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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

세계 스피드스케이팅, '파란색이 다른 색깔보다 빠르다'는 색깔론이 등장하는 이유

글 / 김학수

 

 

한국의 이상화, 노르웨이의 하버드 홈메요르드, 독일의 모리츠 가이스라이터(왼쪽으로부터). 뉴욕타임스 제공

 

 

  “ 동계올림픽 시즌마다 모두가 숨겨진 보석을 찾고 있습니다. 올 시즌은 파란색 유니폼입니다.”
  세계빙상 강국 네덜란드의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간판스타 다이 다이 탭의 말이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서 강력한 금메달 후보로 예상되고 있는 그는 “승리가 가장 큰 목표이기 때문에 파란색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하는 것이 유리하다면 전통적인 오렌지색 유니폼을 입는 네덜란드도 변화를 고려해 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올 동계시즌 난데없이 ‘파란색 유니폼’ 논란이 뜨겁다. 지난 12월 12일자 미국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은 “파란색이 가장 빠른 색”이라며 한국, 노르웨이, 네덜란드 등 스피드스케이팅 강국의 선수들 사이에서 파란색 유니폼 입기가 유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을 두 달여 앞두고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은 아니지만 파란색 유니폼을 입으면 빠른 스피드를 내기가 유리하다는 믿음이 메달이 유력한 일부 국가 선수들 사이에서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노르웨이 스타방게르에서 벌어진 올 시즌 첫 월드컵 대회에서 한국의 이상화를 비롯해 노르웨이, 독일 선수 등 톱랭커들이 파란색 유니폼을 입고 출전, 스피드스케이팅 팬들과 다른 경쟁 선수들의 주목을 끌었다. 그동안 한국 선수들은 전통적으로 파란색 유니폼을 입었지만, 노르웨이, 독일 선수들은 다른 색 유니폼을 착용했다.


  오랫동안 붉은색 유니폼을 입었던 노르웨이 선수들이 파란색으로 바꾼 것은 충격이었다. 역대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에서 네덜란드(금 105개)에 이어 금 80개를 획득해 종합 2위를 유지하고 있는 세계적 강국 노르웨이가 국가대표 유니폼 색깔을 바꿨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는 미국 메이저리그 최강 뉴욕양키스가 전통적인 줄무늬 유니폼을 물방울 유니폼으로 교체한 것과 같은 ‘이변’이라고 전했다.


  네덜란드의 스프린터 하인 오터스피어는 “노르웨이 선수들의 전통적인 색깔은 빨간색이었다. 사람들은 현재 파란색이 다른 색보다 더 빠르다고 말하고 있다”며 “약간 이상한 이론같지만 그들은 이것을 시험해 보고, 결과적으로 붉은 색보다 파란 색이 더 낫다는 결론을 얻었을 것이다”고 밝혔다.

 

  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는 1만m 경주를 벌이고, 단거리에서는 100 분의 1 초 단위로 금메달 색깔이 결정된다. 세계 각국은 스케이트 날과 부츠를 연결하는 경첩의 구성에서부터 유니폼 후드의 공기 역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가능한 과학적 이점을 확보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경쟁을 벌인다. 새로운 장비가 나오면 여러 번의 테스트를 거쳐 실전에 투입한다. 지난 2014 소치동계올림픽에선 미국 항공기 제조사 록히드 마틴이 경기용 슈트를 개발, 미국 선수들에게 착용토록 했고, 언더웨어업체 언더아머는 울퉁불퉁한 소재의 유니폼을 선보이기도 했다.


  파란색이 더 빠르다는 새로운 개념에 대해 선수들 사이에선 찬반이 엇갈리고 있는 모양이다. 일부 선수들은 전혀 터무니없다고 반발하고, 많은 선수들은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노르웨이 스케이터 헤지 보코는 지난 달 새로운 파란색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가진 뒤 “빨간색때보다 더 빠른 것 같다. 나도 파란색 유니폼의 효과를 믿는다”며 “단정적이지는 않지만 파란색이 더 유리하다. 한국과 독일 선수들도 파란색을 입는 것이 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밝혔다.


  색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하는 전문가들도 파란색 논란에 확증적으로 유리하다고 밝히지는 않지만 심리적인 효과는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미국 노스캐로라이나주립대 렌조 새미 교수는 “동일한 성질을 가진 유니폼이 색깔에 따라 다른 공기역학 반응을 일으킬 지 여부는 상상하기가 어렵다”며 “하지만 파란색이 더 빠르다는 이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기도 결코 쉽지 않다”며 심리적인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을 가능성을 얘기했다.


  영국 리즈대학교 색과학 교수 스티븐 웨스트랜드는 “색깔과 유니폼의 물리학 사이에는 연관성이 불분명하지만 많은 연구 결과는 색이 심리적 관점에서 성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미국팀 정비기술자이며 전 스키대표선수였던 크리스 니드햄은 수년 전 미국 뉴욕 레이크플래시드 올림픽훈련센터에서 한 스키선수에게 “왜 많은 스키 선수들이 오렌지 색 유니폼을 입느냐?”고 물었다. 선수의 대답은 간단했다. “오렌지 색이 더 잘 날으니까”였다.


  백분의 1초, 간발의 차이로 승부가 갈라지는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강력한 경쟁 상대들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색깔을 입고 좋은 경기력을 발휘한다면 심리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에서 한국의 이상화를 비롯해 홈링크의 선수들이 파란색을 입고 금메달에 자신감을 내비친 것이 독일, 노르웨이는 물론 네덜란드 등 한국의 경쟁 선수들에게도 심리적으로 적지않은 부담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