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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체육이야기/[ 전문체육 ]

마라톤 영웅들의 또 다른 스토리 ‘규범성’ -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

 

 

 

글/ 윤동일 (국방부)

 

 

               하나 뿐인 목숨을 걸고 하는 고대 검투사들의 ‘토너먼트(tournament)’나 중세 기사들의 마상창시합 ‘쥬스팅(jousting)’, 미국 서부 개척 당시 일대일의 ‘결투(duel)’도 있기는 했으나 일반적인 스포츠는 전장의 상황을 가정하더라도 생명을 걸지 않고, 서로의 힘과 체력 그리고 기예를 견주는 것으로 승부를 판가름해 보는 것이다. 무예의 실력을 규칙에 따라 간접적으로 견주어 보고 그 결과에 승복한다. 스포츠가 무예를 대신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간접적인 투쟁이기 때문에 무예처럼 곧이 곧대로 승복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여러 가지 규칙들을 정해 놓고 결과에 승복하도록 강요하게 되는데 그것이 스포츠맨십이다.

 

더 간단히 말하면 졌으면 졌다고 깨끗이 승복하고 물러나라는 말이다. 물론 무예에서는 그러한 용어가 필요치 않다. 왜냐하면 목숨은 하나 밖에 없고, 단판 승부이기 때문이다. 죽은 자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따라서 패장의 변명은 진 것보다 더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겼다. 결국 스포츠에서 승패는 곧 생사와 직결되는 전쟁에서처럼 승복해야 하는 절대적 속성을 갖는다. 스포츠에서 절대승복 해야 것은 결과만이 아니다. 엄정한 규칙도 마찬가지다.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이변이라면 세계적인 톱스타들의 몰락을 들 수 있다. 매일 진행되는 경기의 일정을 알리는 팜플렛의 표지 모델은 그날 주요 경기의 우승후보가 표지모델로 등장하는데 많은 선수들이 고배를 마셔야 했다. 매스컴에서는 “데일리 프로그램의 저주”라고 불렀는데 첫날 남자 장대높이뛰기의 ‘스티브 후커’로부터 남자100미터의 ‘우사인 볼트’, 남자110미터허들의 ‘로블레스’ 그리고 여자장대높이뛰기의 ‘이신바예바’에 이르기까지 매일 표지모델로 올랐던 선수들이 줄줄이 떨어졌다. ‘라이트닝 볼트’로 불리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우사인 볼트는 새로 적용된 규칙 때문에 실격하여 경기조차 뛰지도 못했다. ‘부정출발’로 결승전에서 아예 제외되었다. 우리나라 김국영 선수도 마찬가지다. 번개처럼 빠른 그에게 기록상 대적할만한 상대도 없었는데 신기록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찰라의 순간에 스타팅블록을 박차고 일어서는 바람에 실격되었다. 이전에는 두 번까지 부정출발(2 false starts)이 허용되었다가 워낙 경기가 지연되는 문제가 있어 규칙을 바꿔 2001년에는 한 번으로 줄었다. 한 선수가 부정출발하면 경고로 그치지만 다음엔 그 어떤 선수의 부정출발도 허용되지 않는다(straight red rule). 그러자 스타트 느린 선수들이 의도적으로 스타트가 빠른 선수들에게 심리적 압박을 주기 위해 부정출발을 악용하는 사례가 발생하자 다시 규칙을 개정하게 되었다.

 

2010년부턴 단 한 번이라도 부정출발을 하는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즉시 실격 규칙(instant dis-qualification rule)’을 도입하였다. 물론 이 규칙은 선수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했고, 경기력 향상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대구 대회 이후 폐지되었다. 남자 110미터 허들의 강력한 우승후보 쿠바의 로블레스는 결승점을 통과한 뒤 멋진 세러모니를 했지만 허들을 넘으면서 라이벌 중국 류상을 방해한 것으로 판정되어 금메달을 박탈당했다. 허들경기는 1미터가 조금 넘는 허들(정확한 허들의 높이는 1.067미터이다.)을 넘어뜨려도 규칙위반은 아니다. 그러나 허들에 닿는다면 달리는 순간 속도는 떨어지기 마련이다. 특히, 리듬과 균형을 잃어 달리기 연속된 템포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회복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대부분의 트랙경기에 적용되는 규칙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경쟁자 보다 앞서기 위해 상대를 밀치거나 진로를 방해하는 행위를 실격으로 규정하고 있다. 로블레스의 금메달 박탈은 소위 ‘rule 163.2’로 불리는 규칙에 적용된 것이다.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100미터에서 단 한 번의 부정출발로 실격된 우사인 볼트와 김영국 선수는 경기에 출전조차 하지 못했다.


