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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체육이야기/[ 전문체육 ]

기억하십니까? 베트콩 김인식의 진기록과 명기록을..

 

 

 

 

글/ 김지영(한국체육대학교 박사과정)

 

 

     인간은 역사상 최초라는 말과 최고라는 말에 귀를 기울이는 본성이 있다. 특히 역사 인식이 강한 사람들은 그런 본성이 더 강한 면이 있다. 사상 최초, 최고라는 말은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말이기 때문일 것이며, 인간 삶의 흔적은 최초와 최고에 대한 기록 그 자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인 프로야구에도 최초와 최고에 대한 많은 기록들이 늘려있지만 사람들은 주로 영광된 기록만 들춘다. 그러나 그 반대의 흔적도 역사이며, 그러한 예도 흥미를 끈다.

 

초창기 한국 프로야구에서 대표적인 영광의 기록은 헐크 이만수의 기록일 것이다. 그는 첫 홈런의 주인공이었고, 프로야구 개막 원년 타점, 안타, 홈런 3개 부문 타이틀을 동시에 거머쥔 당대의 야구계의 기린아였다. 그렇다면 프로야구 역사에서 “최초의 퇴장선수”란 불명예스러운 진기록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개인에게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이겠지만 팀의 사기를 높이고, 관중에게 흥분과 재미(?)를 선사한 한국프로야구사의 첫 퇴장선수의 흔적을 더듬어보면 숨겨진 ‘베트콩 김인식의 기록’이 들추어진다.

 

1982년 8월 26일 끝 여름의 대구 구장! 삼성라이온즈와 MBC청룡의 경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날 3­2로 앞서고 있던 삼성이 4회 말 공격에서 2점을 보태 5­2로 앞선 채 1사 1·2루 상황에서 공격을 이어가던 중이었다. 타석에 서 있던 삼성의 정현발 선수가 공을 때렸다. 공은 유격수 앞으로 날아갔으니 당연히 병살감이었다. 그 상황을 간파한 삼성의 1루 주자 배대웅은 더블플레이를 저지하기 위해 무리한 슬라이딩을 하며 발을 태권도 선수처럼 하늘을 향해 들었다. 그 순간 주자 배대웅에게 부딪힌 MBC 2루수 베트콩(김인식)은 배를 움켜잡고 그라운드에 뒹굴었고, 경기는 중단되었다. 배대웅 선수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김인식 선수에게 다가갔다.

 

 

  첫 몰수게임과 첫 퇴장의 발단이된 장면

 

그런데 김인식 선수가 벌떡 일어나 코믹한 발길질을 하다가 오른손으로 얼굴을 때리면서 양 팀 사이에 기(氣) 살리기 격전이 벌어졌다. 흔히 있을 수 있는 야구장의 풍경이었다. 숨을 죽였던 관중들은 배꼽을 잡았지만 심판들은 상황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잠시 후 김동앙 주심의 팔이 허공을 크게 한 바퀴 돌았다. ‘김인식 퇴장!’을 뜻했다. 김동앙 주심이 폭행을 가한 김인식에게 퇴장을 명했다. 그러나 함께 열을 받은 MBC의 백인천 감독은 주심의 명령에 불복하며, 그라운드의 선수들을 모조리 덕 아웃으로 불러들여 버렸다. 더 격앙된 김동앙 주심은 25분 뒤에 몰수게임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첫 퇴장과 첫 몰수게임의 기록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스포츠계에서 사건이 발생하면 이어서 열리는 것이 상벌위원회이다. 이틀 뒤 열린 상벌위원회는 MBC 청룡은 벌금 2백만원 외에 그날 입장 수입 전액을 배상하는 형벌을 받았고, 선수들을 불러들인 백인천 감독은 벌금 백만원에 5게임 출장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주심의 지나친 흥분과 냉철함을 잃은 판단에도 벌이 따랐다. 김동앙에게는 벌금 20만원과 5게임 출장 정지라는 벌이 내려졌고, 박명훈 2루심에게는 15만원 벌금과 5게임 출장정지라는 작은 형이 선고되었다. 그런데 최초의 기록을 만든 역사의 주인공(?) 김인식 선수는 벌금 10만원의 경징계로 끝났다. 출장정지는 내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로서는 이래저래 아찔한 순간이었다.

 

기록은 순간순간이 이어져 만들어지지만 한 순간의 잘못으로 공든탑이 무너질 수도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출장정지령은 피하고 받은 벌금형은 그인 인생에서 축복인 셈이었다. 그날의 게임은 MBC의 시즌 61번째 게임이었고, 만약 김인식 선수에게 출장정지가 떨어졌더라면 1987년 10월 3일까지 이어지는 6년 연속 전게임 출장과 그에 따른 606 게임 연속출장기록(프로 랭킹 3위 기록)은 역사에 사라지고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수시절 심판에게 어필하는 김인식선수

 

김인식 선수는 한국 프로야구사에서 606경기 연속 출장이라는 위대한 기록도 갖고 있지만 또 다른 최초의 기록(?)도 갖고 있다. 프로야구 1호 데드볼, 몸에 맞는 공의 기록이다. 그는 팀을 위해서는 몸을 사리지 않았다. 그의 몸은 항상 멍과 상처투성이였지만 경기가 시작되면 어김없이 2루에 서있다. 원년에는 35개의 도루를 성공시켜 도루 3위에 올에 오르기도 했다. 83년에는 114타석 무삼진과 시즌 전 경기 무병살타 기록도 세웠다. 독한 선수였던 것이다. 몸에 맞는 볼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는 84년 시즌에는 3연 타석 데드볼이라는 신기한 기록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 화려함만을 기억한다. 그러나 위대한 업적 뒤에는 수많은 민초의 힘이 숨어있고, 조명 받지 못한 감추어진 삶의 흔적들이 있게 마련이다. 김인식 선수의  쑥스러운 기록(?)은 비록 최초의 경기실적에 가려졌으나 그의 악바리 근성과 투지, 허슬플레이 등은 초창기 한국 프로야구의 토양에서 비료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8개 프로구단으로 한국 프로 스포츠 역사상 최초로 누적 관객 1억 명을 돌파한 야구의 전성시대를 맞으며, 1980년대 묻혀 있는 야구 이야기를 꺼내어보는 것은 역사는 대개 영웅들의 명기록으로 채워지지만 진기록도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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