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이기원 (스포츠둥지 기자)
“완벽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 노력할 뿐이지 감히 저는 완벽한 지도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최고의 지도자로 우뚝 서기 위한 포부와 함께 끊임없이 배우려는 곧은 마음가짐이 묻어난다. 대한민국 펜싱의 ‘마에스트로‘ 심재성 코치(46). 그가 프랑스 유학시절 배운 ‘10분 지도자’ 철학과 ‘단순함에서 복잡함, 복잡함에서 단순함으로 가는 길‘ 의 의미는 무엇일까. 프랑스 스포츠에서 우리나라가 배워야 할 점과 그가 가진 지도철학을 들어봤다.
런던올림픽 펜싱 국가대표 심재성 코치 인터뷰 모습 ⓒ 이기원
▶ 1993년도에 프랑스 펜싱 클럽(A,S Montigny)코치를 하면서 국내 최초로 프랑스 국립 펜싱 지도자(C,N.F.E)학교를 졸업했는데 프랑스의 체육환경은 우리와 어떤 부분이 다른가요?
유럽은 펜싱이 아니라도 다양한 종목의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우리와 다른 것 같아요. 스포츠클럽이 활성화되어 있거든요. 누군가 펜싱은 우리나라에서 생활체육이 될 수 없다고 한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되물었는데, “배우고 싶어도 선수 말고는 가르치는 곳이 없다”는 게 이유였어요.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죠. 클럽이 활성화 되어 있으면 재미와 건강을 위한 생활체육으로도 펜싱을 하다가 선수가 하고 싶으면 엘리트 체육으로 전향하면 되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인프라가 없기 때문에 어려운 게 사실이죠. 이게 우리나라의 체육환경입니다.
반면에 프랑스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클럽이 많아요. 펜싱의 경우 클럽을 운영하고 싶으면 동네 체육센터를 사용할 수가 있죠. 모든 스포츠 종목에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체육센터에 펜싱교실을 연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요. 수영과 헬스처럼 인기프로그램들만 운영되고 있죠. 그런 제도가 다른 것 같아요.
▶ 국내 펜싱 지도자가 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나요?
펜싱협회는 일 년에 한 번 지도자 강습회를 합니다. 긴 기간은 아니지만 이 과정을 이수하게 되면 현장에서 선수들을 지도를 할 수 있어요. 과거엔 선수생활을 오래 하다 그만두면 쉽게 지도자가 될 수 있었죠. 그래서 지도자들의 지도력은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이 없었어요. ‘선수시절에 잘 했던 사람이 잘 가르치겠지’ 하는 주먹구구식의 사고방식도 있었고요. 이 때문에 지도자들의 질적인 부분이 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자격제도를 통해 검증받지 못한 일선 지도자의 처우도 열악했었습니다.
학교 체육교사들은 임용고시를 거쳐 자격을 받게 되죠. 요즘 경기지도자나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제도가 정착화 되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 과정이 더욱 전문적으로 보완되고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스포츠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이론과 이수 후 일정 기간 팀이나 클럽에서의 지도연수 과정을 포함 하는 것이죠. 그렇게 된다면 어려운 과정을 이수한 지도자들에 대한 대우도 나아질 거구요. 여러 스포츠 협회나 정부차원에서 이런 부분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습니다.
▶ 지도자를 꿈꾸는 선수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프랑스 유학시절 제게 영향을 줬던 한 선생님이 있어요. 그 분이 하셨던 말이 너무 마음에 와 닿아 잊을 수 가 없습니다. 지도자가 운동 시작시간에 정확히 훈련장에 도착하면 ’공무원‘ 이다. 운동 시작 10분이 지나서 훈련장을 찾는 지도자는 ’나쁜 지도자‘ 라고. 선수보다 10분 먼저 훈련장에 나와 준비하는 지도자야 말로 ’진정한 지도자’ 라고 했습니다.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의 마음가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거죠.
실제로 선수들을 지도하다보면 다양한 기술적 심리적 문제가 나타납니다. 이를 좋은 방향으로 해결할 수 있게 돕는 것이 바로 지도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행여 자신이 그 문제를 모두 풀어나가지 못하더라도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해법을 찾고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지도자가 되기 위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신아람 선수도 지도자가 되겠다고 한 적이 있나요?
본인은 농담조로 자기는 못할 것 같다고 해요. 하지만 그 친구(신아람 선수)는 창의성이 상당히 뛰어나요. 그런 면에서 보면 지도자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그런 부분을 판단할 수는 없어요. 지도자의 자질은 배우며 만들어 질 수 있으니까요.
▶ 운동선수와 지도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교육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국제대회에 나가는 운동선수나 지도자들에게 기본적인 외국어 교육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각국의 지도자와 선수들이 모여 경험을 나누고 배우는데 언어가 통하지 않으면 소통을 할 수 없죠. 사람들은 대화를 하지 않으면 상대의 생각을 알지 못하자나요. 지도자의 외국어능력이 조금 보완된다면 국제무대에서 더 많은 교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면에서 재단의 외국어연수과정은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2006년 대한체육회에서 진행된 스포츠 외교과정을 이수했습니다. 우리나라 스포츠 외교 인력 양성을 위한 취지였죠. 스포츠 외교관이 되기 위해 필요한 내용, 영어와 인성 등을 공부했습니다. 당시 스포츠 외교에 열정을 가지신 교수님들, 스포츠 단체 국제 업무 담당 직원, 또 각 종목 지도자분들과 함께 1기로 참여해 많은 걸 배운 것 같습니다.
