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오화석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어린 시절, 5시가 되면 공영방송 채널에서 방영하는 어린이 프로그램을 매일 시청했다.
작은 코너중의 하나로 인형극이 있었는데 대개는 권선징악이 그 테마였다. 악당의 무리를 맞서 싸우는 우리의 주인공은 대개 잘생기고 태권도를 특기로 하는 멋쟁이 소년으로 그려졌다. 어느 날 우리의
주인공과 악당이 권투 대결을 하게 되었다. 악당은 글러브 안에 돌을 넣어 우리의 주인공을
KO 시켰다. 나중에서야 이런 ‘불공평함’ 이 우리 편 탐정의 탐문수사로 밝혀진다.
성인이 되어 상식선으로 생각한다면, 돌을 넣은 선수도 주먹이 아팠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린 마음에 악당에 대한 분노가 있음에도 화면 안으로 들어가 때려줄 수도 없는 상황에 발만 동동 구르던 시절이 있었다.
이게 일상에서 없으라는 법은 없다. 실제 프로복싱 세계챔피언 출신인 한 미국선수는 작년에 글러브 안에 이물질을 넣었다는 혐의로 미국 주(state)경기위원회의 제재를 받았다. 필자는 필리핀 세부에서 열린 한국선수의 프로복싱 원정경기에 세컨드(second)로 참가하였는데, 상대 선수의 붕대를 감는 전 과정을 감시하게 되었다. 붕대를 감는데도 양측 세컨드의 신경전은 대단하다. 붕대를 감기 전에 피부에 반창고를 붙이는데 반창고를 붙이는 면적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고성이 오가기도 한다. 상대선수는 흰 붕대를 감기 전에 너클파트를 보호하기위하여 노란색 붕대뭉치를 너클파트위에 덧대었다.
본 경기에서 필자가 속한 한국선수는 2회전에 눈을 맞아 결국 ko 패를 하였는데, 유난히 너클파트가 얇기로 소문난 멕시코제 명품 글러브를 서로 끼고 한 경기라 왠지 그때 그 감독할 때의 마(麻) 같기도 한 붕대뭉치가 마음에 걸린다. 만약 평소에 부드럽다가도 물을 먹으면 단단하거나 딱딱해진다면, 예전 인형극 속에서 악당이 글러브 속에 넣은 돌과 유사한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아마 필자가 가장 최악의 경우까지도 상상하는 법률가의 길을 준비해서 나타나는 직업병일 수도 있다.
스포츠는 lex sportiva (스포츠 법률), 혹은, field of play 로 사적자치를 우선시한다. 최근 법무부 홈페이지에서는 프로야구 이종범선수의 사과사건의 전모에 대한 법적해석을 내놓았다.
결론은 경기장에 있었던 일은 경기장내에서 해결하라는 식이다. 그런데, 이종범 선수에게 칼을 던졌다면 법무부를 포함한 사정당국이 뒷짐 지고 있었을까?
그냥 350ml 의 캔 맥주는 무게가 400g 안팎이었겠지만, 아인슈타인의 중력가속도 법칙에 의해 E=mc2 즉, 던지는 사람의 가속도의 제곱에 무게가 곱해져 선수에게는 힘으로 가해진다. 물리의 제3법칙에 따라, 작용, 반작용의 법칙까지 더해지면, 그 힘은 배가가 된다. 즉, 선수가 공을 따라가기 위해 스스로 힘을 가하여 가는 방향에서 날라 오는 캔 맥주를 맞으면, 자기가 가한 힘만큼, 이미 날라 오고 있던 캔 맥주에 더해진다. 물론 현실에서는 공기 저항에 의해 에너지가 보존되지 않고, 에너지양이 떨어지지만, 이종범 선수에게 가해지는 캔 맥주의 힘은 상황에 따라 100kg이상으로 가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초속 10M/s 로만 던져도 캔 맥주의 에너지는 40kg이고, 이종범 선수가 자기 체중 60kg를 이동시키는 에너지로 달려가고 있었다면, 100kg에 해당한다)
그래서 나는 lex sportiva (스포츠 법률)에 반대한다. 자정능력이 없는 스포츠의 불공평함은 외부의 메스가 필요하다. 한국의 프로복싱계도 결국 스스로 법의 심판대에 섰고, 오늘자 신문에서는 우리
마라톤 선수들이 조혈제를 맞고 경기에 임했다고 한다. 필자는 작년에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조직위원회에 인턴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우연히 지역체육계의 소식을 통해 도핑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도핑은 영혼을 갉아먹는다. lex sportiva (스포츠 법률) 스스로 도핑을 선택하는 일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한 삶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원인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이제 대구세계육상이 한 달 남짓 다가오고 있다. 88서울 올림픽 중에 기억하는 사건가운데, 벤 존슨의 약물복용으로 인한 금메달 박탈사건이 있다. 우리나라 선수도 아닐 진대, 자칫 서울올림픽의 성공적인 이미지에 지대한 손상을 가할 수도 있는 사건이었다. 달구벌에 전세계 선수들이 경연을 펼치는 자리에서 개최국 출신선수의 메달과 성적도 간과할 수 없는 요소이지만 당장 보이지는 않더라도 더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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