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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체육이야기/[ 전문체육 ]

스포츠맨 정치가, 밥 마티아스의 학구열

 

 

 

 

 

글/하남길(경상대학교 교수)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산다.”라는 말이 있다. 외길 인생을 살아가라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모두에게 인생의 선택은 자유이다. “끝나기 전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야구 선수 요기 베라의 말처럼 인생은 다 살아봐야 아는 것이다. 시냇물이 굽이굽이 돌며 흐르듯 인생의 굽이마다 다양한 선택의 기회가 올 수 있고, 새로운 선택도 할 수도 있다. 씨름 스타 강호동은 연예계로 진출하여 일단은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준 셈이다. 앞으로 그러한 사례는 더 늘어날 것이다. 스포츠맨 정치인도 나와야 한다. 정치란 종합 예술과 같은 것이어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집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근 한 태권도 스타의 정계진출 과정은 표절 시비로 파열음을 내고 있지만 외국의 경우 성공사례가 많으며 밥 마티아스(Bob Mathias, 1930–2006)의 변신은 스포츠맨이 정치가가 되고자하면 어떤 자세로 운동을 해야 했는지를 보여준다.

 

 

정치가가 된 스포츠 영웅 밥 마티아스

 

마티아스는 1948년 제14회 런던 올림픽 육상에서 17세의 최연소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강한 유연성이 요구되는 체조 같은 특수 종목이라면 몰라도 육상 중에서도 가장 힘겹다는 10종 경기에서 청소년이 우승을 안았으니 모두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930년 캘리포니아의 툴라(Tulare)에서 네 자녀 중 둘째로 태어난 마티아스는 유년기부터 미식축구와 육상에 탁월한 자질을 보였다. 그는 단번에 10종 경기 미국 선수권자가 되어 올림픽 출전권을 얻었고, 만 18세가 되기 전인 1948년 런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던 것이다.

 

금메달리스트로서 미국 최고의 아마추어 선수로 선정되었던 밥 마티아스의 진군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학구적인 자세를 견지하며 육상선수에서 미식축구선수, 배우, 정치가로 변신했다. 금메달리스트가 된 이후 연습 때문에 학업성적이 나빠지자 과감하게 운동을 쉬고 펜실베이니아 기숙학교 키키스쿨로 옮겨 공부에 전념했다. 그리고 스탠포드대학으로 진학했다.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며 육상과 미식축구 선수를 겸했다. 1951년 로즈볼에서 스탠포드 대학의 풀백을 맡았다. 그리고 1952년 핀란드 헬싱키 올림픽 10종경기에 출전하여 912점을 획득, 최초의 올림픽 10종경기 연속 제패 자가 되었다. 더 큰 올림픽 영웅이 된 그는 육상 은퇴를 선언하고 1952 미식축구 선수로 활동을 재개했다.

 

1953년 스탠퍼드 대학을 졸업한 그는 미식축구 드래프트에서 워싱턴 레드스킨스의 지명을 받았으나 포기하고, 결혼을 한 그는 부부가 영화계로 나섰다. 1954년 영화 『밥 마티아스 스토리(The Bob Mathias Story)』에 출연했고, 해군 복무를 마친 이후 1960년까지 국무성 친선대사로 활동했다. 그리고 존 웨인(John Wayne)에게 고용되어 영화 『차이나 돌(China Doll)』에 출연했다. 인기를 얻은 그는 존 웨인과 함께 TV 시리즈에도 출연하며 또 다른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1966년 마티아스는 다시 변신했다. 정계를 노크한 것이다. 하원의원에 출마한 그는 14년 동안 의원직을 유지했던 거물 정치가 하겐(Harlan Hagen)을 11% 포인트 앞서며 당선되었고, 어려움 없이 재선에도 성공했다. 정계에 진출한 그가 늘 승리만 한 것은 아니었다. 1974년 그의 지역구가 변하면서 근소한 차로 크렙스(John Hans Krebs)에게 패했고, 1976 제너럴 포드 재선운동에 가담했으나 실패로 끝나며 정치 인생을 접었다. 1976년엔 이혼을 겪기도 했다. 1988년 시골 프레스노 카운티로 돌아와서 살다가 목에 생긴 종양으로 투병하다가 사망했다. 그러나 한 스포츠 영웅은 그의 생을 통해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 1998년 6월 6일 그의 고향 툴라에는 첫 금메달 획득 50주년 기념행사 "어크로스 필드 오브 골드(Across the Fields of Gold),"가 열렸고, 명사 300여명이 모여 그를 추모했다.

 

 

스포츠 영웅, 밥 마티아스가 스포츠맨에서 배우, 정치가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은 기초에 충실했기 때문이었다.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충실히 받았고, 언제나 학구적인 자세를 견지했던 것이다. 운동선수가 금메달을 따려면 기초체력이 튼튼해야 하듯이 우리의 스포츠 영웅들이 훌륭한 학자, 국제적인 스포츠 행정가, 성공적인 정치가가 되기 위해서는 기초 교육을 충실히 받아야 한다. 그럴 기회를 놓쳤다면 항상 지식을 쌓고, 덕성을 계발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허상을 감추고 스포츠 영웅으로서의 인기만 앞세워 어설픈 도전을 했다가는 “송충이는 솔잎만 먹어야한다.”는 국민의 비아냥거림을 살 것이다. 설사 한번 쯤 성공하더라도 자신과 많은 체육인들에게 상처까지 남기게 될 것이다. 스포츠 영웅이 정치에 뜻을 두려면 마티아스의 일대기라도 읽고, 고해성사를 하고, 자신의 인격 닦기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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