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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

역사속으로 저문 태릉선수촌과 민관식

글 / 김학수

 

 

  태릉선수촌 선수회관 앞에는 민관식 전 대한체육회장(1981~2006)의 흉상이 서 있다. 2007년 1월 세워진 흉상은 체육발전에 공이 큰 고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대한체육회장을 지낸 고인의 최대 역작은 지난 1966년 개촌한 태릉선수촌이었다. 세계 스포츠에서 변방에 속했던 대한민국 스포츠가 세계 스포츠 10대 강국 대열에 오를 수 있을 정도로 국력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태릉선수촌의 역할이 큰 힘이 됐다.

 

 

 태릉선수촌에 세운 민관식 전 대한체육회장 흉상 (사진 = newsis)

 


  반세기 동안 국가대표 메달의 산실 역할을 했던 태릉선수촌은 역사 속으로 이름을 남기고 새로 개촌한 진천선수촌으로 국가대표 훈련장의 임무를 넘겨줬다. 생전에 대한민국 스포츠의 발전에 온 몸을 불사르며 ‘영원한 대한체육회장’으로 불리기를 좋아했던 그는 흉상으로나마 태릉선수촌이 국가대표 훈련장으로서 반세기의 역사를 성공리에 마감하는 것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듯하다.


  스포츠 기자를 할 때 생전의 그를 1990년대 중반 딱 한번 만나 만찬을 가진 적이 있었다. 평소 친하게 지냈던 김동건 아나운서의 고등학교(경기고 전신 경성고보) 선배인 그를 보면서 보통 사람과 다른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70대 중반의 나이에도 팔뚝 두께가 웬만한 젊은이 못지않게 두꺼웠으며 술실력도 만만치 않았다. 정치인, 교육자보다는 한국 스포츠 근대화의 초석을 다진 체육인의 풍모를 느낄 수 있었다. 테니스를 즐기고 걷기 운동도 많이 하며 강골 체력을 다진 그는 활달한 성격으로 와인을 따라주며 “술도 잘 마셔야하고, 일도 잘해야 한다”며 격려해 주었다. 여러 체육 행사 등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여러 번 만난 적은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때 만남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태릉선수촌을 만든 것은 기적같은 일이었다. 선수촌 계획부터 부지선정, 공사 등 어느 하나 쉬운 일이 없었지만 그는 불가능한 일을 무서운 추진력으로 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선수촌 계획이 구상됐던 1965년만해도 대한민국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 국제스포츠대회에 참가하는 나라치고는 아주 작은 국가였다. 박정희 대통령의 군사혁명으로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던 당시 모든 것이 빈약했다. 스포츠서도 제반 여건이 갖춰져 있지않았으며 가진 것이라고는 선수 자원뿐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대한체육회장으로서 그의 개인적 능력을 신뢰해 체육 입국에 대한 전권을 맡겼다. 1964년 도쿄올림픽에 한국선수단장으로 다녀온 그는 일본과 미국 등 선진체육을 직접 보고 ‘선체력 후기술’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국가대표 전용 훈련장 건설 계획을 세워 대통령을 찾아갔다. 체육을 통해 국력의 성장을 도모하려 한 박정희 대통령이 문화재관리국 소유의 태릉에 선수촌을 건립하겠다는 그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선수촌 공사는 본격화됐다. 태릉부지 9천7백여평에 3천3백만원의 공사비를 들여 공사 개시 1년만인 1966년 6월 태릉선수촌은 개촌을 하게 됐다.


  원래 대한민국 스포츠 정책은 소련, 동독 등 사회주의 국가들이 스포츠에서 월등한 성적을 올리는 방식을 차용했다. 국가가 주도해 스포츠에 적극적인 투자와 지원을 해 스포츠 경기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방법이었다. 특히 당시는 북한과의 국력 경쟁에서 뒤지고 있었고, 스포츠마저도 열세를 면치 못했던 상황이었던만큼 스포츠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것은 국가적인 과제였다. 태릉선수촌도 이러한 정책의 결과물이었다.


  태릉선수촌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해방이후 첫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레슬링의 양정모(1976년 몬트리올 하계올림픽)부터 피겨여왕 김연아(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등 숱한 금메달리스트이 피와 땀, 눈물을 흘리며 금메달을 만드는 영광의 훈련장이 됐으며, 한국스포츠가 1984년 LA 올림픽부터 최근까지 세계 10대 스포츠 강국으로 자리를 잡는 데 큰 힘이 됐다.


  역대 대통령들은 각종 국제스포츠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국민적인 자부심과 애국심을 불러 일으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태릉선수촌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3공화국 시대 박정희 대통령에 이어 5공화국의 전두환 대통령은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있을 때마다 태릉선수촌을 방문, 선수들을 격려했으며, 최근까지 여러 대통령들이 대표선수들의 훈련을 챙기며 수시로 태릉선수촌을 찾았다.


  일본과 미국 등 선진국 들은 태릉선수촌의 성공 비결을 캐기 위해 직접 관계자들을 보내 견학하기도 하고 자국에 태릉선수촌과 같은 국가대표 전용훈련장을 세우기도 했다. 태릉선수촌이 국제적으로도 성공모델로 인정을 받았던 것이다.


  시대적 필요성과 민관식이라는 스포츠 선각자에 의해 탄생된 태릉선수촌 신화는 이제 역사속으로 남게됐다. 대한체육회는 태릉선수촌의 상징성을 역사 속으로 남기기 위해 문화재 유산 등록 등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태릉선수촌과 태릉선수촌을 만든 민관식 회장은 수많은 영광의 드라마를 연출하며 한국스포츠 역사 속에 중요한 한 페이지로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