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학수
골이 터지면, 그 뒤를 바로 이어서 TV와 라디오 스포츠 캐스터들이 해설자와 함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구동성으로 박진감 넘친 환호성을 지른다. “고올~~~~~~~”. 거의 30초간씩 2번 ‘골노래’를 선사한다. 골 맛을 본 관중들도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했으며, 시청자나 청취자들도 캐스터들이 전하는 골 세리모니에 흠뻑 빠져들어 가는 것 같았다.
필자가 수십년전 스포츠 취재기자로 활동했던 때, 스페인어권 국가로 출장을 가면 축구경기장에서 스페인어를 잘 알아듣지는 못하면서도 골잔치때의 인상적인 캐스터들의 흥분에 넘친 소리는 잘 들을 수 있었다. 이같은 모습은 당시 국내와는 아주 달라 흥미롭게 지켜봤었다.
국내서는 골이 들어가더라도 스페인 방송인들보다는 그렇게 요란하게 떠들지는 않았다. “골”이라며 잠깐 목소리를 한 템포 올리고 해설자와 함께 골장면을 설명하는게 일반적이었다.
스페인어권 국가들에서는 축구에서뿐 아니라 배구, 야구 등에서도 극적인 순간에는 주의를 끌기 위해 캐스터들이 열정적인 목소리로 ‘강조 화법’을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배구에서 통쾌한 스파이크가 터지면, “스파이크~~”를 몇초간 길게 늘어 뽑기도 하고, “블로킹~~‘도 엿가락 늘이듯 발음하기도 한다. 야구서는 홈런이 터질 때 극적인 멘트가 등장한다. 홈런 친 타자가 1루에서 2루, 3루를 돌아 홈베이스로 올 때, ”홈런~~“을 연호하며 극적인 효과를 높인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열정적인 야구 중계로 이름을 날린 펠로 라미네즈가 2013년 LA 다저스의 쿠바출신 야시엘 푸이그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그는 최근 94세로 세상을 떠났다. (뉴욕 타임스)
지난 24일 94세를 일기로 타계한 미 프로야구 마이애미 말린스구단 라디오의 스페인어 캐스터 펠로 라미네즈는 극적인 소리효과를 잘 활용한 이로 알려져 있다. 그는 청취자에게 “여러분의 심장에 문제가 있다면 지금 당장 라디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요”라며 축구캐스터가 “골”을 길게 연발하듯 “홈런”을 계속 목소리로 흘려 보냈다. 죽기 3개월전까지 마이크를 잡았던 그는 마치 청취자들이 경기장에 있는 듯 한 느낌을 줄 정도로 실감나게 방송을 했다. 선수들이 출생이후 모든 생활을 환히 아는 것처럼 그는 일반적인 캐스터와는 다르게 선수들에 대한 모든 것을 설명하려 노력해 구단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는 많은 월드시리즈와 올스타 게임을 중계했는데, 푸에르토리코 출신으로 월드시리즈 최우수선수로 선정된 바 있던 로베르토 클레멘테의 통산 3천안타 , ‘홈런왕’ 행크 아론의 7백15호 홈런, 1956년 월드시리즈에서 퍼펙트 게임을 작성한 돈 라르센의 역사적인 순간 등을 생생한 육성으로 전해 주었다.
그는 2001년 팜비치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뉴욕 양키즈와 브루클린 다저스와의 월드시리즈경기에서 라르센이 퍼펙트 경기기록을 세웠던 것을 회고하며, “주심이 마지막 스트라이크를 선언하는 팔을 올리는 것이 눈에 선하다. 포수 요기 베라가 그에게 달려들어 점프를 할 때 조그만 소년을 보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장면을 직접 보고, 전했다. 또 순간과 함께 생활했고 궁극적으로 즐겼다”고 말했다.
스페인 스포츠캐스터들이 극적인 순간을 독특한 어법으로 부각시키는 이유는 시청자나 청취자의 관심을 유도하고 집중력을 높이려는 효과를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낙천적이고 정열적인 기질을 공통적으로 가진 스페인인이나 스페인어권 사람들은 스포츠를 즐기는 데 있어서도 공통적인 특징을 보인다. 따라서 골이 터지거나 극적인 순간에 극도의 흥분과 기쁨을 발산하며, 스포츠캐스터들은 열띤 감정을 실어 생생하게 육성으로 전달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지난 8월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TV 스포츠방송에서 소리효과의 인지적 과정’이라는 제목의 박사학위논문에서 권영성씨(서울대 뇌과학 연구소 연구원)는 “방송의 소리와 화면 등에 의해 시청자와 청취자들이 많은 영향을 받는다”며 방송중계와 수용자의 영향에 대한 연구결과에 대해 말했다.
그는 논문에서 방송 매체가 다채널, 다매체로 바뀌는 현 시점에서 ‘이용자의 만족도’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기술이 활용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포커스그룹(초점집단) 인터뷰와 설문지 방식의 기존 연구방법이 아닌 뇌공학, 뇌이미지기술, 인지심리학 방법의 새로운 연구방법을 이용해 축구 중계 골 장면에 나타나는 수용자들의 인지반응을 검증한 결과, 그는 “극적인 골 장면과 캐스터 육성이 수용자에 유의미한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앞으로 팬들과 시청자들이 모바일과 컴퓨터 스크린을 통해 다양한 스포츠 중계를 즐길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극적인 골 장면과 캐스터의 적극적인 역할은 더욱 활성화될 전망이다. 캐스터들은 새롭고 다양한 중계 기법을 선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스페인어권 방송의 원조라 할 수 있는 펠로 라미네즈는 전설로 사라졌지만, 그 뒤를 이어 “고울~~”, “홈런~~‘을 개성있고 격정적으로 외치는 캐스터들의 등장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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