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윤영길(한국체육대학교 사회체육학부 교수)
2010월드컵, 드디어 대한민국의 1라운드가 시작된다. 대한민국이 반드시 이겨야 할 상대로 여기고 있는
그리스와의 경기다. 하지만 그리스 역시 그리 녹록한 팀은 아니다. 2002년 월드컵의 황홀한 기억이 대한
민국의 축구에 각인되어 있다면, 그리스 축구에는 유로2004의 찬란한 기억이 각인되어 있다.
양 팀 모두 과거의 화려한 시간을 추억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2010년이고 경기는 남아공에서 진행된다.
양 팀에게 월드컵과 유로대회의 아름다운 과거는 기억일 뿐이고 이제 누군가는 이겨야하는 상대로
맞서게 되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스포츠는 제도화된 규칙에 따른 경쟁 활동이다. 경쟁은 제한된 가치를
나눈다는 의미가 아니라 제한된 가치를 더 많이 갖기 위해 겨루는 상태이다. 경쟁의 본질을 감안한다면
스포츠의 의의는 참가가 아니다.
첫 경기의 함정
월드컵에서 첫 경기만 잘 풀어 가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한다. 그리고 첫 경기는
내가 응원하는 팀만 어려워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첫 경기에 기원을 담는다. 하지만 월드컵 본선의 경기
방식을 보면 첫 경기가 왜 모든 팀에게 어려운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월드컵은 1라운드 조별 리그를
거쳐 각 조의 1, 2위가 16팀이 2라운드 토너먼트 방식으로 대회가 진행된다. 그래서 1라운드에 탈락하
더라도 최소 3경기를 하게 되고 16강에 올라 결승까지 가면 최대 4경기를 더 치르게 된다. 그래서 경기
를 많이 하는 팀은 최대 7경기를 치르게 된다.
경기 수를 더해 가면 각 팀의 경기력에는 진화가 일어난다. 팀의 조직이 만들어지면서 전술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조별리그 2차전은 1차전 경기보다 나아지고, 조별리그 3차전은 2차전 보다 나아지고,
16강에 오르면 조별리그 3차전보다 경기력이 나아지고, 8강 역시 16강보다 나아진다. 하지만 딱 거기
8강까지이다. 4강에 오른 팀은 한결 같이 조별 라운드와 16강, 8강을 거치면서 누적된 피로와 부상
등으로 이미 상당한 수준의 상처를 입은 상태가 된다. 결승전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다.
결국 첫 경기가 어려운 이유는 모든 팀이 공통적으로 겪는 전술적 어려움의 다른 모습이다. 또한 전술
적인 미숙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는 축구선수는 물론 지도자, 팬들에게까지 첫 경기는 어렵다는 등식을
성립시켜 첫 경기는 어려운 경기라는 자기충족예언을 하게 한다. 그래서 실제로 첫 경기를 어렵게 하고
첫 경기의 어려움이 미신적으로 강화되어 종국에는 첫 경기 징크스를 만든다. 그래서 첫 경기는 계속
어렵고,...... 첫 경기 징크스가 있는 것이 아니라 첫 경기는 원래 어렵다. 첫 경기 후 2차전, 3차전, 16강,
8강 점점 쉬어지는 것이 월드컵 경기의 구조이다.
조용형 뛰어?
조용형이 몸이 불편하단다. 중앙수비수가 제 컨디션이 아니어서 큰일이라고 난리가 났다. 2002년 벤치
를 지키던 지단을 기억한다. 축구는 그런 종목이다. 23명의 월드컵 엔트리에서 부상이 있고 부상으로
제 컨디션을 발휘하지 못하는 선수가 반드시 나오는 것이 정상이다. 선수가 자신의 선수 경력 기간
동안 신체적, 심리적 문제로 제 컨디션이 아닌 기간이 전체 선수 생활의 약 17%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매일 엔트리 23명의 17%인 4명 정도는 확률적으로 완전한 컨디션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조용형이 컨디션이 나쁜 날도 있고, 박지성이 컨디션이 좋지 않는 날도 있고, 허정무 감독이 컨디션이
좋지 않는 날도 있을 것이다.
모든 선수가 최상의 컨디션으로 매 경기에 준비된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엄연한 현실이다. 대한민국
에서 가장 필요한 선수가 제 컨디션이 아닐 수도 있고, 대한민국 상대팀에서 가장 필요한 선수가 정상
컨디션이 아닌 날도 반드시 있다. 따라서 누군가는 대회 기간 동안 불편한 몸을 호소할 것이고,
누군가는 불편이 지나쳐 출전 자체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선수의 출전 여부에 일희일비하지 말자.
누군가는 뛸 수 있겠지만 누군가는 뛸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래서 FIFA에 제출하는 월드컵 엔트리는
23명이다.
운재-정환-동국 : 청용-성용-승렬
2004년, 2008년 올림픽에 출전했던 내 지도학생이 있다. 2004년에는 배운다는 마음으로, 2008년에는
마지막으로 내 경력을 평가받는다는 마음으로 올림픽에 출전했다고 한다. 뜨는 해가 있으면 지는
해가 있다. 2010월드컵이 마지막 월드컵인 선수도 있고, 같은 월드컵이 시작인 선수도 있다. 이운재와
안정환은 지난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수로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켜왔다. 이제는 찬찬히
월드컵의 세상에서 자신이 이룬 성과를 차분하게 후배들에게 전수하고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야 하는
전수자들이다. 이들에게는 1998년 월드컵과, 2002년의 경험이 있고, 2006월드컵 승리의 경험도 있다.
이 경험을 어떻게 후배들에게 전수할 것인가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2010월드컵에 출전한 경험이
많은 선수의 소명이다. 이제 화려한 기억을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아름답게 퇴장하는 모습을 보여줄
월드컵이다. 그 숙제를 이대회에서 풀어갈 때 우리는 환호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형들에 억압되었던 축구 본능을 깨워 경기에 투입해야하는 선수도 있다. 2010월드컵이
첫 출전인 이청용, 기성용, 이승렬, 김보경 같은 젊은 선수들은 2010년을 뛰면서 2014년을 꿈꾸어야
할 것이다. 어린 선수들은 까마득히 멀어만 보이던 대표팀 선배 선수들과 같은 팀, 그 것도 월드컵 팀에
함께 뛰고 있는 스스로를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자랑스러움이 자랑스러움으로 끝나서는
곤란하다. 2014년 팀의 주축으로 서기 위해 자신은 무엇을 얻고 무엇을 개선시켜야 하는지 경기장에서
느끼고 벤치에서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젊은 선수가 잘할 때도 그렇지만, 실수나 실패를
통해 무엇인가를 배우고 깨달을 때도 박수치고 격려해야 한다.
월드컵에서 승리는 무슨 의미일까? 단순히 점수 차이의 승패 문제가 아니라 선수들이 무엇을 얼마나
배우는지의 문제는 다음 세대를 위해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2010월드컵 첫 경기에서의 승리는
승리라는 과거의 기록만을 남기겠지만, 2010월드컵 첫 경기를 통해 배운 경험은 대한민국 축구선수의
집단무의식 속에 경기력으로 각인되어 미래까지 유전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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