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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둥지 기자단

대한민국 정구는 '진흙 속의 진주'다

글 / 권순찬

 

 

  어릴 적 집 앞 고등학교에 테니스장이 있었다. 한없이 커보였던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뛰어 놀다가 테니스공을 줍기 위해 테니스장에 가곤 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흔히 알고 있던 초록색의 공이 아닌 흙이 묻은 하얀색 공이 뒹굴고 있을 뿐이었다. 그 공을 보곤 연습용 테니스공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 공은 테니스공이 아닌 ‘정구공’이었다.

 

 

정구는 테니스와 유사하지만 부드러운 공을 사용하고 라켓의 크기도 좀 더 작다. 사진출처 = chosun.com 스포츠

 


  어릴 적의 나처럼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테니스장을 보곤 다들 테니스를 칠 것이라고 생각하지 정구를 칠 것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만큼 정구는 테니스에 비해 생소한 스포츠이다. 다들 테니스와 비슷한 스포츠 정도라고만 알고 있을 것이다. 정구와 테니스는 실제로 매우 비슷한 스포츠이다.


  정구가 테니스에서 파생된 것이기 때문에 두 스포츠가 비슷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1890년 경 테니스용품을 구하기 어렵게 된 일본에서 말랑말랑한 고무공과 가벼운 라켓으로 변형된 테니스를 하게 된 것이 정구의 시초로 알려져 있다. 부드러운 연식 공을 쓰기 때문에 정구를 영어로 ‘soft tennis’ 라고 한다. 쉽게 말하면 정구는 ‘부드러운 공을 사용하는 테니스’ 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정구가 들어온 것은 1908년 4월 지금의 재무부에 해당하는 탁지부의 일반 관리들이 친목을 위한 회동구락부를 조직, 바둑·장기·궁사·정구 등의 시설을 갖추고 이듬해 5월 여흥식 경기회를 개최한 것이 최초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정구가 인기가 없는 이유는 단연 테니스의 존재 때문이다. 정구가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이기는 하지만 올림픽 정식 종목인 테니스에 비해서는 영향력이 작을 수밖에 없다. 테니스는 이미 전세계적으로 크게 인기를 끌고 있는 스포츠이고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 등 수많은 스타들을 보유하고 있다. 정구는 일본에서 테니스를 아시아 선수에 맞게 변형한 스포츠이기 때문에 주로 아시아 국가에서 자리를 잡은 스포츠이다. ‘세계정구선수권대회’라는 4년마다 개최되는 세계 대회가 있는데 대부분 아시아 국가에서 개최를 한다. 15회 대회까지 열렸는데 그 중 하와이에서 열린 1회 대회와 4회 대회를 제외하고는 모두 아시아 국가에서 개최를 하였다. 2019년에 열리는 16회 대회도 중국에서 열린다.


  하지만 정구는 우리나라 스포츠에 있어서 ‘진흙 속의 진주’ 같은 존재이다. 우리나라 스포츠는  양궁 등 일부 종목에만 의존했던 리우 올림픽을 통해 부진한 모습을 보여줬다.  지난해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우리나라 체육계도 크게 흔들렸다. 우리나라 스포츠가 전체적으로 암울한 현재 상황에서 정구는 몇 안 되는 세계 최강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스포츠 중 하나이다. 비록 올림픽 종목은 아니어서 세계적으로 주목 받기는 힘들지만 국제대회에서 꾸준히 성적을 내고 있다. 지난 2015년에 인도 뉴델리에서 열렸던 제15회 세계정구선수권대회에서는 7개 종목 중에 6개의 금메달을 휩쓸었고 안방에서 열렸던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7개 종목 전 종목 석권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지난 18일에 열렸던 브라질 국제정구대회에서도 5개의 금메달을 휩쓸었다.

 

 

세계최초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김애경(왼쪽)과 주옥. 사진출처 = 노컷뉴스.

 


  세계최고의 실력을 갖춘 만큼 많은 스타들도 보유하고 있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김애경과 주옥은 여전히 세계 정구의 레전드로 남아있다. 두 선수는 제15회 세계정구선수권대회에서 여자 복식 금메달을 따내며 세계 정구 사상 최초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게 되었다. 그랜드슬램은 메이저 4개 대회(아시아선수권 대회, 동아시아대회, 아시안게임, 세계정구선수권대회)를 제패해야만 달성할 수 있는 기록이다.

 

  김애경은 세계 정구 역사상 최초로 세계선수권 전 종목(단식, 복식, 혼합복식,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내기도 했다. 지금은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는 유영동은 아시아경기에서 한국 선수로는 가장 많은 5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며 선수시절 ‘코트의 황제’로 불리곤 했다. 정구가 테니스만큼 인기가 많은 스포츠였다면 이들도 로저 페더러나 세레나 윌리엄스 같은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월드스타였을 것이다. 인천 아시안게임 2관왕 김형준, 여자 정구의 차세대 에이스 김지연, 김영혜 등이 이들의 뒤를 잇고 있다.


  정구는 비인기종목이지만 20여 개의 남녀 실업팀이 존재하고 5만여명의 동호인들이 활동하고 있다. 실업팀, 선수, 동호인의 수는 종주국 일본에 비하면 적다. 하지만 최근의 국제대회에서의 성적이 종주국 일본을 압도하며 국제대회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예전에 비해서 최근에 정구에 대한 인지도도 높아진 편이다. 앞으로도 계속 발전하여 국제대회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이고 스포츠팬들에게도 사랑을 받는 스포츠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