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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폴더/[ 스포츠산업 ]

새롭게 태어난 잠실종합운동장과 평양능라도5.1 경기장

 

글/김학수

 

 

 

 

 

  한강과 대동강 변에 우뚝 솟은 초대형 경기장인 잠실종합운동장과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은 모양은 각기 다르지만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 공통점은 한 시대물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축물로서 민족의 대사를 치르기 위해 지어졌다는 것이다. 잠실종합운동장은 조선시대 백자의 곡선미를 지닌 건축물로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서울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만들어졌다.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은 낙하산이 활짝 펴진 모양을 갖춘 세계최대 경기장중 하나로 1989년 세계청년축전을 위해 완공됐다.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출처: 두산백과)                       ▲평양 능라도 5.1 경기장 (출처: NK투데이)

 

 

 남북한 체육시설의 상징이 된 두 경기장은 지어졌을 당시의 시대적 이데올로기가 곳곳에 흔적으로 남아 있다. 당시는 지금보다 더 강한 민족공동체의 집단적 의지가 작동하던 시대였다. 건축물 자체를 집단적 행사를 위한 공간으로 생각해 개인적인 자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잠실종합운동장과 평양 능라도 5·1경기장 모두 주차장이 아주 협소한 게 대표적인 증거이다.

 

잠실종합운동장은 야구장, 실내체육관, 수영장 등을 포함해 관중 수용능력이 10만명이상이지만 주차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잠실종합운동장이 만원을 이루면 주변 도로 일대가 극심한 주차난으로 교통이 마비되기 일쑤다. 20~30년 후를 내다보지 않고 자가용문화가 자리잡기 이전의 시대적 정서와 생각만을 갖고 경기장을 지었기 때문이다.


평양 능라도 5·1경기장도 사회주의의 집단적 사유와 행동양식으로 세워져 개인적인 공간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1991년 남북 청소년 단일팀 구성을 위한 남북친선경기 취재를 위해 방문했던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은 15만 관중수용능력의 거대한 건축물이었지만 관중들의 편의시설이 제대로 갖춰지 있지 않았다. 주차장은 잠실종합운동장보다 월등히 작았고, 경기장 내 관중석은 딱딱한 시멘트 바닥 그대로였다.

 

 남북한 모두 경기장을 스포츠적 측면보다는 축제와 각종 행사 등을 위한 공공 집회장소로 간주하고 개인보다는 집단과 조직을 우선시하는 관료주의가 작동했던 것이 이같은 경기장을 낳게했다. 남북한 모두 국가주의적 계도와 민족주의적 강박이 심했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몇 년 후 박찬호의 전성기 시절인 1997년 LA 다저스 스타디움을 처음 방문했을 때, 거대한 주차장과의 비교를 통해서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관중들의 편익을 고려한 LA 다저스 스타디움은 경기장보다 3~4배 더 큰 주차장을 만들어 관중들이 이용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했다. 남북한과는 스포츠문화 풍토가 너무나 큰 차이를 보였다.
20여년이 흐른 지금, 남북한의 대표적인 경기장이 새로운 양식으로 탈바꿈, 시대변화를 실감케 해주고 있다.

 

 

 ▲이랜드가 개조한 잠실종합운동장  "레울파크"  -출처: 스포츠조선

 

 잠실종합운동장은 지난해 축구단을 창단한 이랜드가 축구전용구장으로 개조했다. 관중을 5천여명으로 제한하고 '레울파크'라고 이름을 붙은 이랜드의 독특한 홈 구장 운영방식은 색달랐다. 레울파크는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의 기존 좌석 7만여석을 병풍처럼 두르고 필드 근처에 좌석을 새로 설치하는 방식으로 설계했다. 양쪽 골대 뒤의 콘테이너형 스위트와 파티 입석은 관중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경기장을 관중을 위해 안락하고 오붓하게 바꿔놓았던 것이다. 행정편의주의로 수십년간 운영됐던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이랜드의 혁신적인 발상으로 그동안 집단주의 정서에 매몰돼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한 관중들이 마침내 대접받는 세상이 됐다.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은 지난 해 10월 인천아시안게임이 끝난 뒤 북한 선수단이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두고 개선한 뒤 새롭게 단장했다. 북한 노동신문은 작년 10월29일자 '노동당 시대의 대기념비적 창조물로 훌륭히 개건된 5월1일 경기장 준공식 진행'이라는 기사를 통해 "위대한 당의 영도밑에 '5월1일 경기장'이 우리나라 체육시설의 상징으로 문명국의 체모에 맞는 경기장으로 훌륭히 개건됐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 '5월1일 경기장'이 15만석의 관람석을 가진 축구장과 육상트랙, 예비운동실, 선수침실, 감독실, 심판원실, 검사등록실 등이 국제적기준에 맞게 갖추었다고 소개했다. 또 수영장, 탁구장, 미니골프장, 피로회복실을 비롯한 체육 및 문화후생시설들과 봉사망들이 최상의 수준”이라고 선전했다.


남북한 경기장이 시설 개수에 나선 것은 시대적인 변화에 따른 결과이다. 잠실종합운동장은 다양화, 개인화의 추세가 확산되는 시대적 추세에 맞춰 관중이 주체가 되는 스타일로 바꾸게 됐다. 평양 능라도 5·1 경기장도 스포츠 국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스포츠를 위한 공간을 확충했던 것이다.


스포츠 경기장에는 알게 모르게 당대의 시대적 정신이 내재되어 있으며 시대적 가치와 규범이 체육 시설의 상징물로 표현되게 마련이다. 잠실종합운동장과 평양 능라도 5·1 경기장의 과거와 현재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