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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체육이야기/[ 전문체육 ]

고대올림픽 종목에 대한 고찰 : 1. 육상트랙경기 - 달리기(Foot Race)

 

 

글/ 윤동일 (국방부)

 

달리기는 모두 26종목이 있는데 거리에 따라 단거리(남녀 3종목), 중거리(남녀 2종목), 장거리(남녀 2종목) 경기가 있고, 릴레이(남녀 2종목)와 허들/장애물(남녀 3종목) 그리고 마라톤(남녀 1종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혼성경기의 일부로 진행된다.

 

가. 달리기 경기 : Stadion, Diaulos, Dolichos
달리기는 모든 스포츠의 기본이 되는 종목으로 심지어 가만히 서서 하는 양궁이나 사격 선수들도 경기 시간 내내 고도의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최상의 집중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고대 올림픽 종목들의 발전 과정을 보더라도 초기에는 달리기 종목이 주류를 이루다 반세기가 지난 후에야 비로소 다른 종목들이 등장했는데 이는 스포츠의 진화적 관점에서도 달리기가 스포츠 발전의 원천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제전에서 달리기는 의식을 진행하기 위한 수단으로 일정 거리를 달려와 먼저 도착한 승자가 심판이 들고 있던 횃불을 받아 신에게 바치는 공물(供物)에 불을 붙이는 특권을 부여하는 것에서 유래하였다. 고대의 달리기 종목은 오늘날처럼 다양하지는 않았지만 경기장(스타디움 ; Stadium)을 기준으로 단거리, 중거리 그리고 장거리의 세 종목으로 구분되었다. 단거리 달리기는 스타디온(Stadion, 경기장을 의미하는 스타디움도 여기서 유래했다.)이라 부르며 191.27미터의 경기장을 한 번 달려 승부를 결정했다. 중거리에 해당하는 디아울로스(Diaulos, 현대 육상 트랙경기의 분류기준에 따르면 단거리 종목에 포함하는 것이 옳다.)는 경기장을 왕복(2 Stadia)하는 종목으로 현대의 400미터 종목과 유사하다. 가장 먼 거리를 달려야 하는 돌리코스(Dolichos)는 당시의 도시국가 간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운용했던 전령(使者)들의 장거리 달리기 능력을 배양할 목적으로 고안되었는데 폴리스가 늘어나면서 달리는 거리도 첨차 증가하여 대략 1.5km에서 최대 7km의 거리(7∼24 Stadia)를 뛰어야 했다.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행해진 시기는 종목별로 차이가 있는데 스타디온이 1회 대회(776BC)부터 꾸준히 개최되었고, 52년이 지난 14회 대회(724BC)에 디아울로스, 15회 대회(720BC)부터 돌리코스가 처음으로 선 보였다. 아래 사진은 종목별 주법을 비교해 볼 수 있는 것으로, 비교적 거리가 짧은 스타디온이나 디아울로스의 주법은 팔의 각도나 다리의 위치가 높이 올라가 있고, 상체도 앞으로 숙여 전력으로 질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반면 돌리코스는 이와 대조적으로 비교적 팔이나 허벅지의 위치도 낮고, 상체 역시 꼿꼿하게 세운 채 달리는 것으로 보아 장거리를 역주하는 경기임을 알 수 있다.(아래 사진을 비교해 보면 고대 달리기 주법이 현대의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돌리코스는 전쟁이나 천재지변과 같은 도시 공동체의 운명을 좌우하는 급한 소식을 전달하는 전령들의 장거리 달리기 능력을 연마하는 핵심 종목으로 중시했기 때문에 공동체가 커지면서 달리는 거리도 점차 늘었을 것으로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다만 전령 이외의 일반 전투원들에게도 달리기 능력은 중요했는데 이는 뒤에서 무장달리기나 마라톤에서 부연토록 하겠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미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고대 올림픽 제전에 참가하는 모든 선수들은 나체였기 때문에 장거리를 달릴 경우, 수반되는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었는데 마지막 사진에 보는 것과 같은 특단의 대책도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고대의 역주 모습(Stadion/Dolichos)   현대의 역주 모습(100미터/5,000미터)    Kynodesme*

* 키노데스메(Kynodesme) : 선수들이 달리기를 할 때, 성기를 몸에 묶어 고정시키는 끈으로 동물가죽으로 만들었다.(a leather strip binding the penis)

 

 

 

나. 릴레이/허들·장애물 경기 : Lampadedromy, Hoplitodromos
후기에 들어서는 오늘날의 계주와 유사한 ‘이어 달리기(Lampadedromy)’도 등장했는데 아래 사진처럼 ‘바통(baton)’ 대신 ‘횃불’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제전의 필수품인 횃불은 달리기 말고도, 말이 끄는 ‘전차(Chariot)’의 장식으로도 쓰였다. 이는 후일 한 스포츠 역사학자에게 영감을 주었고, 1936년에 이르러 베를린에서 개최된 올림픽 개막식에서 ‘성화 봉송(Torch Relay)’ 행사로 재현되었다.

