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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둥지 기자단

루틴과 징크스, 징크스와 루틴

루틴과 징크스, 징크스와 루틴


글 / 김예은 (고려대학교 국제스포츠학, 심리학)

 

(출처: Australian Open TV)

 

  남자 프로 테니스협회(ATP) 세계 랭킹 1위인 라파엘 나달은 항상 서브를 넣기 직전에 몇 가지 행동들을 한다. 먼저 서브를 넣기 전 왼손 라켓으로 공을 약 11번 바운드한다. 이때 동시에 오른손으로는 엉덩이에 낀 바지와 양옆 어깨에 달라붙은 옷을 손으로 잡아당긴다. 그리고 자신의 코를 한번 만지고 왼쪽 머리를 넘기고, 다시 한 번 코를 만진 후 반대쪽 머리를 넘긴다. 마지막으로 오른손으로 공을 약 5번 정도 바운드 한 후에 서브를 넣는다. 나달은 경기를 치르는 동안 앞서 소개한 행동들을 서브 직전에 항상 오차 없이 순서대로 행하기 때문에 이를 지켜보는 것도 또 하나의 묘미거리이다.

 

  프 황제 타이거 우즈도 또한 티샷을 하기 직전에 몇 가지 동작을 한다. 우즈는 티샷 전에 목표 타깃을 바라보며 빈 스윙을 2번 한다. 그리고 뒤로 물러서서 클럽을 땅에 한 번 툭 떨어뜨리고 앞으로 다가가 어드레스를 취한다. 그리고는 클럽을 가볍게 좌우로 흔들며 긴장을 풀어주는 왜글(waggle) 동작을 두 번 한다. 마지막으로 타깃을 한 번 더 바라본 뒤 왜글 동작을 한 번 더 하고 스윙을 한다.

 

  계적인 선수들의 사례들을 보면 왜 경기 시작 후 선수들이 바로 기술적인 행동을 하지 않고, 일부러 시간을 들이면서까지 늘 일정한 행동을 하는 것일까?’ 혹은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바로 경기에 임하여 빨리 승리를 거머쥐면 더 좋을 수도 있지 아닐까?’등의 의문이 자연스럽게 들 것이다. 하지만 경기 결과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훌륭한 결과가 있기 위한 그 과정들을 살펴보는 것이다. 수행 직전의 과정을 잘 살펴보면 경기력에 있어서 선수의 기술적, 체력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이와 더불어 또 중요한 한 가지가 남아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심리적인 요소이다.

 

  수들이 수행을 하기 전에 보이는 행동들은 바로 루틴(routine)’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Weingberg 등에 따르면 스포츠 상황에서 루틴이란 선수들이 최상의 운동수행을 발휘하는데 필요한 이상적 상태를 갖추기 위한 자신만의 고유한 동작이나 절차를 말한다. 루틴의 종류에는 경기 전 루틴과 수행 전 루틴으로 나눌 수 있는데, 보통 일반적으로 루틴이라고 하면 수행 전 루틴을 일컫는다. 서브나 티샷을 하기 직전에 행하는 일관적이고 순차적인 행동들이 이에 해당된다이러한 루틴은 불안을 감소시켜주고, 집중력을 증대시켜 줌으로써 일관된 수행을 할 수 있도록 돕는 효과가 있다. 루틴의 역할을 좀 더 살펴보자면, 루틴은 운동 수행과 무관한 것들을 차단시켜준다. 그리고 다음 수행에 필요한 과정을 상기시켜주는 촉진제와 같은 역할을 함으로써 다음 상황에 대한 친근감을 제공해준다. 마지막으로 루틴은 일관된 수행에 도움을 주어 선수에게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출처) Getty Images

 

  시 또 나달의 다른 사례를 살펴보자. 나달은 수행 전 루틴 이외에도 항상 일관되게 보이는 행동들이 몇 가지 있다. 예를 들어, 경기 전 이동 중엔 코트 라인을 절대 밟지 않고 항상 오른쪽 발을 먼저 디디면서 선을 넘어 다닌다. 그리고 심지어 물과 음료수를 마신 후 항상 상표를 특정 방향 쪽으로 향하도록 정성스럽게 정렬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한다. 마이애미 오픈 단식 2회전에서는 나달이 서브를 넣으려다가 자신의 물병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서브 동작을 잠시 멈추고 볼키즈에게 물병을 제자리에 똑바로 놓아달라고 부탁을 하는 상황까지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은 흔히 징크스(Jinx)라고 불린다. 징크스의 유래 중 하나는 William Lingard'Captine Jinks of the Horse Marines'라는 노래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이 노래의 내용은 훈련을 나간 기병 대장 징크스가 나팔소리 때문에 병이 나고 또 말에 오르는데 모자가 발판에 떨어지는 등의 불길한 일들이 계속 생긴다는 내용이다. 다시 말해, 징크스란 우연히 경험한 상황에 대해서 강력한 인과 관계적 믿음을 가지고 집착적인 행동을 보이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지만 가끔 스포츠 경기를 보면 선수의 반복적인 행동들이 징크스에 비롯되어 나타나는 행동인지 혹은 경기를 위한 루틴인지 다소 헷갈릴 때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 이 두 가지 개념을 혼동하여 사용하곤 한다. 몇몇 매체에서는 선수들의 루틴을 징크스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반대로 선수들의 징크스를 피하기 위한 행동을 루틴이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루틴과 징크스, 징크스와 루틴이 둘 사이의 경계에 대해서 무엇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또한 그 차이는 무엇일지 살펴보자.

 

  포츠심리학자 김용세 등에 따르면 우선 루틴과 징크스는 둘 다 습관화된 동작 또는 절차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공통점으로 인하여 루틴과 징크스를 표면적으로 확실히 구분하는 것이 힘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표면적으로 유사해보이지만 이 둘의 개념적 특징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몇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먼저 징크스는 부정적인 결과를 피하기 위한 사고와 행동이다. 이와 반대로 루틴은 최상의 수행을 위한 인지적, 행동적 전략을 의미한다. 또한 징크스는 경기에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지만 선수 본인의 주관적인 사고에 의한 인과 관계적 연관성을 가진다. 반면에 루틴은 경기에 필요한 기술 수행에 있어서 이와 관련 없는 잡념이나 행동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간혹 징크스는 그것을 지킴으로써 본인의 심리적인 안정에 도움을 줄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과도해진다면 본인에게 장기간 동안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인과 관계가 없는 상황에 대해서 과도한 집착을 하게 되면 이것은 경기 과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며, 이것이 그대로 경기 결과로 이어진다. 징크스에 대한 개념과 그 특징을 잘 파악하면 자신에게 해가 되는 징크스는 놓아 줄 수 있게 될 가능성이 크다. 대신 징크스의 빈자리를 자신만의 적절한 루틴으로 채워놓는다면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올US오픈 테니스 대회에서는 서브를 25초 이내에 넣어야 하는 샷 클락제도가 도입될 예정이다. 이는 경기에서 포인트가 나온 뒤 시간 소요를 최대한 줄이려고 하는 취지에서 나온 제도이다. 테니스 경기뿐만 아니라 야구나 골프 경기 등에서도 경기 시간 단축을 위해서 이와 비슷한 제도가 있다. 이는 자신만의 루틴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같이 경기를 하는 다른 선수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범위 내에서 지키는 태도 또한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스포츠 상황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건강하고 현명한 자신만의 루틴을 만든다면 루틴이 주는 이점들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