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학수(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연구소장)
국가대표 개념과 인식의 틀 깨져
국가와 애국심. 누가 이 정의로운 개념에 이의를 달 수 있었을까. 국가주의에 도전하고 애국심이 흔들리는 국가대표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들이라면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에 대한 헌신과 봉사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은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태릉훈련원에 입소하는 순간부터 태극기에 엄숙한 예를 표하고 애국가를 불러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자 책무였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 중요 국제대회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하는 것은 개인의 영광이면서도 국위를 선양하는 가장 확실한 일이었다. 금메달을 딴 뒤 시상대에서 태극기가 올라가고 애국가가 울려퍼질 때 눈물을 흘리며 가슴 벅차하던 국가대표의 모습은 국민들에게 뜨거운 국가애를 느끼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한국의 국가주의와 민족주의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강렬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일제 식민지배와 해방, 분단과 전쟁의 아픔 등으로 파란만장한 질곡의 역사를 거쳤기 때문이다. 외세의 지배를 다시 받지 않기 위해서 민족이라는 이름아래 하나로 뭉쳐야했고, 북한 공산주의의 위협과 예측할 수 없는 국제경쟁에서 버티기 위해선 국가의 정체성을 확고히 세워야 했던 것이다.
국가주의와 민족주의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던 곳은 스포츠였다. 국가대표라는 이름을 갖고 말이다. 한국 스포츠는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전에 이미 대한올림픽위원회(KOC)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정식 가맹국으로 가입해 런던올림픽에 국가대표를 출전시켰다. 이례적으로 스포츠조직체가 국가탄생보다 앞선 경우였다. 해방이후 첫 국가대표들이 참가한 1948년 런던올림픽은 신생국인 대한민국이 전 세계에 국가의 탄생을 알리는 신고식이었다. 당시 대한민국 선수단의 모습은 유일하게 취재진으로 참가한 서울중앙방송 아나운서 민정호의 라디오 방송멘트를 통해 잘 알 수 있었다.
“런던 하늘에 태극기, 선수들 앞에도 태극기, 이 넓은 스타디움엔 10만이 넘는 사람들이 가득하건만 저 태극기를 눈물을 머금고 바라보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인가. 태극기도 입이 있어 말을 한다면 우쭐거리고 춤을 추면서 파란 많은 지난날을 눈물로 독백 하리라·…”(김광희, 2001 여명)
당시의 해방세대는 국가의 상징인 태극기를 보면서 민족의 감성과 정서를 확인하고 느낄 수 있었다.
런던 올림픽을 시작으로 지난 수십년간 많은 국제 스포츠무대에 출전한 대한민국 선수단은 학‧지‧혈연, 빈부의 차이, 이념과 정서로 나뉘고 갈등을 빚은 국민의 몸과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대표적인 정신적 상징물이었다. 국가대표만큼 국민의 밤잠을 설치게 하고 큰 감동과 기쁨, 안타까움과 슬픔 등 격정적인 감성과 정서의 순간들을 안겨준 것이 과연 있을까.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레슬링의 양정모가 건국이후 첫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을 때, 전 국민은 마치 자신이 메달의 주인공이 된 마냥 좋아하고 환호했다. 1984년 LA올림픽에서 양궁 2관왕을 차지한 10대 소녀궁사 서향순이 “엄마, 나 예뻐”라며 앳되고 귀여운 모습으로 인터뷰하자, 그를 ‘국민의 딸, 국민의 여동생’으로 부르며 사랑을 듬뿍 주었다. 이념과 체제의 장벽을 넘어 세계 평화의 제전이 된 19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종합 성적 세계 4위를 차지한 것에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를 가슴속에 깊이 새기기도 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선 ‘몬주익 영웅’ 황영조가 일본 선수를 물리치고 일제시대인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우승한 손기정 이후 56년만에 마라톤 세계 제패의 꿈을 이루면서 온 국민을 감격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 축구대표선수들이 승승장구하면서 꿈만같은 4강에 오르자, 5천만 국민이 태극전사가 돼 길거리 응원에서 ‘오~필승 코리아’, ‘대한민국~짝짝짝’을 소리쳐 외쳤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쇼트트랙에서 안현수가 3관왕에 등극할 때도 우레와 같은 갈채와 환호를 보냈으며,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서 김연아가 그림같은 예술적 연기력으로 '올림픽의 꽃‘이라는 피겨스케이팅서 당당히 금메달을 획득하고, 이상화, 모태범, 이승훈 ’빙속 트리오‘가 스피드 스케이팅서 나란히 금메달을 추가하자 ’동계스포츠 강국‘ 한국의 변화된 모습에 자랑스러워했다.
