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비공개 폴더/스포츠미디어

64년만의 런던올림픽과 금석지감의 스포츠보도




글/김학수(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 연구소장)


 

1948812. 런던 올림픽에서 역도의 김성집이 세계신기록을 세우자 동아일보는 1면에 이렇게 보도했다.

삼천만 겨레의 체력은 오히려 건재하다. 비록 감독참모진의 미비로 우리의 <>이 이번에도 세계를 억누르지 못한 건 유감이지만 윈몸의 힘을 다 모아 싸우는 역도에 있어 김(金晟集)군이 백()()키로 ()백을 들어 인류로서 큰 힘을 자랑하다니 참으로 민족의 기쁨이 아닐 수 없구나. 백두산의 정기를 타고난 배달민족의 드높은 의기를 천하에 선명하리라고 ()천만 겨레의 기대와 관심을 자아내게 하는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 있어서 참패의 쓴 잔을 마신 <런던>의 한국 선수들은 절치부심 권토중래의 기회를 같이려 노력하여 오든바 ()일의 역도(力道)경기에 잇어 우리의 지보 김성집(金晟集)군이 ()二十一(이십일)키로 ()백을 들어 올려 세계신기록을 보이엇다.

그리고 <라이트급> 김창희(金昌熙) 남수일(南壽逸) 양군도 최선을 다하여 분전한 결과 ()三十(삼십)<키로>로 각각 ()위와 ()위를 차지하였다.”

경쟁지였던 조선일보도 그 다음날 다음과 같이 1면에 보도했다.

十一日(십일일)BBC放送(방송)()하면 十日(십일)力道競技(역도경기)에 있어서 <미들>()金晟集君(김성집군)引上(인상)百二十二(백이십이)<키로> 五百(오백)을 들어 <올림픽>紀錄(기록)을 깨트렸으며 總計(총계) 三百八十(삼백팔십)이라는 好成績(호성적)으로 世界第三位(세계제3)를 차지하여 처음으로 우리나라 太極旗(태극기)<엠부레이· 스타디암>에 올리었다한다. 이번 第三位(제삼위)를 차지한 金君(김군)同放送(동방송)에서 成果(성과)를 보게된 것은 國內同胞(국내동포) 여러분의 聲援(성원)德澤(덕택)이라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故國(고국)에 계신 同胞(동포)여러분 그동안 三伏(삼복)더위에 安寧(안녕)하십니까. 저로서는 最善(최선)을 다하였으나 여러분의 기대에 어그러져 罪悚(죄송)합니다. 何如(하여)튼 이만한 成果(성과)를 보게 된 것은 오로지 國內(국내)에 계신 同胞(동포) 여러분의 聲援(성원)先輩(선배)들의 指導(지도)해 주신 德澤(덕택)으로 생각합니다.”

64년전 우리나라 선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메달을 딴 김성집의 언론보도는 이렇게 시작됐다. 당시 언론들은 동메달이었지만 그 메달의 의미를 민족적인 것과 결부시켜 최고의 가치를 매겼다. 일본으로부터 갓 독립한 신생국 대한민국으로서 첫 올림픽 메달을 획득했으니 그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지금 세대에게는 낯설은 국한문 혼용체를 쓴 것이 특이했는데 민족혼을 고취시키는 내용들이 주를 이루었다.

당시 런던올림픽에는 동아일보, 조선일보 모두 취재기자를 현지로 보내지 못했다. 어려운 경제적 상황에서 올림픽에 기자를 파견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양대 신문은 외신들에 의존해 대한민국 선수단의 성적을 확인해 기사를 쓸 수 밖에 없었다.

당시 국영방송으로 서울중앙방송(KBS)이 유일하게 취재진을 보냈다. 사실 취재기자라기보다 아나운서인 민정호는 BBC 방송과 제휴 끝에 매일 15분씩 방송송출을 할 수 있도록 스케쥴을 조정해 놓고 있었다. 그 때 런던올림픽의 유일한 뉴스라인은 라디오였으며 수신상태가 고르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지만 올림픽 뉴스 시간대에는 모든 국민들이 귀를 기울이며 결과에 일희일비하곤 했다.