 

고대와 현대의 이어달리기(계주) 경기 모습    1936년 베를린올림픽의 성화봉송(Torch Relay) 장면

 

달리기 종목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등장(65회 대회, 520BC)한 것은 ‘무장한 채로 달리는’ 가장 실전적인 경기인 ‘호프리토드로모스(Hoplitodromos ; Race in Armour)’가 있었다. 말 그대로 적과 싸우는 전투복장을 그대로 입은 채 달리는 경기로 무거운 투구와 간단한 전투장구류(무릎보호대 등)를 착용하고, 방패와 횃불 또는 칼을 들고 스타디온을 두 바퀴 돌았다. 초기에는 완전군장을 착용해 달리는 경기로 진행했지만 후기에 들어서는 무장을 줄여 방패만 들고 달리거나 또는 단순히 달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달리면서 전투행위를 병행함으로써 매우 흥미진진한 경기가 되었다. 이를 위해 상호 공격과 방어 행위에 있어 방해가 되는 것들은 사전에 제거했는데 비교적 거추장스런 창은 배제되고, 칼로 통일되었으며 선수들은 수염과 같은 것들 역시 거추장스러워 경기 전에 정리했다고 한다.

여기서 잠깐 군사적으로 중요한 측면 하나를 살펴보자. 호프라이트(Hoplites)는 그리스 전투대형인 팔랑스(Phalanx)의 중갑보병(重甲步兵) 즉, ‘중무장을 갖춘 보병 전투원’을 의미하는데 이들이 곧 고대 그리스군의 주력군이었기 때문에 결정적인 국면에 투입되었으며 그들의 전투결과는 전쟁의 승패와 직결되었다. 그리하여 이 경기는 전투가 끝난 후, 중장보병들이 전투복장을 풀지 않은 채로 전황을 보고했던 전쟁의 오랜 습관에서 유래하였다. 고대 도시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는 중갑보병들의 강건함이 필수적으로 요구되었던 것은 당연하다. 이를 위해 당시 올림픽 제전의 가장 마지막 피날레는 무장달리기의 차지가 되었고, 출전 선수에 대하여 그 어떤 참가자격이나 제한도 두지 않았다. 여기엔 당시 국가의 힘이 중요했던 시기에 정책적으로 올림픽 경기를 통해 신성한 병역의무를 강조하고, 유능한 전사의 발굴과 병행하여 핵심 전력인 중무장 보병의 육성에 힘썼던 것으로 보여 진다.

 

호프리토드로모스(Hoplitodromos) 경기장면과 출발을 위해 준비하는 선수의 모습  

 

왼쪽은 화기/전투장구만 착용한 채로 달리고, 오른쪽은 화기/전투장구에 추가해 전투에 필요한 모든 장비와 물자를 군장에 휴대한 채로 달리는 장면으로 단독군장구보/완정군장구보로 구분한다. 편의상‘군장구보’로 통칭한다.

 

 

오늘날 고대 무장달리기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경기는 없다. 굳이 유사한 종목을 꼽으라면 장애물(허들) 경기 정도가 고작이겠지만 군에서는 전통적으로 아래 마지막 사진처럼 전장에서 적과의 전투에 반드시 필요한 훈련으로 인식하여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훈련방법과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이와 관련하여 한 ‘고대 그리스·로마의 역사와 전쟁’ 전문가는 그의 저서에서 “고대 올림픽 경기에서는 갑옷을 입고, 또는 적어도 중갑보병의 무거운 방패를 걸치고 달리는 경기가 있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John Warry, 1967).”고 적시하고 있는데 이는 앞서 언급한 스포츠 학자들의 연구와도 맥을 같이 하고 있어 관심을 끈다. 실제로 ‘인간 기관차’로 불리는 체코의 영웅 ‘에밀 자토펙(Emil Zátopek)’은 1948년(런던)과 1952년(헬싱키)의 올림픽에서 마라톤을 포함해 1만미터와 5천미터의 장거리 세 종목을 모두 석권한 전무후무의 대기록(금메달 4개)을 수립했는데 이는 독일과 소련에 짓밟힌 조국을 구하고자 자원입대한 군(체코 육군)에서 그가 개발한 독특한 훈련방법(그는 전통적인 군사훈련인 완전군장구보를 자신의 훈련 방법으로 활용하였다.) 때문이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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