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지성 (한양대학교)
-복고(復古)와 라이벌(rival)을 이용한 스포츠마케팅-
한양대vs성균관대, 대학배구 최고의 라이벌전!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의 마지막 일요일, 동대입구역 5번 출구에 위치한 대한민국 실내스포츠의
메카 장충체육관은 이른 오후부터 기대감과 팽팽한 긴장감이 한데 모여 뜨거운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바로 오후 3시부터 벌어질 대학배구 전통의 라이벌 한양대와 성균관대의 시합 때문이었다.
CJ E&M에서 주관하고 케이블방송사 XTM에서 생중계한 이번 시합은 XTM의 정규프로그램인 ‘XTM 라이벌매치’의 두 번째 기획으로 편성되어 진행되었다. 첫 번째 기획인 대학농구 숙명의 라이벌 연세대와 고려대의 매치업이 농구 올드팬들의 큰 관심과 KBL, 전·현역 농구인들의 적극적인 협조 속에 성공적으로 끝나 2탄, 3탄으로 이어질 라이벌매치에 스포츠팬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4,500여 석의 장충체육관은 한양대와 성균관대학교의 양교 동문들과 취재진, 선수들의 가족, 팬으로 경기시작 1시간 전부터 이미 가득 차 있었다. 각 학교 응원단을 중심으로 한 열띤 응원전은 대학생들의 순수한 열정과 패기를 그대로 전달하고 있었다. 선·후배들과 어울려 즐겁게 몸을 풀던 OB들은 이제 은퇴한 지 오래 되어 실력이 예전같지 않지만 경기를 위해 체육관으로 입장할 때의 함성만큼은 한선수, 고희진 같은 현역 선수들이 부럽지 않았다. 한양대에는 현대캐피탈 김호철 감독을 필두로 김세진, 하종화, 이인구, 손석범, 김형찬(이상 OB)과 최태웅, 석진욱, 이선규, 주상용, 한선수, 박준범 같은 쟁쟁한 현역 OB들이 포진했다. 이에 맞서는 성균관대는 신치용 감독을 대표로 신진식, 임도헌, 박종찬, 마낙길, 장병철, 정평호(이상 OB)와 고희진, 방지섭, 박성률, 김광국의 라인업으로 맞섰다. 은퇴한 OB 4명과 현역 OB 2명으로 팀을 구성해야 했기 때문에 은퇴한 OB들간의 호흡이 중요한 경기였다.
주심의 휘슬 소리와 동시에 시작된 경기는 최태웅과 한선수, 두 간판 세터들이 포진한 한양대가 가볍게 1,2세트를 따내면서 싱겁게 끝나는가 싶었다. 하지만 성균관대는 임도헌, 장병철의 시원한 스파이크와 박종찬의 블로킹, 신진식의 강타가 연이어 한양대의 코트에 꽂히면서 세트스코어 2-2.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승부를 결정짓는 5세트. 은퇴한 지 오래되어 체력적으로 힘든 기색이 역력한 선수들이었지만 승리에 대한 열망으로 코트에 나뒹구는 선수들은 멀리서 보면 선·후배 구분 없이 그저 한 팀이라는 사실만 알 수 있었다. 마지막 승부처에서 한양대의 김호철 감독이 아껴두었다가 꺼내든 카드인 박준범 선수(KEPCO45)가 오픈공격을 연속으로 성공시키고 매치포인트 상황에서 성균관대 신진식 선수의 공격을 가로막으면서 대학배구 최고의 라이벌매치는 극적인 승부로 마무리되었다. 프로선수들의 경기를 연상케 하는 수준급의 경기력과 재미, 관중 동원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훌륭한 경기였다.
라이벌매치를 성공적인 대회로 이끈 요인들
1. 미디어데이 행사를 통한 관심 고조와 지속적인 기사 배포
라이벌매치 1탄 고려대vs연세대의 농구대결에 이어 열린 한양대vs성균관대의 배구대결. 자리는 마련되었으니 이제 그 자리를 널리 알려야 했다. XTM은 경기 1주일 전인 8월 22일, 서울 종로구 프레스센터에서 양교 감독과 주장을 한 자리에 모아 현장을 가득 채운 기자들 앞에서 공식 미디어데이 행사를 가졌다. 현역 때에 이어 프로배구판에서도 라이벌 구도를 이어가는 신치용 감독과 김호철 감독이 이번엔 모교의 명예를 걸고 맞붙게 되는 것이 흥미진진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상대방에 대한 적당한 도발과 승리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피력하면서 팬들에게 앞으로 있을 경기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미디어데이였다.
미디어데이 동영상 링크 (http://youtu.be/fgmyYmpiptc)
미디어데이가 개최되기 이전, 이후에도 주관방송사 XTM은 OB들이 모교를 찾아 현역 선수들과 실전과 같은 훈련을 하는 과정, 선수들의 인터뷰 등을 생생하게 담아 광고와 짧은 프로그램으로 제작해 ‘경기가 치열하고 격렬할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노출했다. 이벤트성 대회이기 때문에 선수들이 최선을 다 하지 않고 몸을 사릴 것이라는 추측을 불식시키고 시청자들에게 멋진 경기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었다.