민정호 아나운서는 당시 해방의 감격세대가 그러했듯이 다소 흥분한 목소리로 실황을 중계했다.

런던 하늘에 태극기, 선수들 앞에도 태극기, 이 넓은 스타디움엔 10만이 넘는 사람들이 가득하건만 저 태극기를 눈물을 머금고 바라보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인가. 태극기도 입이 있어 말을 한다면 우쭐거리고 춤을 추면서 파란 많은 지난날을 눈물로 독백 하리라·

대한민국의 첫 올림픽 출전인 1948년 런던올림픽의 언론 보도를 거론한 건 64년만인 2012년 대한민국의 첫 메달 획득의 장소인 런던에서 다시 올림픽이 열려서다. 대한민국의 상황은 그동안 엄청나게 달라졌다. 조선, 자동차, 반도체, IT, 정유 등에서 국제 경쟁력을 갖추며 무역 규모 1조 달러로 세계 10경제 강국에 진입했으며 올림픽서도 1988년 서울올림픽이후 줄곧 10대 강국을 지켰다. 또 식민지에서 해방된 국가로는 처음으로 다른 나라를 돕는 원조국가로 세계무대에 이름을 당당히 올려놓았다.

비약적인 국력신장에 힘입어 국내언론도 그 규모와 영역이 크게 넓어졌다. 해방직후 런던 올림픽에선 중계 아나운서 1명만을 파견하는데 그쳤으나 이제는 수백 명의 매머드한 기자단이 올림픽, 월드컵, 아시안게임 등 메가 스포츠 이벤트를 취재, 보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세상이 몰라볼 정도로 변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상전벽해’(桑田碧海, 뽕나무 밭이 변하여 푸른 바다가 된다는 말)라는 말을 실감나게 한.

지난 8일 태릉선수촌에서 박용성 대한체육회장, 박종길 선수촌장등과 대표선수들이 참석한 가운데 런던올림픽에 대비한 훈련 개시식을 가졌다. 오는 727일부터 812일까지 열릴 2012년 런던올림픽서 대한민국은 금메달 13개 이상을 목표로 잡고 있다. 양궁 태권도 유도 등 효자 종목에서 금메달 2개 이상, 수영 배드민턴 체조 사격 펜싱 등에서 금메달 1개 씩을 기대하고 있다. 64년전 김성집의 첫 동메달로 열광하던 때와는 금석지감(今昔之感, 지금과 옛날이 너무 다르다는 의미)이다. 올 런던 올림픽에는 전 세계 200여개 국가에서 15000여명의 선수와 5000명의 임원이 참가해 26개 종목에 걸쳐 모두 302개의 금메달을 놓고 겨루게 되며, 취재진도 2만 명이 찾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대한체육회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취재진은 신문, 방송, 통신 등을 합해 2백여 명 정도는 될 것으로 추산한다. 또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 이어 이번 런던 올림픽도 중계하는 SBS는 독자적인 중계단을 별도 구성, 수백 명의 방송 제작단을 특파할 예정이다. 이들 취재진들은 대한민국 선수들의 금메달 현장을 생생하게 신문, 통신, 인터넷, SNS 등을 통해 보도할 것이며 방송은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전파로 내보낼 것이다.

김성집의 동메달 획득에 열광했던 64년 전의 런던과 금메달 러시속에 선수의 표정 하나 하나도 놓치지 않고 리얼타임으로 전할 올해 런던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걸어왔는지를 비교해서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대한민국이 두 번째로 참가하는 런던 올림픽은 역사 속에 투영된 스포츠 미디어의 시공간적인 모습을 통해서도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 스포츠둥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