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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체육이야기/[ 전문체육 ]

전쟁에서 유래한 올림픽의 꽃 마라톤 이야기 -마라톤에 숨은 엄청난 이야기(3)

 

 

글/ 윤동일 (국방부)

 

 

3. 마라톤에 숨은 엄청난 이야기

마라톤은 올림픽의 꽃 그 이상이다.
 마라톤은 쿠베르탱과 뜻을 같이 해 올림픽 제정에 참여한 한 통역자 마이클 브레알(Michel Breal)이 올림픽에 장거리 달리기 종목을 넣어보자는 제의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러나 처음엔 쿠베르탱도 42km가 넘는 장거리를 쉬지 않고 달리는 것 자체가 인간의 한계를 극복해야하기 때문에 반대했었다고 전한다.


  유전적으로 심장이 큰 경우도 있겠지만 마라톤 선수들의 심장은 일반인에 비교해 매우 다르다. 크기는 일반인에 비해 1.5배 이상(심장의 좌우 직경은 일반인이 평균 10cm내외인 반면, 마라톤 선수들의 심장은 평균 16cm에 이른다.) 큰 편이지만, 심장 박동수는 일반인의 절반(일반인 심장 박동은 분당 70회 정도이나 마라토너들은 분당 40회로 황영조 선수의 경우는 분당 38회였다고 한다.) 수준에 불과하다. 의학계에서는 마라톤 선수들처럼 강한 심장을 부를 때 ‘스포츠 심장(Athletic Heart)’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선천적으로 강한 심장을 물려받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개는 후천적인 훈련과 노력에 의해 마라톤에 특화된 신체구조와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신체도 바뀔 정도로 초인간적인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마라톤이 기원에서부터 가장 올림픽의 정신을 대변하는 경기로 인식되었고, 소위 ‘올림픽의 꽃’이란 별명도 얻게 된 것이다. 인간으로서 한계에 대해 도전하고 그 열정을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가장 큰 감동을 전하는 마라톤 경기를 올림픽의 모든 경기 가운데 가장 마지막 순간에 진행하는 것도 후천적으로 피나는 노력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는 초인간의 경지를 달성해야하기 때문이다. 약간의 상상력을 보탠다면 앞서 언급했던 고대 올림픽에서도 전투복장을 착용하고 무기를 휴대한 채로 달리는 경기(무장달리기)도 역시 가장 마지막 순서에 진행했던 것과 연장선에서 이해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며 마지막 결승점을 통과하면서 느끼는 성취감 또한 신에게 자신을 바치는 의미에서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은 신과 동일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또한 역사적 관점에서 주목하는 것은 마라톤이 앞서 소개한 아테네의 밀티아데스와 5천 결사대의 승리는 단순한 스포츠 경기 이상의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는 점이다. 오늘날 지중해의 지리적 중요도와는 달리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에 있어 그리스의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당시 중동지역에서 이집트, 바빌로니아까지 거대 제국을 건설했던 페르시아에겐 그리 구미 당기는 곳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리우스 1세로부터 시작한 그리스 원정의 꿈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일반적으로 그리스와의 교역과 도시국가들을 접수하면서 맛 본 자유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는 점을 꼽는다. 절대군주의 권력과 힘을 가졌던 다리우스는 자신 이외의 자유인은 없었다. 왕족이 아닌 신분으로 쿠테타에 의해 세운 자신의 세계 제국에 그리스의 자유분방한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이 미칠 영향에 대해 걱정했고, 자신의 권력유지에 커다란 장애물로 인식하며 두려워했던 것이다. 때문에 전혀 아쉬울 것 없었던 대제국의 통치자는 자신의 발아래 모든 그리스 국가들을 두기를 원했던 것이다. 마치 프랑스 혁명 사상이 전파될 것을 두려워 한 열강들이 나폴레옹에 대항하여 대불동맹을 형성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런 다리우스의 염원은 마라톤의 패배로부터 시작되어 3차 원정에서도 실패했고, 결국은 제국의 멸망으로 이어졌다.

