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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체육이야기/[ 전문체육 ]

스포츠 영웅의 인생 험로

 

 

 

글/하남길(경상대학교 교수)

 

 

      2012년 4월 총선을 전후로 공부를 하는 스포츠맨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문대성 학위 논문 표절 보도” 때문이었다. 국민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한 스포츠 영웅이 정치에 입문하는 과정에서 ‘논문 표절 시비’로 일시에 비난의 표적이 되었다. 최근에는 한 배구스타 출신에 대한 반갑지않은 보도가 스치더니 “모래판의 신사”로 불리어 온 씨름 영웅 이준희의 “사기혐의구속” 보도까지 터졌다. 국민은 스포츠 영웅의 실상과 허상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했다. 그리고 실망하며 비판했다.


한 태권도 영웅의 논문 표절 보도에 대한 세인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국민에게 희망과 꿈을 주었던 선수였는데 저 일을 어떻게 해! 안타까워….” “표절한 것조차도 잘 몰랐던 것 같아!” “열심히 공부하는 다른 선수 출신 학자들까지 도매금으로 넘어가겠네.” 별별 말이 다 들렸다. 비아냥거리는 소리도 나왔다. “운동선수가 정치하겠다고 나섰다가 저 꼴이 뭐야…”라는 식이었다. 씨름 영웅 이준희에 대한 비판도 어떤 유형일지 듣지 않아도 뻔하다. 여러 종류의 비판과 비아냥거림 중 스포츠맨들이 가장 상처를 받을 수 있는 말은 “운동선수 출신이 뭘 하겠냐?”라는 투의 말일 것이다. 도대체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하며, 모든 체육인의 자존심이 상해야 할까?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계속 터지는 것일까? 21세기 한국 스포츠맨의 자화상을 보면서 역사적 진단부터 내리고, 대안을 모색해 보아야 한다.

 

 

 

 

스포츠 영웅들의 허상을 바라보며 가장 먼저 뇌리를 스치는 것은 한국 스포츠의 역사의 단면들이다. 한국의 현대 스포츠 역사는 1936년, 올림픽 탄생 40년이 되던 해에 시작되었다. 식민지 시대의 우리 국민은 손기정의 금메달 소식에 기쁨과 설움이 뒤섞인 눈물을 흘렸다. 그로부터 다시 40년, 올림픽 탄생 80년이 되던 1976년, 태극기를 단 양정모의 첫 금메달 획득 낭보가 흑백 TV를 통해 전송되었을 때 국민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8․15광복! 6․25 동란! 어두운 역사를 딛고 전해져온 금메달 낭보는 국력 신장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우수선수 한 명은 외교관 수십 명의 역할을 했다. 역대 메달리스트들은 대한민국, 국가 브랜드 이미지를 높여주는 역사의 영웅이었다. 야구며, 씨름 스타들도 국민의 행복지수를 높여주었다. 그러나 요즘처럼 숨겨졌던 영웅의 허상을 보게 되면 허탈해질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스포츠 혁명은 196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정부는 우수선수 육성에 앞장섰다. 금메달 낭보가 전해질 때마다 국민은 환호하며 약소국 콤플렉스를 씻어냈다. 하지만 엘리트 스포츠 정책은 어린 선수들을 아침부터 운동장이나 체육관으로 내몰았다. 기본적인 학업권리를 박탈당했다. 그 중심에는 정부, 체육 행정가, 교장, 교사, 코치 등 교육자도 있었다. 눈앞의 성공만 추구했던 학부형은? 모두가 공범이었는지도 모른다. 성공한 선수야 그래도 나았다. 실패한 선수는 국가의 희생자가 된 셈이다. 우리의 우수선수 육성정책은 구소련의 GTO를 방불케 했다. 운동선수들을 국가가 관리한 덕택에 그 성과는 눈부셨다. 빛이었다. 그러나 그늘도 생기기 마련이었다.

스포츠는 조기 교육이 중요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때가 있기 마련이고, 공부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선수들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 소양 교육에 소홀했다. 소수의 스포츠 영웅을 제외하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중 누가 탁월한 학자, 정치가, 국제적 스포츠 행정가로 변신할 수 있었겠는가?


대한민국은 이제 1960년대의 후진국이 아니다. 세계 10위권 전후의 경제 교역국이다. 탁월한 스포츠맨 중에서 탁월한 학자도 나오고, 정치가, 존경받는 사회 운동가도 나와야 한다. 특히 선진국처럼 우수선수 출신의 국제적인 스포츠 행정가는 꼭 나와야 한다. 그렇지 못했던 것은 선수들의 지적 교육은 도외시한 채 후진국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메달에만 집착했던 우리의 선수 육성 시스템 탓이다. 이러한 사태를 보면서도 체육계가 탄식만하고 대안 행동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미래 스포츠맨 출신의 우수 인력을 양성해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학생 선수들은 수업을 적절히 받고 있는가? 1년 내내 외국에 머무르는 스포츠 영웅이 졸업장이나 학위를 자연스럽게 받아도 되는가? 선진국도 우리와 같은 모습인가? 체육계는 최근에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지금보다 더욱 구체화된 공부하는 운동선수 육성책을 마련해야 한다.


스포츠 영웅들도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영웅은 갖은 고난 극복을 통해 탄생한다. 힘든 과정이다. 그러나 영웅이 되기도 어렵지만 영웅의 자리를 지켜내기는 더 어렵다. 진정한 스포츠 영웅이 되려면 인생이라는 시합에서도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학창시절 운동에 전념하느라 못했던 공부를 보충하고, 인격을 닦으며, 인생이란 전투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진정한 스포츠 영웅으로 남을 수 있다. 진정한 영웅이 되려면 자신이 가야할 인생길이 험로(險路)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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