2. 배구꿈나무들과 함께 하는 행사로 배구 저변 확대
경기 시작을 앞두고 선수들이 입장할 때 초등학교 여자 배구부 학생들을 초청, 손을 잡고 나란히 입장하였다. 선수들이 모두 입장하고 학생들이 퇴장할 때에는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격려했다. 어린 학생들에게는 평소 동경하던 스타와 함께 한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을 것이고 배구선수로서 긍지와 자신감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또 3세트를 마친 후에 장학금을 기부하는 이벤트가 열렸다. 양교에서 2명의 선수를 자원받아 스파이크로 코트 사각에 세워져 있는 원뿔을 맞추면 한 개당 100만원씩을 적립하는 이벤트였다. 한양대와 성균관대학교 OB들은 각각 하나의 원뿔을 넘어뜨려 총 200만원의 장학금을 기탁할 수 있게 되었다. 본 경기 외에 이러한 부대행사들은 경기장을 찾은 팬과 어린이들에게 이색적인 볼거리를 제공함과 동시에 배구의 저변을 확대한다는 취지를 가졌다
3. 전·현역 선수들의 개인적인 팬 유입 + 대학교 동문들의 유입 -> 배구를 더 잘 알게 되고 잠재적인 배구 팬으로 발전
겨울스포츠인 배구를 여름에 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어 배구팬들은 장충체육관으로 모여들었다. 양교를 대표하는 최고의 스타 김세진, 신진식 선수는 선수생활을 마친 후에도 여전한 팬 동원력을 보여주었다. 또한 한양대가 배출한 ‘꽃미남 스타’ - 한선수, 이선규, 박준범 등을 응원하는 팬들도 상당했다. 배구는 잘 모르지만 초청되어 경기장을 찾은 같은 학교 동문과 재학생들도 모교를 응원하는데 함께 하며 박진감 넘치는 배구의 재미에 빠져들었다.
각 학교 학생처는 교내 곳곳과 장충체육관에 경기를 알리는 포스터를 붙이고 표 판매를 대행했다. 응원단은 응원도구를 공짜로 나눠줌으로써 관객들이 응원전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했다. 배구와 응원의 열기를 겪고 돌아간 팬들은 나중에 다시 배구장을 찾을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대학스포츠의 발전에 도움을 줄 것이다.
4. 방송사와 스포츠협회의 Win-Win
이번 라이벌매치 기획은 공중파가 아닌 케이블방송으로서 할 수 있는 과감하고 신선한 기획이었다. 스포츠중계 시간으로는 프라임시간대라고 할 수 있는 휴일 오후 3시에 생중계를 편성하는 게 가능했다. XTM은 스포츠 생중계를 통해 제작인력의 경험 습득과 프로그램 편성의 다양화를 꾀할 수 있었고, 배구협회는 미디어와의 결합을 통해 배구라는 스포츠의 매력을 대중들에게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었다.
경기에 나선 선수들도 결정적인 득점을 올릴 때는 함성과 하이파이브, 세트를 따낼 때에는 미리 동작을 맞춘 세리머니를 선보임으로써 현장의 팬과 TV로 경기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에게 확실한 팬서비스를 했다. 한양대의 강만수 단장과 성균관대의 마낙길 해설은 특별 해설자로 초빙되어 대학교 시절 유니폼을 그대로 입고 캐스터와 함께 해설에 나섰다. 이런 선수들의 적극적인 협조는 주관하는 방송사에게도 큰 이익이 되어 추후 프로그램 편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5. 라이벌전이 갖는 묘미 활용
만약 XTM 라이벌매치가 라이벌을 뺀 그냥 ‘매치’였다면 지금과 같은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없었을 것이다. 과거의 스타들을 몽땅 불러놓고 단순히 동군, 서군으로 섞어놓는 게 아니라 실재 경쟁 관계였던 팀과 그 팀에 속했던 선수들 - 라이벌전으로 한정함으로써 경기의 주목도와 선수, 팬들의 집중력을 높였다. 마치 예전의 치열했던 그 현장과 분위기를 다시 관람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
프로스포츠의 역사가 깊은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는 전통의 라이벌들이 맞붙는 날에는 도시 전체가 들썩거린다. 유럽 프로축구에서는 이를 ‘OOO더비’로 이름붙이고 홍보한다.
우리나라의 프로축구에서도 이를 벤치마킹해 다양한 라이벌전을 명명하고 홍보하고 있다. 전북과 울산의 ‘현대家 더비’, 포항과 전남의 ‘용광로 더비’, 전북과 전남의 ‘호남 더비’ 등 지역과 구단의 특색을 이용한 다양한 라이벌전이 흥행을 위한 요소로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라이벌전은 누가 정해준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양팀간의 독특한 역사와 사건, 선수간의 경쟁의식이 어우러져 저절로 생겨나는 ‘문화적인 현상’이다. 만들고 싶어도 만들 수 없는 새로운 라이벌에 목을 매지 말고 이미 우리 실업·프로스포츠사에 존재했던 라이벌들을 활용하면 우리도 외국의 치열한 더비에 부럽지 않은 훌륭한 라이벌전을 갖게 될 것이다
앞으로는 또 어떤 라이벌매치가 성사되서 왕년의 스타들을 볼 수 있을지 가슴이 설렌다.
다만 이런 라이벌매치가 한 TV프로그램의 일회성 편성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정례화해서 팬들이 기다리게 만드는 경기로 만들어나가야 한다. 프로리그에서 공식적으로 하는 행사인 올스타전 못지않은 각 종목별 스포츠인들의 축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프로스포츠의 파이를 키우기 위해 라이선스권이나 간접홍보에 관한 법적 절차나 손익 계산에 있어 기업과 협회의 대승적인 협의가 필요하다. 가령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해태 타이거즈 올스타와 현대 유니콘스 올스타 매치를 추진하고자 한다면 전 구단과 현재 구단의 실무자, KBO 간에 득실을 놓고 조율할 부분이 많을 것이다. 올해 7월에 기아 타이거즈 구단이 팬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인수하기 전의 해태 시절 올드유니폼 데이를 개최한 것처럼 스포츠 전체를 위해 한 발씩 먼저 나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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