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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체육이야기/[ 전문체육 ]

포스터(Mary H. Foster) 작, 옛 북유럽의 신화(1901). 스키 사냥을 하는 여신




글/하남길(경상대학교 교수)



지리, 학적 환경 속에서 생계나 생존을 위해 생성된 신체 활동이 하나의 문화로 정착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정치사회적 구조와 이념이었다. 정치의 형태나 정치인의 성향에 따라 스포츠 문화는 시들기도 하고, 개화하기도 했다. 예컨대 로마의 검투사 경기는 전제 군주가 귀족집단의 정치적 무관심을 촉진하기 위해 빵과 함께 제공한 서커스의 일부로 발달된 관중 스포츠 문화였다. 중세 봉건사회의 스포츠 문화도 그러한 사실을 보여준다. 정교일치(政敎一致) 시대에서 쾌락적인 놀이 문화는 금욕적 생활을 요구한 정치와 종교 체제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고, 다만 지배계급이었던 기사(騎士) 집단의 토너먼트나 쥬스트와 같은 마상경기가 대표적인 운동경기였다. 잉글랜드 튜더 왕가에서 왕들의 스포츠 애호전통으로 인해 론 테니스(lawn tennis)의 전신인 레알 테니스(Real tennis)가 발달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근대 스포츠의 발달과정에서도 사회적 구조와 의식의 변화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시골 서민 계급이 도시로 이동했고, 그들은 무역이나 상업으로 돈을 벌어 신흥 중산계급으로 등장했다. 그들도 신사계급처럼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내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서민의 놀이 문화가 중산계급의 엘리트 교육기관으로 스며들어 하나의 스포츠로 체계화되었다. 축구의 진화과정은 사회계급 구조의 변화와 직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수백 년 동안 지배계급이 천시했던 서민의 군중 축구(mob football)가 엘리트 교육기관이었던 퍼블릭 스쿨(public school)로 유입되어 럭비 스쿨에서 럭비풋볼(rugby football), 케임브리지 대학에서는 오늘날 사커(soccer)의 전신인 케임브리지 룰 풋볼(Cambridge rule football)로 탄생했다. 농구와 배구의 출현은 의식의 변화도 새로운 스포츠 문화의 생성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신교도는 일요일에 스포츠 활동을 금하는 잉글리시 선데이(English Sunday) 전통을 지켜 왔으나 19세기 말 미국 YMCA가 이러한 전통을 깨고 영국의 강건한 기독교주의 사상을 수용하게 되었으며, 일요일에도 운동경기를 즐기는 애슬레틱 선데이(Athletic Sunday) 전통을 세웠다. 미국 YMCA가 농구와 배구를 창안한 것은 이러한 역사와 직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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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사물은 아는 것만큼 보인다. 스포츠맨은 스포츠의 역사를 확대해서 볼 수도 있어야 하고 축소해서 볼 수도 있어야 한다. 시선의 초점을 다양한 각도에서 맞추어 볼 줄 알면 더욱 좋다. 스포츠의 의미 파악과 보는 즐거움이 한 층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각종 스포츠 종목의 역사를 현미경으로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이나 전체의 흐름을 읽을 수 없다면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사람처럼 스포츠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스포츠 문화사의 큰 흐름을 확대경으로 비추어보면 뚜렷이 잡히는 생성과 진화의 변수는 인간의 생계와 생존, 지리생태학적 환경, 정치사회적 구조와 의식의 변화 등이다.(hng5713@g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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