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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체육이야기/[ 전문체육 ]

고대올림픽 종목에 대한 고찰 : 4. 격투경기(1)

 

 

글/ 윤동일 (국방부)

 

              격투경기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당연 전투(승패를 좌우하는 최종 단계의 전투 행위)와 직결되는 스포츠로 가장 전투적인 성향이 강한 종목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실전에서는 대적한 개인 간의 승패가 전투의 승패로 이어지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한다. 물론 개인의 승리가 전체 전투의 승리를 보장한다고 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고대의 근육전쟁(Muscle War)의 전투양상 일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그리하여 일단 개인 간의 결투에서 이긴다는 것은 전체 전투에서 승리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인 격투경기는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개인이 휴대한 무기를 가지고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양방이 서로 무기 없이 맨손으로 하는 유형으로 이들은 전투의 백병전(白兵戰, Dog Fighting) 상황을 가정한 종목들이다. 전자에는 검도나 펜싱과 같은 경기가 있다면 후자에는 레슬링, 권투, 유도, 태권도 등 맨손의 격술(擊術)이 있다. 고대 올림픽에서는 당시의 백병전을 흉내 낸 3종류의 시합이 있었는데 모두 두 번째 유형에 속하는 것들이었다. 붙잡은 상대를 힘과 기술을 이용해 땅바닥에 매치거나 밀어붙이는 레슬링과 상대를 오로지 주먹에 의한 가격만으로 굴복시키는 권투, 그리고 두 종목의 경기방식을 혼합한 판크라티온이 그것이다.

 

 

 

 

가. 레슬링(Pale, Wrestling)

 

2명의 경기자가 일정한 규칙 아래 서로 상대방을 넘어뜨려 상대방의 어깨를 동시에 매트에 닿게 하면, 이기는 경기

 

레슬링은 복싱과 함께 기원전 688년 제23회 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행해졌으나 기원전 708년 제18회 대회부터 이미 5종 경기의 일부로 행해졌다. 5종목 가운데 유일하게 상대 선수와 직접 힘과 기교를 겨루는 격투경기인 레슬링은 달리기를 비롯해 다른 4종목의 경기 결과를 합산해 가장 우수한 두 선수를 선발하고, 마지막 순서에 레슬링 경기로 최종 승자를 결정했을 정도로 가장 중요한 종목으로 간주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레슬링 우승자는 당시 국가와 사회의 영웅으로 간주됨은 물론이고, 심지어 악(惡)을 징벌하고 선(善)을 행하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신(神)과 동일시[각주:1]되었다. 그러다 보니 전해지는 신화도 많은 편이다. 특히, 레슬링의 창시자로도 추앙되는 헤라클레스(Hercules)는 곤봉과 화살을 이용해 사자를 죽이려 했지만 그것들이 사자의 단단한 가죽을 뚫지 못하게 되자, 맨손으로 사자를 땅에 매친 후 조르기로 제압해버렸다는 ‘네메안(Nemean) 사자와 격투’는 유명하다.(아래 2번 사진 참조)

 

레슬링의 경기 방식은 오로지 상체만을 공격하는 그레코-로망(Greco-Roman) 방식의 경기만 행해졌는데 후기에 이르러 서서 하는 경기와 땅에 몸을 붙인 상태로 하는 그라운드 경기 방식이 병행되었다. 서서 하는 경기는 허리 아래를 공격할 수 없었고, 그라운드 경기는 하체만을 활용하도록 하는 제한을 두었다. 전자는 구덩이를 파고 거기에 모래를 채운 경기장에서 행해졌는데 어느 일방이 패배를 인정하거나 기권하는 것으로 승부를 결정했다. 경기의 승부는 경기자가 검지나 중지를 들어 올려 심판이 볼 수 있도록 보여 줌으로써 패배를 인정하거나 기권 의사를 표현했으며 경기가 끝난 후에는 심판이 승자의 오른손을 들어 선언했는데 이런 행위는 고대의 격투종목에 보편적으로 적용되었으며 그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일종의 의식이 되어 버렸다.

 

후기에 들어서는 상대를 땅에 내던져 세 번의 폴(Fall, 상대의 어깨를 땅에 닿는 행위)을 얻는 것으로 변경되기도 하였다. 경기의 규칙은 권투와 레슬링을 합친 판크라티온(기원전 648년 제33화 대회에서 처음 개최되었음)과 유사하지만 다소 차이가 있었다. 레슬링에서는 판크라티온과 마찬가지로 손가락으로 눈을 찌르거나 이빨로 깨무는 행위는 허용되지 않았고, 주먹질은 금지되었으며 신체 부위 가운데 성기를 잡는 행위는 허용되지 않았다. (판크라티온의 규칙에 대하여는 다음 연재 내용을 참고하기 바람.)

촉촉한 흙 위에서 행해진 그라운드 경기는 앞서 언급한 헤라클레스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라운드 기술에 정통했던 선수는 포세이돈의 아들인 거인 ‘안타이오스(Antaios)’ 였는데 상대를 땅바닥에 던져서 자신의 육중한 몸으로 상대를 덮쳐 죽일 정도로 막강했다. 그라운드 기술에 대한 그의 특별한 능력은 그의 어머니가 대지의 여신, ‘가이아(Gaia)’였기 때문에 땅으로부터 얻어진 것이다. 즉, 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 한, 그의 힘은 약해지지 않았고,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 강해져 대적할 적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안타이오스의 허실을 잘 알고 있는 헤라클레스와의 결전은 양상이 달랐다. 결국 헤라클레스는 안타이오스의 허리를 잡아 공중으로 들어 올려서 힘의 원천인 땅(가이아)으로부터 분리시킴으로써 힘을 소진시킨 후, 목을 졸라 죽여 버렸다. (아래 네 번째 사진 참조) 이런 기술은 오늘날까지 전해져 여전히 유용한 기술이다.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고대 격투경기는 중량에 대한 규제가 없었기 때문에 일단 체격이 클수록 유리4)했고, 체력적인 조건이 겨뤄볼 수준이 된다면 기술력 또한 중요한 요인으로 간주되었다. 그리하여 그리스인들은 레슬링을 ‘가장 기술적이고, 교묘한 스포츠’로 인식하였다.

 

 

 1.                                                                                 2,                                         3.

1. 상체만을 공격하는 그레코-로만스타일 레슬링 경기 장면  

2. 사자를 바닥에 매친 후, 목 조르기로 제압하는 헤라클레스 있다.  

3. 그라운드 기술에 능통한 안타이오스의 강점을 원천봉쇄 하기 위해 허리를 잡아 들어 올리는 헤라클레스

 

 

 

 

ⓒ 스포츠둥지

 

 

 

  1. 레슬링을 포함한 당시의 격투경기는 오늘날처럼 체급에 대한 규정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선수들의 체격조건은 경기 승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고, 이것이 보통 사람을 능가하는 초인적인 신체를 만들었다는 관점에서 종종 신의 이미지에 비유되었다. 이와 관해서는 다음 연재에서 내용을 참조하기 바란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