 

반면에 세계 최초로 동양과 서양의 일대 격전에서 그리스의 승리는 곧 전 세계에 그리고 인류 문명사에 있어 유럽의 시작을 알리는 첫 신호탄이 되었다. 결과론적으로 마라톤에서부터 시작하여 테르모필레로 이어진 승리는 조국 아테네와 스파르타만 지켰던 것이 아니라 유럽 전체를 외세로부터 굳건히 지켜낸 역사적 사건(영국 군사전략가 퓰러는 마라톤전투에서 그리스의 승리는 “유럽이라는 아기가 탄생하면서 낸 소리였다.”고 평가했다.)으로 유럽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후일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였던 키케로(M.T.Cicero, BC 106∼43)는 아테네의 5천 결사대와 스파르타의 300근위병들의 주검 앞에서 "조국에 충성을 다하고, 여기에 누운 위대한 전사"로 칭송하기도 했다. 이제 외침으로 조국의 국운이 풍전등화에 있었던 절체절명의 순간에 마라톤 평원에서의 승리와 아테네 5천 중장보병들의 투혼 그리고 죽기를 각오하고 달려 승전보를 전한 피디피데스의 숭고한 정신은 1896년 아테네에서 열린 제1회 하계올림픽에서 재현되었다. 비록 1천년 이상 지속된 고대 올림픽에서는 정식종목으로 거행되지는 못했지만 이제는 올림픽의 정식종목으로 전 세계인들이 어디서나 즐겨 하는 대중스포츠로 자리 잡게 되었다.


  오늘날 유럽을 잉태한 고대의 최대 사건으로 높이 추앙하는 입장에 반해 대제국의 소멸을 지켜봐야 하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참담하고 암담한 기억이 아닐 수 없다. 때문에 페르시아 국가들의 입장에서 마라톤 경기는 그리 탐탐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사라진 페르시아의 후예인 이란에서는 ‘터부’로 인식하는 오랜 전통이 있어 국가 차원에서 금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1974년 이란의 테헤란에서 열린 제7회 아시안게임에 마라톤 경기는 열리지 않았다.

 

제1회 올림픽 포스터         제1회 올림픽 경기장(그리스 파나티나이코)           제1회 올림픽의 마라톤 경기 장면

 

마라톤은 올림픽 종목 중에서 가장 고되고 힘든 종목이다. 다른 육상경기와는 다르게 경기장을 출발하여 도심지와 교외를 따라 야외에서 경기를 진행하며 다시 경기장으로 돌아와 경주를 마친다. 일단 풀코스를 완주하면 평균적으로 4kg의 체중감량이 수반되고, 경기 도중에 포기하거나 여러 가지 부상은 물론 드물게는 기절하거나 심장을 비롯한 신체에 많은 부하가 가해져 사망에 이르는 사례까지 생긴다. 또한 다른 종목과는 달리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종목이고 경기가 2시간 넘게 진행되기 때문에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엄청난 지루함을 느끼게 해준다. 보는 것도 하는 만큼이나 어지간한 근성 없이는 보는 것 자체가 괴로울 정도다. 그러나 그렇게 힘들게 뛰고 난 뒤 결승선에 들어가면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여 불굴의 의지를 갖고, 초인적인 능력과 인내를 요구하는 마라톤 경기의 특성 때문에 개인 종목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종목들에 비해 전하는 감동이 많은 종목이기도 하다. 승전보를 알리고 그 자리에 쓰러져 죽을 수밖에 없었던 한 군인의 절박함에서부터 신체적 결함과 온갖 고통을 참고 인내하며 모진 역경을 극복해낸 믿지 못할 이야기와 온 나라 아니 전 세계인을 감동시켜 눈물짓게 만든 이야기도 있으며 나라 잃은 설움과 울분을 가슴에 담고 민족의 희망을 위해 달리는 마라토너들도 있었다. 이제 마라톤 영웅들이 전하는 진한 감동의 스토리들을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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