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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체육이야기/[ 전문체육 ]

왜 프로야구는 재미있을까? (2)

 
                                                                                       

                                                                                      김정효(서울대학교 강사)

지난 회에서 우리는 프로야구의 서사적 측면을 페넌트레이스의 기호학을 통해 살펴보았다
. 서사(敍事)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을 말한다.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운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과정은 서사의 일반적인 구조를 가리킨다. 할머니의 옛날이야기와 영화, 그리고 소설 등의 모든 스토리는 주인공이 겪는 사건을 이런 서사구조에 의해 풀어나간다. 그래서 페넌트레이스의 기호학은 서사구조의 충실한 재현에 다름 아니다.


이번 회에는 프로야구가 만드는 이야기의 내적 요소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 우선 모든 이야기는 주인공을 갖는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 주인공이 처하는 현실은 늘 이항대립적이다. 선과 악, 영웅과 악당, 행운과 불운, 우연과 필연, 그리고 삶과 죽음 등 대부분의 서사는 이항대립의 구조를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야구는 이러한 이항대립적인 서사구조를 완벽하게 재현한다. 스트라이크와 볼, 세이프와 아웃, 투수와 타자, 공격과 수비, 위기와 찬스 등은 야구를 규정하는 결정적인 기표들이다. 이 기표들에 의해 무수히 많은 이야기와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문제는 프로야구에서의 이항대립이 소설이나 영화와 같지 않다는 점이다. 소설과 영화의 이야기가 작가나 시나리오에 의해 미리 결정되어 있는 것에 비해 프로야구의 이항대립은 응원하는 팀에 따라 상반되어진다. 내가 응원하는 팀의 세이프는 환호가 되지만 상대 팀에게는 탄식이 된다. 다시 말해 스트라이크와 볼, 세이프와 아웃은 어디까지나 양가(兩價)적이다. 이처럼 한 가지의 사건이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양가성으로 인해 야구는 자주 인생에 비유되어 진다. ‘위기 뒤의 찬스란 뒤집으면 찬스 뒤의 위기가 되고, ‘9회말 역전 홈런은 승자의 기호임과 동시에 패자의 쓰디쓴 교훈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야구를 생각의 스포츠라고 하는 것이다.

야구는 게임의 구조에서 이미 생각을 강요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생각을 하면서 보아야 야구의 재미는 배가된다. 야구가 생각의 스포츠인 이유는 게임의 진행이 순간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1. 사이의 미학

여타의 종목과 달리 야구는 투수의 투구와 타자의 타격이 부딪히는 순간 이루어진다. 투수는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겠다는 의사를 타자에게 전하고 타자는 그 의사를 읽고 타격에 임한다.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타격의 의지가 없는 타자에게 공을 던지는 투수는 없다. 그러나 투수와 타자의 의지가 일치되기까지는 몇 가지 절차를 거친다. 투수는 포수와 사인을 교환하고 타자는 보통 두 세 차례 방망이를 휘두른 후 배팅 박스에 들어선다. 때로 모자와 헬밋을 고쳐 쓰기도 하고 운동화 끈을 만지기도 한다. 이러한 동작들은 언뜻 불필요해 보이지만 없어서는 안 될 경기 외적인 의식들이다. 오히려 긴장과 흥분을 끓게 만드는 전희(前戱)와 같다.

볼과 스트라이크, 인코스와 아웃코스, 높은 쪽과 낮은 쪽, 직구와 변화구 등 투수의 공이 손가락을 떠나기 이전 머리 속을 어지럽히는 구질의 조합을 생각해 보라. 이윽고 송진팩의 하얀 분말이 터질 때 동시에 밀려드는 긴장감은 미구에 찾아올 열광과 낙담을 한껏 가두어 놓는 멈춘 호흡이지 않는가. 이처럼 야구는 몇 초 사이에 이루어지는 선택과 수읽기가 9회말 3아웃까지 이어지며 보는 이로 하여금 흥분과 긴장을 끊임없이 당겼다 늦추었다 한다. 이 이완과 수축의 반복이 여타의 스포츠와 확연히 구분되는 야구의 즐거움이자 매력인 것이다. 이를 우리는 사이의 미학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사이의 미학은 볼카운트라는 기표에 의해 드러난다. 볼카운트란 이를테면 투수와 타자 간에 이루어지는 대결의 기승전결이며 긴장과 흥분의 게이지에 다름 아니다. 이 진행의 시간을 매우는 것이 바로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볼 배합의 예측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작전의 형태로 드러나기도 한다. 무사만루, 12,3, 22, 무사 2루 등등 상황에 따라 이루어지는 상상력과 작전의 경우의 수는 게임을 읽는 사람에 따라 무한대로 이어질 것이다. 이것이 전체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이야기소(이야기의 작은 단위를 말함)’이며, 이야기소의 합이 한 판의 야구 게임이 되는 것이다.


2. 미디어의 적자(嫡子)

사이의 미학이 긴장의 수축과 이완을 가능하게 만든다면 긴장에서 놓여나는 시간은 방송 미디어의
절묘한 소재
가 된다
. 가령 매 이닝 공격과 수비가 교체되는 때라든지 릴리프 투수가 마운드에 오르는 때의 짧은 시간은 방송 미디어에게 더할 나위없는 호재를 제공한다. 그 공백의 시간 동안 내레이션으로 채울 수 있고, 심지어 주 수입원인 광고의 화면으로 바꿀 수 있다. 어느 스포츠가 게임의 도중에 광고의 송출을 가능하게 만드는가. 그리고 해설자의 멘트를 들어보라. 매 이닝 중요하지 않은 공격과 수비는 없으며,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투타의 대결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야구는 스포츠 미디어의 총아이며 적자인 것이다. 그래서 미디어는 야구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통해 무수히 많은 인생의 은유를 생산한다. 이것이 야구의 또 다른 기호학이다.

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라는 기표는 인생의 예측 불가능성의 기의가 되고, 위기 뒤의 찬스,
혹은 찬스 뒤의 위기는 처세의 기의로 탈바꿈한다
. 때로 삶의 역전을 꿈꾸는 사람들은 야구는 한 방이라는 기호에 자신을 위탁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작용들은 방송 미디어의 끊임없는 담론의 생산에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야구를 즐기는 관중 혹은 시청자의 생활세계의 반영을 전제로 한다. 요컨대 야구는 던지고 치고 달리는 신체의 야성적인 움직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단순한 기표에서 무수히 많은 삶의 기의를 해석하는 기호의 집적체인 것이다. 영웅의 부재와 이야기를 상실한 시대!
프로야구는 이것에 굶주린 현대인에게 야성(野性)을 건드리는 오디세이의 긴 이야기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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