 

스포츠에는 경기규칙 말고도 도핑(doping)으로 알려진 약물복용 금지 규정도 준수해야 한다. 도핑은 운동선수가 일시적으로 경기 능력을 높이기 위하여 흥분제 · 호르몬제 등의 약물을 복용하는 것으로 건강을 해치고 스포츠 정신에도 위배되기 때문에 각종 경기연맹에서 금지하고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남자 100미터 경기는 미국의 인간탄환 ‘칼 루이스’와 캐나다의 마하인간 ‘벤 존슨’의 세기의 대결로 세계적인 관심이 집중되었다. 결승전에서는 벤 존슨이 9.79초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내며 우승하였으나 경기 종료 후 실시된 도핑테스트에서 금지약물을 복용한 사실이 드러나 금메달이 박탈되었고, 2년간 국제대회 출전 자격이 정지되었으나 이후에도 약물에 의존한 것이 밝혀지면서 더 이상 그의 질주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사실 올림픽사(史)에서 있어 금지약물 복용에 대한 규제는 예상한 것 보단 그 역사가 오랜 편이다. 1960년 로마올림픽 사이클 100km 도로경기에서 덴마크의 ‘크루트 젠센’이 각성제 암페타민을 과다 복용하여 사상 최초로 약물 중독에 의한 사망사고가 발생하였다. 이 충격으로 덴마크 사이클 선수단은 남은 경기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복귀하였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금지약물을 규정하고, 이를 복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1972년 삿포로동계올림픽부터 도핑테스트를 실시하였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미국의 여성육상 스타 메리언 존스는 3관왕에 올랐지만 약물복용으로 메달이 박탈되었고, 법정 위증 혐의로 수감되기까지 했으며 2008년 베이징올림픽 공기권총에서 은‧동메달을 딴 북한의 김정수 선수 역시 메달을 반납해야 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100미터 결승에서 제일 먼저 결승점을 통과한 벤 존슨은 경기 후 도핑테스트에서 금지약물 복용으로 실격 처리되었다.

2004년 올림픽 우승과 1999∼2005년까지 투르드프랑스에서 7회 연속 우승한 랜스 암스트롱은 오랜 법정공방 끝에 모든 성적이 박탈되었다.

 

과학의 발전과 함께 선수들의 도핑 추세는 날로 지능화되어 가고 있고, 반대로 이를 밝히고자 하는 도핑테스트 역시 올림픽이 회를 거듭할수록 횟수와 범위가 함께 증가하는 추세다. 2013년 초부터 세계 스포츠인 아니 세계인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준 사건들이 이어졌다. 2월 중순, 여자친구 살해 혐의로 기소된 남아공 출신 의족 스프린터 피스토리우스 소식이 전해졌는데 개인적으로 이보다 더 충격적인 사건은 암과 투병하면서도 ‘사이클 황제’로 칭송되는 전설적인 체육인의 몰락이었다. 이 사건은 세계적인 프로 로드 사이클 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le Tour de France)’에서 1999년부터 2005년까지 7년 동안 역대 최다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는 랜스 암스트롱(Lance Armstrong)이 그동안 제기된 금지약물 복용을 시인하면서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투르 드 프랑스는 한 신문기자의 아이디어로 1903년에 시작하여 100년이 넘은 유서 깊은 대회로 프랑스 전역을 일주해 우승자를 가리는데 일부 경기는 이탈리아, 독일 심지어 영국이나 아일랜드에서도 거행될 정도로 인기 있는 대회이다. 무려 3천km 이상의 거리를 시간당 평균 30∼40km의 속도로 3주 동안이나 달려야 하다 보니 구간 중 많은 오르막은 물론이고, 산악을 넘어야 하는 등 고통과 인내가 요구되어 참가자의 15∼20%가 포기하는 극한의 스포츠로 알려져 있다. 암스트롱은 1996년 고환암과 세포종양의 전이로 수술과 재활을 통해 심각한 고통을 이겨내고, 1999년부터 출전한 투르 드 프랑스에서 그가 이룬 위대한 업적은 2010년부터 팀 동료의 고발로 제기된 의혹은 2012년 8월 법정공방을 포기했고, 그 결과 1998년 8월부터 대회에서 세운 모든 성적이 박탈되었으며 미국반도핑기구(USADA)에서도 영구 제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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