예전 식민지배의 영향으로 한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한 한국계 이민 후예인 전 미국 수영 국가대표 다이빙 선수 세미 리와 일본에서 활동한 재일동포 출신의 전설적인 야구 스타 장훈의 활약상도 한민족의 우수성과 탁월성을 입증해주는 본보기로 삼기에 충분했던 것이었다.
국가대표와 한국을 빛낸 해외속의 한국인에게 관심이 모아진 것은 이러한 관심이 국가와 민족의 통합적 기능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 사회적으로 다양한 의견을 공론의 장으로 전환시키는 정부, 언론, 정치, 국민 여론 등은 스포츠에서는 국가대표가 내세울 수 있는 이념과 가치로서 국민통합적 요소에 주목, 이를 널리 전파하는데 주력하는 것은 현대 국가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개념화한 공론장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교환하고 설득할 수 있는 기제, 타인의 낯선 생각을 접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성찰의 기회는 여러 형태의 통신과 의사를 공유하는 교통과 정보, 신문, 출판, 인쇄, 살롱, 커피 하우스 같은 공론장에서 생긴다는 사실은 사회 변혁에서 매우 커다란 의의를 지닌다. 국가대표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공론장이 국가주의, 민족주의 담론 일색으로 채색된 것은 한국이 갖고있는 역사적, 지리적, 환경적인 영향이 크게 작용했으리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게 유추해 볼 수 있다. 과거의 역사가 국가와 민족에 대한 맹목적인 헌신과 봉사의 이념을 주입시켰으며, 일본, 중국, 러시아에 둘러싸인 지리적 환경과 국제 관계도 순혈주의를 넘어 국수주의마저 느끼게 하는 국면을 형성케했다.
하지만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새로운 영웅으로 떠오른 빅토르 안, 안현수의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기존의 국가대표 패러다임 인식의 틀도 큰 변화를 맞을 수 밖에 없게되리라는 생각이다. 한국과 한국민도 변했고, 세계와 세계인도 변했다. 국가가 불러주지 않으면, 원하는 국가를 스스로 찾아다니는 시대가 됐다. 정치인이든, 경제인이든 문화인이든, 스포츠인이든 모든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대적 현상이다. 디아스포라(DISAPORA), 그리스어로 ‘흩어진 사람’이라는 이 말이 전혀 낯설지 않는 것이다. 프로 스포츠가 주도하는 미국 스포츠 MLB, NBA 등은 국적을 바꾼 ‘멀티 내셔널 플레이어’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으며 아마추어 무대인 올림픽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은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빅토르 안을 ‘프리랜서 올림피안’,‘올림픽 유목민’이라고 부르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빅토르 안은 시대적 변화의 양상을 잘 드러내 보인 예이다. 이제는 개인이 국가보다 앞서며, 국가는 개인을 빛내는 하나의 상징적 제도이자 기구로 존재한다고 말 할 만도 하겠다.
(3편에서 계속: http://www.sportnest.kr/2026 )
ⓒ스포츠둥지
'체육인재육성사업 알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4년 국제스포츠인재양성 해외연수 교육생 모집공고 (0) | 2014.07.04 |
---|---|
[소치동계올림픽] 새 영웅 만들기- 국가대표 공론장의 지각변동 ③ (0) | 2014.03.17 |
[소치동계올림픽] 새 영웅만들기-국가대표 공론장의 지각변동① (0) | 2014.02.27 |
2014 스포츠둥지 기자 공개 모집 (0) | 2014.02.20 |
체육인재육성재단 홈페이지 리뉴얼 오픈 (0) | 2014.02.14 |