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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체육이야기/[ 전문체육 ]

축구의 또 다른 이름 ‘전쟁’12번째 선수들의 축구전쟁5-(2)

 

 

 

글/ 윤동일

 

군사훈련용으로 개발된 스포츠, 축구이야기
축구의 또 다른 이름 ‘전쟁’12번째 선수들의 축구전쟁(2)


 앞서 소개한 국가대표팀과 더비팀들을 포함해 세계에 모든 서포터들은 오랜 종교 갈등, 지역감정, 경쟁관계나 어이없는 오심(誤審), 믿었던 자기 팀의 패배 그리고 과거에 당한 패배나 수치에 대한 보복 등 형형색색의 이유로 점잖은 신사의 모습을 버리고 흉악해 진다. 축구는 태생부터 전쟁에서 기원했고, 1백 년이 넘는 역사에 수 만 명이 경기에 동원되기 때문에 다른 종목과는 달리 대형의 안전사고와 대규모 충돌 요인을 많이 내포하고 있다. 그리하여 경기장의 안과 밖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참사에서 한두 명이 아니라, 수 백 명의 사망자와 부상자가 생기기도 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런 서포터들을 ‘훌리건(Hooligan)’이라 부르지만 다음에 소개하는 사례를 보면 오히려 ‘광란(狂亂)의 폭도(暴徒)’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여기서 소개할 사례는 지면 관계상 안전사고(선수를 태운 항공기의 추락사고, 부실 공사로 스탠드가 무너져 발생한 인명사고 등)는 생략하고, 경기 도중에 또는  일어난 서포터들의 충돌이나 난동으로 많은 사상자를 낸 참사들만 시대 순으로 정리해 소개하고자 한다. 다만, 여기서 언급하는 더비는 앞서 소개한 내용을 참조하기 바란다.

 

출처 : 2010.06.22일자 경향신문

 

➐ 아크라 참사(Accra sports stadium disaster)
  축구 참사에 아프리카라 해서 예외일 수 없다. 2001년 5월 9일, 가나의 수도 아크라의 아크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가나 축구리그의 1, 2위 팀인 ‘아크라 하츠 오브 오크(Accra Hearts of Oak Sporting Club)’와 ‘쿠마시 아산테 코토코(Kumasi Asante Kotoko)’와의 경기가 있었다. 이날 사고는 경기 종료 5분을 남기고 원정팀 아산테가 1-2로 뒤지자 실망한 아산테 팬들이 병과 의자를 경기장으로 집어던지면서 시작됐다. 경기 종료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관중들이 난동이 점점 심각해 질 것을 우려한 나머지 경찰은 조기 진정을 위해 최루탄이라는 극약 처방을 택하게 된다. 경찰은 즉각 최루탄을 쏘며 진압에 나섰고, 스탠드에 있던 관중들은 최루가스를 피하려고 이리저리 몰려다니다 넘어지고, 넘어진 위로 깔리면서 사고는 겉잡을 수 없이 확대되었다. 경기장은 경찰들의 최루가스로 앞이 보이지 않는데다 부상당한 고통의 신음소리와 압사당한 사람들의 비명 소리로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날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만 무려 127명이나 되었다. 사고가 나자 아크라 시내는 병원과 경기장을 오가며 사상자를 실어 나르는 구급차들로 1시간 이상 마비되다시피 했으며 병원 복도까지 피를 흘리는 부상자와 소식을 듣고 달려온 사상자 가족들로 인해 전쟁터 그 자체였다. 다른 사례와는 달리 맞수 서포터 간의 난동으로 벌어진 참사가 아니라, 원천봉쇄를 위해 투입된 경찰의 과잉 진압이 부른 의도하지 않은 참사로 2000년대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사고로 기록되었다. 아프리카에서의 축구 참사는 아크라 참사가 일어나기 한 달 전, 남아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도 43명이 죽는 참사가 발생하는 등 확산되고 있어 새로운 진원지가 되고 있다.

 

<아크라경기장에서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희생된 관중들>

http://www.mightfmonline.com/2013/05/today-marks-12th-anniversary-of-may-9-stadium-disaster/
http://sankofaonline.com/12th-anniversary-of-may-9-disaster-marked-today/

 

 

➑ 시칠리아 참사(Sicilian derby riots)
 

 거친 집단축구 칼치오(Calcio)의 나라 이탈리아도 축구장 난동의 역사는 매우 깊다. 이탈리아 축구장 난동은 규모는 작을지 몰라도, 사진에서 보듯이 거의 폭동에 가깝고, 별도의 설명 없이 사진만 보면 테러나 시가전을 방불케 한다. 대규모 참사와는 약간 다른 이탈리아 축구의 인명사고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표 1> 이탈리아 축구 참사 일지(시간순)

구분

경기팀

내용

19644

살레르니타나-포렌자(세리에C)

관중 폭동 진압 도중 경찰 발포로 관중 1명 사망

197910

라치오-AS로마(로마더비)

