들은 지속적으로 공에 대한 내성을 키웠을 테고 그 내성이 다른 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볼 컨트롤이 좋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극단적인 가정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작아 보이는 변화도 그간 공인구의 변화를 관찰했다면 예측 가능했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았지만 우리에게는 과거에 무엇이 어떠했는지 기억만 있을 뿐이지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대회를 준비했던 과정, 시간에 따른 선수들의 변화, 경기 상황에서의 경험, 대회가 남긴 교훈 등 실로 방대한 경험 지식을 고스란히 사장시켜 버린 현실이 너무도 안타깝다. 
   
이 월드컵을 시작으로 2010 대한민국 월드컵 백서의 제작을 신중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월드컵 준비와 출전, 그리고 무형의 경험을 축구계 구성원이 공유한다면 엔트리 23명의 경험은 대한민국 축구선수 모두의 경험으로 확장될 것이다.
   

그래도 4년이 있다


월드컵이 끝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잠잠해진다. 붉은 물결이 일던 시청의, 강남의 바다는 바다였던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 붉은 악마는 다시 사람들로 돌아와 K리그, N리그는 뭐하는 리그인지 관심조차 없다. 야구장으로, 게임으로, 영화관으로 그렇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월드컵은 4년마다 여름밤 몇 일간 일어나는 마법이다. 마법이 풀리면 사람들은 다시 제자리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돌아온다. 그래도 다행이다. 대한민국 대표팀이 매번 월드컵에 출전하고 있어서 4년에 한번이라도 마법을 즐길 수 있어서 말이다. 영원히 대한민국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할 것이라고 낙관하지는 말자. 일본, 호주, 중국, 중동이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위협을 가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제 대한민국도 월드컵에서 16강에 올랐다는 생각을 한다. 개최국 특수 상황이 아니라 본선 진출국으로 정당하게 16강에 올랐다. 이 월드컵은 2002월드컵을 계기로 우리가 유럽 공포에서 벗어난 것처럼 남미 공포에서 벗어나는 계기의 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 아르헨티나의 대패를 보면서, 우루과이와 아쉬운 16강 경험을 통해 남미 축구도 별 것 아니라는 확신이 대한민국 축구선수의 유전자에 각인될 기회였다.


epilogue

2014년 월드컵 지역예선을 시작하면 또 말이 많을 것이다. 조금 이루게 되면 덜 열심히 하고 덜 최선을 다하게 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대한민국 선수들 역시 지역예선에서 덜 최선을 다하고 덜 열심히 할 것이다. 그냥 두자. 지칠 때는 쉬어가는 것도 방법이다. 그렇게 지역예선을 통과하는 것은 대한민국 축구가 지극히 건강하다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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