▶ ‘공부하는 학생선수‘ 어떻게 생각하나요?
가장 이상적인 것이 공부와 운동 이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것이겠죠. 사실 저는 운동을 잘하는 선수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요. 운동을 잘 하는 선수들은 공부에 흥미를 가지게 되면 엄청난 집중력을 보이거든요 학생 때부터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해요. 그런 면에서 재단(체육인재육성재단)의 ‘공부하는 학생선수‘ 모토는 운동선수들의 부족했던 부분을 현실성 있게 잘 적용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선 ‘운동하는 사람은 머리가 나쁘다’라는 인식이 있어요. 우리나라 스포츠계가 풀어 나가야 할 숙제이긴 합니다. 운동선수가 학창시절 공부하는 시간이 부족한 경우, 일반상식이나 기초학업능력이 부족한 경우는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경기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전략을 구사하고 승리하기 위해 엄청난 두뇌회전을 하는 일은 결코 머리가 나쁘면 할 수 없는 일이죠.
▶ 우리나라 스포츠 외교인재 양성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요?
스포츠 외교 인력이 부족한 원인 중 하나는 관련 인재의 스포츠 경력과 지식수준의 불균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공부하는 사람은 공부만, 운동하는 사람은 운동밖에 못하는 것이 아쉬워요. 학교생활에서 스포츠를 등한시 하는 것 분위기도 문제죠.
학생선수들 뿐만 아니라 다양한 꿈을 가진 많은 공부하는 학생들이 스포츠와 학업에 대한 흥미를 동시에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학생시절 스포츠를 즐기게 되면 선수가 세계수준의 경기력에 도달하기가 얼마나 힘든가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고, 스포츠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서는 지식수준도 높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되는 거죠. 학문과 스포츠 두 분야에서 인재를 고루 양성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 선수들이 운동을 포기하거나 좌절할 때 어떻게 동기부여를 하나요?
경기 중간 지점에 조금 앞서있다고 가장 먼저 결승점을 지나는 건 아니자나요. 선수들이 목표를 버리지 않도록 격려합니다. 열심히 했는데도 성과가 나지 않는다면, 다른 진로를 찾을 수 있게 응원해요. 그동안 열심히 해왔던 걸 포기하는 것도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껏 해왔던 노력을 새로운 것에 기울인다면 꼭 성공할 수 있다고 격려하죠.
제자들에게 체육인재육성재단이나 대한체육회에서 진행하는 은퇴선수 프로그램을 잘 활용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운동을 일찍 그만둔 선수들은 이런 프로그램을 잘 활용해요. 하지만 30대가 넘는 직업운동선수들은 그렇지 못한 편입니다. 운동을 그만두게 되면 경제적 바로 어려움과 직면하기 때문에 유학을 간다거나 1, 2년을 교육에 투자한다는 것은 어렵죠. 어릴 때부터 운동선수로서 은퇴 후의 목표를 잡을 수 있도록 돕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개인 홈페이지에 "펜싱은 단순함에서 복잡함으로 가는 길이다. 이는 최고 완성의 순간에서 다시 복잡함에서 단순함으로 되돌아오고자 함이다". 라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요?
프랑스의 한 검술가가 쓴 글입니다. 펜싱경기에서 가장 처음 배우는 상대를 찌르는 기술은 참 단순해요. 그냥 찌르는 거죠. 처음 배우는 사람은 서로 그것만 해요. 근데 이게 너무 단순해서 어느 정도 지나면 상대에게 다 막히게 돼있어요. 그래서 한 번 돌아가고 두 번 돌아가고, 예비동작도 넣고 하면서 동작이 계속 복잡해지죠.
그 경지에 오르면 이젠 굳이 필요 없는 동작들은 하나둘씩 빼게 되요. 결국 아주 잘하는 선수들은 단순한 동작으로 상대를 제압하죠. 펜싱에서는 아주 단순한 것이 완벽한 것이죠.
▶ 나에게 펜싱이란 삶이다.
펜싱은 제게 삶이예요. 인생을 배우고 있습니다. 세계랭킹 1위의 선수도 30위 선수에게 질 수 있죠. 런던에서의 신아람 선수 경우와 같이 판정 하나로 울고 웃는 상황도 일어납니다.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많지만 이를 통해 기쁨과 배움을 얻습니다.
마에스트로(maestro).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나 명장을 지칭하는 말이다. 음악에서는 다양한 악기의 연주자를 이끄는 명지휘자를 부를 때 사용한다. 심재성 코치는 런던올림픽 ‘1초 오심’에는 유창한 외국어로 대한민국의 목소리를 보여줬다. 오심에 울었던 신아람 선수를 격려해 단체전 은메달과 함께 웃음을 찾을 수 있게 도왔다.
오케스트라의 ‘마에스트로’는 어떠한 상황에도 끝까지 연주를 잘 마칠 수 있게 이끌어야한다. 대한민국 펜싱의 ‘마에스트로’ 심재성. 그가 보여준 펜싱연주는 국민 모두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 스포츠둥지
스포츠 지도자. 심재성의 생각<1> http://www.sportnest.kr/1536
심재성의 펜싱이야기 홈페이지 http://user.chollian.net/~monch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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