화염에 의한 화재로 라치오 팬 1명 불에 타 사망

19849

AC밀란-세레모네세

AC밀란 팬 1명이 칼에 찔려 사망

198910

인테밀란-아스콜리

인테밀란 측에서 던진 돌에 아스콜리팬 1명 사망

1995

제노아-AC밀란

제노아 팬 1명이 칼에 찔려 사망

20039

나폴리-아텔리노

나폴리 팬이 경기장 난간에서 떨어져 사망

20071

아마추어클럽

난동을 저지하는 구단 매니저 머리를 발로 차 사망

20072

필레르모-카타니아(시칠리아더비)

관중이 던진 폭발물에 난동을 진압하던 경찰관 사망

 

이탈리아의 참사는 비록 그 규모나 희생자의 숫자 면에서 앞서 소개한 페루, 잉글랜드, 가나 등 세계적인 참사들에는 비교도 되지 않지만 오래 전부터 돌이나 칼, 총 심지어 폭발물까지 동원해 상대 응원단이나 경찰관까지 살해하는 악성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위 표에서 가장 마지막의 사고는 2007년 2월 2일, 세리에 A리그 경기로 시칠리아를 연고로 하는 팔레르모와 카타니아의 두 팀 사이에서 벌어졌다. 시칠리아 더비로도 유명한 두 라이벌의 충돌은 전반이 끝난 뒤, 휴식시간에 시작됐는데 후반 시작 휘슬이 울리고도 난동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경찰이 투입되었고, 경기는 일시 중단됐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경찰은 관중석을 향해 최루탄을 발사했는데 이 때 관중석 어디선가 폭발물이 경찰 차량에 터졌다. 이로 인해 바로 옆에 있던 경찰관(필리포 라시티)이 그 자리에서 숨졌고, 동료 경찰관도 부상당했으며 축구 팬  수백 명이 다쳐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다. 다시 재개된 경기는 원정팀 팔레르모가 2대1로 승리하며 마쳤지만, 난동은 경기 후에도 계속 이어졌고, 경기장 인근 지역은 전쟁터와 다를 바 없었다. 이날 저녁 이탈리아 축구연맹은 긴급회의를 통해 이후 계획된 세리에 리그를 비롯한 모든 경기를 취소시키며 모든 이탈리아 축구가 중단되었다. 그리고 이 경기장(시칠리아 안겔로 마시미노경기장)에서는 불과 1주일 전에도 4부리그 경기 도중 팀 매니저가 난동을 저지하려다 흥분한 관중의 목을 차여 숨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탈리아는 2006년 승부조직으로 큰 홍역을 치렀고, 이어서 난동에 이은 인명사고, 그것도 난동을 제지하려는 구단 직원과 경찰관까지 사망하면서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결국 이탈리아 프로축구 지도부들은 가장 짧은 임기로 전원 교체되었다

 

<일체의 설명 없이 사진만 보면, 대규모 폭동이나 심지어 테러와 같은 시가전을 연상하게 하는 2007년 시칠리아 더비의 난동 장면이다. 이 날 벌어진 이 난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사망한 경찰관(필리포 라시티)의 장례식 장면>

 

http://www.smh.com.au/news/football/bresciano-caught-up-in-riot-tragedy/2007/02/03/1169919584235.html?s_cid=rss_smh
http://www.chinadaily.com.cn/sports/2007-02/06/content_802053.htm

➒ 포트사이드 참사(Port Said stadium clashes)
 유엔 가입 국가들보다도 많은 나라에서 즐겨 하는 축구에서 대형 참사는 지역을 가리지 않는다. 위의 사진은 중동에 가깝지만 아시아 지역에 포함되어 비교적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이집트에서 2012년에 일어난 난동 장면이다. 그동안 주축이었던 유럽과 남미 중심의 대형 참사가 가나에 이어 이집트까지 아프리카로 옮겨간 느낌이다. 2012년 2월 1일, 이집트 북동부의 항구도시 포트사이드에서 열린 엘-마스리와 엘-아흘리의 프로리그 경기에서 양 팀 팬들이 집단 난투극을 벌였다. 원정팀 알-아흘리의 팬들은 수적 불리함을 커버하고, 기에서 눌리지 않기 위해 여러 가지 독한 서포팅을 구상했는데, 그 중 하나가 상대 팀 엘-아흘리를 비하하는 다소  모욕적인 현수막을 내걸어 경기 전부터 험악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경기 중에는 사소한 충돌이 있기는 했지만 큰 충돌 없이 경기는 종료됐다. 그러나 경기 결과 홈팀 엘-마스리의 승리(3-1)를 두고 양 팀의 서포터 간에 입씨름 벌어졌고, 이는 삽시간에 집단 패싸움으로 번졌다. 이 사고로 무려 79명의 사망자와 1,00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는데 외신에서는 이례적으로 ‘참사(Disaster)’ 대신에 ‘충돌(Crashes)’이라는 용어로 기록되었다.

 

<2012년 집단 난투극으로 1천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이집트 포트사이드 참사>


http://www.nationalturk.com/en/port-said-stadium-clashesegypt-court-confirms-21-port-said-death-sentences-middle-east-news-35181
http://www.standard.net/stories/2012/02/01/egypt-soccer-fans-rush-field-after-game-73-de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